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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사색의 창] 옛 노래 - 견일영

신아미디어 2012. 1. 7. 10:00

 

   옛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다. 비록 유행가로 흘러가고 있지만 지난날
우리가 살아왔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 정이 깊이 들었다. 지금 유행
하는 노래는 너무 어렵다. 가사가 무슨 말인지, 박자는 불규칙하고 옆에
서 도와주는 무용수의 낯선 율동은 내 정신을 빼놓는다. 오랫동안 정착
된 우리 정서와는 잘 맞지 않는다.
   젊은이들 보기에 우리가 좋아하는 옛 노래는 양반 칼싸움하는 것 같
아 싫은 모양이다. 양반들은 비록 적이라도 단번에 죽이지 않고, 여차여
차해서 너를 죽인다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그 말에 승복하지 않을
때는 칼 솜씨만 보여주고 다시 설득을 한다. 그리고 잘못을 뉘우치면
살려준다. 뉘우칠 기색만 보여도 살려준다.
   젊은이들은 펜싱 같은 칼싸움이라야 직성이 풀린다. 거기 어떤 명분
을 붙이면 잔소리가 된다. 속도감과 긴장감이 있고, 군소리가 없다. 결국
그 싸움은 피를 봐야 끝이 난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연말이면 나는 꼭 연하장을 보낸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 그리고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꼭 연하장을 써서 보낸다. 그런데 나에게 오는
연하장은 핸드폰 속에서 문자로 고개만 까딱하고 만다. 불쾌하지만 어
쩔 수 없다.
   현 세대는 소셜네트워크로 방안에서 컴퓨터 마우스 하나로 정보를 얻
고, 보내고 한다. 가상의 현실에서 새로운 사회를 이루어 나간다. 내가
보기에는 방안에서 혼자 싸우는 구들장군 같지만 오늘날 사회는 그것으
로 인해 정치·사회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결국 노래도 급하게, 군소리
없이 문자 메시지같이 민첩해야 살아남는 것 같다.
   얼마 전, 옛 백제 유적지를 찾아 단체 여행을 했다.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고란사 쪽으로 갔다. 마침 점심을 먹은 후라 술기운이 있는 사람들
이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낙화암까지 둘러보고 다시 배를 탔는데 오는
길에는 배 안에서 <백마강> 노래가 흘러 나왔다. 참 오래된 옛 노래지만
곡과 가사가 이 장소의 분위기에 딱 어울린다. 갑자기 모두가 조용해지
더니 그 노래 속에 파묻히고 만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옛 노래에 푹 빠진 관광객들은 자신의 운명과 삶까지 그 노래 속에 담아
추억으로 되새기며 숙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윽고 마지막 구절이 나오
자 더욱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듯 꼼작도 하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꽃처럼 떨어진 궁녀들의 모습이 언젠가는 다가올 자신의 모습으로 겹
쳐 보였던지 무심히 흐르는 강물만 내려다본다. 배는 천천히 물살을 가
르고, 노래는 3절 끝까지 이어진다. 이윽고 배가 나루터에 닿자 옛 꿈에
서 깨어난 관광객들이 비로소 웅성거리며 선착장으로 올라간다.
   옛 노래는 가사가 좋다. 희로애락과 인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추억이
있고, 애수가 있다. 천 년 전 슬픈 역사가 옛 노래로 되살아나고, 그것은
한 맺힌 우리의 가슴을 처연한 감상에 젖게 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옛 노래를 업신여긴다.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까
지 골동품 취급을 한다. 그들은 쏜살 같은 세월이 찬란한 오늘을 이내
내일로 넘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일이 없는 오늘은 없다. 어제가 없는 오늘도 없다. 오늘 불렀던 노래
가 내일이 되면 옛 노래가 되고, 내일 불릴 노래도 오늘 벌써 옛 노래로
변하고 있다. 오늘은 어제를 폄하하고, 내일은 오늘을 업신여긴다.
   K팝이 뜬다. 세시봉은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시 인기를 얻지만
젊은이들이 열광하지는 않는다. K팝을 열광하는 영국에 가서 <백마강>
을 부른다면 누가 들으려고 하겠는가. 세월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내
고, 오늘 불렀던 노래는 어제의 노래로 밀려난다.
   급진하는 동력은 젊음의 상징이고, 그들은 브레이크를 걱정하지 않는
다. 움직이는 것은 브레이크가 필수지만 그런 안전을 걱정하는 세대는
빛을 잃고, 밀려나고 만다.
   프로이트는 최초에 자의식이 있고, 그것을 억압당함으로써 무의식이
생겨난다고 했다. 내가 옛 노래에 정착된 것은 이제 무의식의 세계 속에
완전히 빠졌고, 그것은 벌써 고체로 변하여 되살아날 수 없는 미라가
되어 있는 것이다.
   강물 따라 흐르는 오늘의 꿈이 먼 훗날 그리운 옛 노래로 다시 불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