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푸른 별’은 이미 스스로 치유의 한계를 넘어섰다. 자연自然의 뜨거운 질타에 비로소 나는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일에 대한 벌罰임을 깨닫고 두 손을 들었다. 이건 무거운 벌이다. 무조건 항복했다."
무조건 항복 - 임석재
기온이 40도를 넘었다. 태양이 폭발한 듯 볕은 따갑게 내리꽂힌다. 습기를 머금은 더운 바람은 숨을 멎게 만든다. 1907년 우리나라에서 기상 관측을 한 이래로 가장 무더운 날이 계속된다고 하니 내 생애에 가장 더운 날들이다. 밤이라고 기온이 내려가지도 않는다. 열대야에 ‘초超’가 붙은 ‘초열대야’ 라는 말이 생겼다. 언제쯤 더위가 가실는지 예측도 없다. 태풍도 불지 않고 비 소식도 없다. 언제 비가 왔던가. 어떻게든 이 더위를 이겨 보려 안간힘을 쓴다.
창문을 통하여 들어온 더운 바람이 숨을 콱 막는다. 선풍기를 틀어 보아도 바람에 살갗이 따갑다. 방법이 없다. 살려면 에어컨을 켜야 한다. 시원하니 좋다. 그러나 긴 시간 에어컨 바람을 쐬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목도 칼칼해진다. 잠시 에어컨을 끄고 나면 문을 열었을 때 몰려드는 끈끈한 열기는 전보다 더 무섭다. 이어 두통, 코막힘의 부작용이 따라온다. 오래된 에어컨의 어마어마한 전기 소비량과 경제적 부담에서 오는 스트레스까지 가중되어 심리적 피곤함과 더위는 정점에 오른다.
해결책으로 공공기관이나 도서관을 찾는다. 대형건물은 중앙냉난방 시스템으로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전기료 걱정이 없다. 무료 와이파이가 잘 터지니 인터넷이나 컴퓨터 작업이 용이하다. 게다가 수많은 책을 찾아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다.
또 하나 좋은 해결책은 더위에 맞서지 않고 최대한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이열치열’이니 하는 말은 예전의 사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의 여름나기에서 가능했던 말이다. 기온이 체온을 넘어선 지금, 열로 다스리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다.
나는 더운 날 움직임은 최소화하고 그 대신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며 머리회전을 끊임없이 해준다. 덥다고 움직이지 않고 생각도 없이 지낸다면 또 다른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즐거운 일을 생각한다. 지나온 일을 회상하면 즐거웠던 일보다는 슬프고 괴로웠던 일, 후회할 일이 더 많이 떠오른다. 인생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유명 스포츠 선수라 상상하며 수천억 원의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꿈꾸어 보기도 한다. 또는 ‘로또복권’의 꿈도 괜찮겠다. 돈이 있다면 더위가 대수겠는가.
더울 때 힘든 일 중 하나는 배설하는 일이다. 적게 움직이고 간식은 자주 먹기 때문에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화장실은 한증막이다. 힘까지 써야 하니 머릿속에서부터 흐르는 땀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더부룩한 배를 끌어안고 후회도 잠시, 다시 또 시원한 화채나 옥수수 등에 손이 간다. 덥다고 배달시킨 저녁은 당연히 과식이다.
현명한 사람은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 법이다. 당분간 삼시세끼 집에서 늘 먹던 밥으로 먹는다. 입맛 없다 탓하지 않고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를 보며 다이어트의 기회로 삼는다. 일체의 간식을 멀리한다.
더울수록 조심해야 할 일은 사람과 맞서지 않는 것이다. 체온이 36.5도니 둘이 모이면 70도요, 셋이면 100도를 넘는다. 더울 때는 사람 가까이 있는 것도 덥다. 가뜩이나 더위로 신경이 날카로운데 길가에서 눈길도 잘못 마주치면 시비가 될 수 있다.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언제쯤 시원한 가을이 올 것인지 기약이 없다. 아예 안 올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 일의 사단事端이 나에게 있음을, 나는 안다. 원근遠近을 가리지 않고 매일 타고 다니는 내 오래된 디젤차의 매연이 오늘도 오존층을 뚫고 있다. 꼭 인스턴트 믹스커피를 먹어야만 제 맛이 난다고 하루 두 번은 종이컵을 내버린다. 수돗물은 꺼림칙하다고 사다 먹은 생수병이 쓰레기통에 즐비하다.
영리한 유인원類人猿인 사람들은 살기 좋은 집을 짓는다고, 고속도로를 만든다고 온통 파헤쳐서 산은 깎여 무너지고 강은 막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길은 모두 포장을 하여 흙을 보기 어렵다. 불과 오백만 년 전에는 사람도 척추동물 영장 목의 포유류에 불과했거늘.
오늘도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서 ‘푸른 별’은 이미 스스로 치유의 한계를 넘어섰다. 자연自然의 뜨거운 질타에 비로소 나는 이 모든 것이 내가 한 일에 대한 벌罰임을 깨닫고 두 손을 들었다. 이건 무거운 벌이다. 무조건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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