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수필과비평 2018년 11월호, 제205호 신인상 수상작] 소확행을 아시나요 - 변명희

신아미디어 2018. 11. 7. 16:37

"그런들 어떠리. 모두가 소소小小한 일상이지만, 이 또한 소소笑笑하게 맞이할 ‘소확행小確幸’의 순간인 것을."






   소확행을 아시나요   -   변명희


   소풍 갈 아이처럼 벌써 마음이 설렌다. 박스를 열고 물건을 확인한 뒤 깜짝 놀라 토끼 눈으로 바라볼 그들을 상상한다. 이런 깜짝쇼를 도모한 내가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고, 스릴마저 느낀다.
   “엄마! 색이 정말 곱고 밤톨처럼 예뻐서 마음에 쏙 드는 구두를 찾았어. 근데 한참 망설이다가 그건 안 샀어.”
   “왜? 남자들도 기본으로 몇 켤레 정도 구비해 놓고 신어야지. 그렇게 마음에 들었으면 있을 때 사지 그랬어?”
   “아니, 꼭 필요한 것만 사야지. 나중에 사도 되는데 뭘….”
   ‘꼭’에 힘주어 말하는, 그렇게 알뜰한 딸아이다.
   새 보금자리를 향해 날갯짓을 하는 딸에게 필요한 것 등 몇 가지를 사라고 백화점 카드를 들려 보냈었다. 예비신랑의 셔츠 양복 등을 사고 꼼꼼하게 계산해서 받아 온 영수증과 카드, 사은권까지 내게 돌려주며 하는 말이다.
   잠시 대화를 하고 제 방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구, 아가씨 앉은 자리 풀도 안 나겠네. 꼭 사고 싶을 때는 원하는 거 찾기도 힘든데 봤을 때 그냥 사지.” 하고 혼자 웃는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씀씀이가 헤프지 않고 다부진 아이의 경제관념에 새삼 흐뭇해진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라 “옳거니!” 하고 무릎을 쳤다. 내일 날이 밝으면 백화점 구두 코너에 달려가 그들이 그렇게 흡족하게 생각했다는 구두를 사리라. 점원에게 어제 방문한 젊은 커플을 말하면 금방 알고 그 구두를 찾아 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이다.
   몇 차례 내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묻더니 교외의 음식점을 예약해 놓았다고 한다. 곧 다가오는 내 생일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한동안 외유 중인 제 아빠의 빈자리까지 의식한 나름의 배려다. 직업상 둘이 다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시간에 쫓기는 그들의 계획이기 때문에 더욱 고마운 마음이다. 그날 짠~하고 깜짝 선물로 내놓을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달뜬다. 혼자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며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해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현관에 있는 처음 본 노란 슬리퍼가 생각나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디서 났느냐고 딸에게 물었더니 종일 직장 일에 지쳐 피곤할테니 승용차에 탈 때라도 편하게 있으라고 예비신랑이 차 안에 구비해 놓은 거란다. 그 배려하는 마음이 놀랍고, 내 딸을 위해서 그런다고 생각하니 한 없이 고맙다. 사소한 듯하지만 감동을 자아내는 마음씀씀이다.
   우리는 행복을 쫓고 있는가, 잡고 있는가. 요즘 ‘소확행’이란 용어가 유행이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 수필집에서 유래된 것으로 작아도 확실한 행복을 뜻한다고 한다. 나른한 햇살에 책을 읽다 잠시 단잠에 빠지는 것도, 감미로운 음악에 도취되어 바라보는 달빛도, 그것을 느끼고 즐기는 자에게는 행복이다. 네 잎 클로버의 행운도 좋지만, 숱하게 많은 세 잎 클로버의 행복 또한 소중한 것이다. 어느 외국인 작가가 한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울린다. “날마다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Every day is not happy, but happy things are always here).”고.
   주방에서 서랍을 정리하다가 달팽이 모양의 앙증맞은 소품을 발견했다. 아주 오래전에 어딘가 여행 중에 샀지만 쓰지 않아 새것 그대로다. 얼른 딸을 불러 신혼살림에 보태라고 해야겠다. 그들의 식탁 한편에 자리할 그 작은 은빛 달팽이를 상상하니 그 또한 즐겁다. 한 지인이 외국여행을 다녀오며 기념으로 전해 준, 문양이 독특한 냄비 받침도 챙겨야겠다. 딸아이의 새로운 둥지를 한올 한올 엮는 즐거움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음미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 본다. 점이 있어 선을 이루고 선들이 있어 면을 이루듯, 사소한 즐거움이 결코 사소하지 않아서, 인생 전체를 수놓는 한땀 한땀의 바느질임을 잊지 말자. 내 안의 파랑새를 헤아리다 보니 문득 시한 편이 떠오른다.


   우리는 늘 행복을 꿈꾼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이란 것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순간이/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말하게 될 줄 알면서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현재의 행복이/ 버스의 차창 밖 풍경처럼/ 물 흐르듯 사라져 간다.


   어느 날 내게 죽비에 맞은 것처럼 다가온 시구다.
   작가 전승환은 우리에게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살아있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의 행복론이다. 하늘을 날거나 물 위를 걷는 게 기적이 아니라 두 발로 땅 위를 걷는 자체가 기적이고 선물인 것이다. 새날 아침을 맞는 단순함과 햇살 한 줌도 눈부시게 맞이하고, 국화 차 한 잔도 그 향을 즐기며 마실 일이다.
   갖가지 상념에 젖어있는 사이 차는 식어가고, 마음은 벌써 백화점으로 달려가고 있다. 밤톨처럼 예쁘다는 그 밤색 구두를 찾아서! 사랑스런 예비부부의 밝고 환한 두 얼굴은 상상만으로도 나를 사랑의 바다에 빠지게 한다. 행복에 겨워 입꼬리가 귀밑까지 올라가고 있는 나는 영락없는 팔불출이다. 그런들 어떠리. 모두가 소소小小한 일상이지만, 이 또한 소소笑笑하게 맞이할 ‘소확행小確幸’의 순간인 것을.
  

 


변명희  --------------------------------------------- 

   원석문학회 회원, 서예, 문인화 초대작가.
 



당선소감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절, 기쁜 소식에 울긋불긋 단풍처럼 마음이 물듭니다. 유어예(遊於藝: 藝 속에 노닐다)를 꿈꾸며 서예, 문인화를 즐겨 왔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언감생심 수필로 신인상까지 받게 되다니, 제 꿈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여 부끄럽습니다. 이번 신인상 수상은 앞으로 더욱 노력하고 성숙해지라는 채찍으로 알고 부끄럽지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문학에 대해서는 늘 부러운 마음만 가득할 뿐 이루지는 못하는 안타까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문학의 향기가 늘 내 주변에 깃든 삶을 다짐해 봅니다. 내 삶도 매 순간 ‘소확행’을 실천하며 자연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오늘이 있게 해주신 교수님과 선배 문우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늘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는 가족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이번 작품에서 소재의 대상이 된 딸과 사위에게 감사한 마음 갖고 있습니다마는 앞으로도 그들을 지켜보면서 나의 ‘소확행’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이후 행복과 행운이 늘 그들에게 같이하기를 바랍니다. 새 식구가 된 딸 내외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