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저편까지 찾아다니며 여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우리 문화에 비해 거기 헐벗고 불쌍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이 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실수가 아닐까."
마다가스카르에서 기도 - 이종숙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아부다비를 거쳐 세이셀의 마헤 공항에 내렸다. 소나기가 무섭게 쏟아지는데도 경비행기를 타고 다음 목적지 마다가스카르를 향했다. 사진하는 사람들이라 중간 지역의 세이셀은 돌아올 때 보기로 하고 바로 바오바브 나무가 있는 모른다바를 향해 또 버스를 탔다.
마다가스카르는 입국하면서 개인당 30불씩을 지불해야 한다. 스물다섯시간 만에 인도양에 위치한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모론다바 방갈로 비치에 짐을 풀었다. 북두칠성이 머리 위에서 선명하게 반짝이고 별이 쏟아지는 해변의 모래사장은 인도양의 바닷바람에 시원하였다. 남편이 우리도 영국 황태자가 신혼여행을 갔다는 아름다운 세이셀에 가보자고 부추겨서 마지못해 따라나선 것이 결국은 자기 좋아하는 사진팀에 합류한 것이었다. 긴 여정에 지쳐서 말할 기운도 없었다.
마다가스카르는 일찍 북한과 수교를 하다가 2000년 들어 단교하고 그 후 우리나라와 정상 관계를 유지한다는데, 88올림픽 때는 참가하려다 북한의 방해로 불참하는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큰길에는 우리나라 자동차가 많았고, 버스는 노선 표시가 우리말 그대로 쓰인 채 달리고, 앰뷸런스도 우리나라에서 기부 받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더운 이곳까지 와서 차를 팔고 여러 분야에서 그 나라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여 자긍심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변두리 시장 골목엔 파리 떼와 흙먼지 속에 컴컴한 오두막이 즐비하다. 어린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할 정도인 아이들이 말 그대로 저절로 자라고 있었다. 내 작은 능력의 기도로 “저 아이들에게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거기서도 젊은 부부의 삶의 터전인 빨래터 전경이 눈에 띄었다. 개천가 언덕 풀숲 위에 빨래를 즐비하니 펴서 말리고 저녁때가 되면 걷어다 주고 세탁비를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엔 씻을 수 있는 환경이 못 돼서 그런지 얼굴에 기름때가 번들번들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술 마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곳 아이들은 관광객만 나타나면 졸졸 따라와 구걸을 해 곤혹스러웠다. 그런 중에도 아이 둘을 업고 안고 땅 바닥에 글을 쓰며 놀고 있는 눈동자가 반짝이는 어린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가방 속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그 애의 치마에 안겨 주었다. 나는 그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아름다운 주님의 딸에게 주님의 뜻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잘 살 수 있는 희망과 사랑을 주소서.”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아직도 그 까맣게 빛나던 눈동자가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열악하기 그지없는 골목길을 올라가니 언덕 위에 대통령궁, 각국 대사관, 학교, 병원, 호텔 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다. 그래도 호텔들은 오랜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흔적이지만 외형은 옛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다시 바오바브 나무를 촬영하기 위해 안타나나리보에서 모론다바로 가는 길, 황톳길이지만 우리나라 시골길과 흡사해서 친근감이 있었다. 중간 중간에 장날 같은 노점에서 잘 익은 과일들을 사먹으며 그 지루한 대여섯 시간을 무난히 갈 수 있었다. 그곳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하면 우리 가이드가 우리말로 전달하고,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 점심 식사 시간에는 피아노 연주 솜씨에 또 한 번 놀랐다. 영문학을 전공해 교사를 하다가 가이드 수입이 더 좋아 이 일을 택했다는데 우리에게 바오바브 나무의 걸개그림을 선물로 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그가 보여준 사진 속의 두 딸과 아내에게 선물을 사 주라고 나는 작은 금일봉으로 성의를 표했더니 활짝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평원에 띄엄띄엄 보이는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우리나라 태극기가 양철판에 그려진 채로 수풀 속에 뒹굴고 있었다. 어느 자선단체에서 교회를 짓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모이게 한 뒤 테이프만 끊고 사진 몇 장으로 떠들썩하게 놀다 간 후 그대로 방치되었다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디를 가나 나라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파렴치한들 때문에 그곳 주민들에게 코리안이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일행은 새벽 4시부터 길이 험하여 바퀴가 큰 지프차로 삼십 분을 달려 바오바브 나무의 거리에 다달았다. 듬성듬성 서있는 육중한 나무에 기가 눌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면서 남편 따라 이 팀과 동행을 하였지만 신비의 세계에 들어온 착각에 빠졌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가 여기 있었구나, 소혹성을 엉망으로 만드는 무서운 식물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뭘까? 6,000년 전부터 생긴,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식물, 건조한 아프리카 지역에서 나이테마다 물을 저장하여 가뭄을 극복하는 1,000년을 자란 바오바브 나무, 뿌리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모습, 나무 기둥은 뚱보를 연상시키는 키다리 거인, 신이 실수하여 거꾸로 심었다는 전설, 죽어서도 버릴 것 하나 없이 인간에게 사는 집의 지붕을 덮어주고, 바다에 띄우는 배의 밧줄을 만들고, 악기의 줄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은혜로운 나무다.
먼동은 신비롭게 퍼진다. 프리즘 같은 형식으로 떠오르는 빛이 경건해진다. 호수에 비치는 바오바브 나무는 태고에서 걸어 나오는 형상이다. 여기저기서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새벽을 깨운다. 해가 떠오르니 사람들은 일시에 흩어져 버린다.
그 동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는 습관인지 어느새 나를 보고 맘이라 부르며 봉봉(사탕)을 달란다. 유치원 원장을 하는 김 선생이 손을 잡고 놀아주니 자기 집엘 가잔다. 그렇지 않아도 사는 모습이 궁금했던 터라 따라 들어갔다. 아홉 식구가 사는 움막 비슷한 거처는 판자 조각으로 이어 만든 침대 비슷한 나무 판대기 하나뿐이었다. 부부와 일곱 아이들의 거처요 잠자리였다. 엄마는 또 배가 불러 있었다. 신발도 없고 보자기 하나면 일 년 내내 가리는 것은 해결이 되고 속옷은 입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했던 그 시절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그늘진 곳에 모여 흙바닥에 안방처럼 널브러져 노는 많은 아이들과 더위를 피하고 있다. 거기에도 젊은 여인들은 얼굴에 하얀 분가루를 바르는지 꾸미는 모습이 보였고 나에게 입술을 가리키며 손을 내밀어서 갖고 있던 루주를 주었더니 환호성을 지른다. 상점이라야 흙바닥에 펼쳐 놓고 파는 크고 작은 바오바브 나무의 목각이 전부다.
저녁때 일몰을 보기로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생선까스가 나왔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무슨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모양은 붉은 고기여서 맛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는데, 못 먹고 남긴 음식 위에 바오바브거리의 아이들이 떠올라 미안했다. 방갈로 주변 산책을 나와 모두가 밖에서 사는 주민들의 안내로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바람이 통하라고 그랬겠지만 얼기설기 갈대로 엮어놓은 지붕과 바람막이가 주거하는 곳이다. 빈한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지수가 높고 불행을 느끼지 못한다니 할 말이 없었다. 막사가 없이 놓아먹이는 돼지 떼들은 사람보다 깨끗했다. 남자들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것이 그들의 수입원이라고 한다.
석양의 일몰은 짧은 시간이어서 사진 찍는 게 급했다. 비교해 보니 역시 새벽에 찍은 사진이 예술이었다. 아직도 사회주의 국가여서인지 저녁 시간은 통제가 엄격하여 외부인은 바오바브거리에서 모두 나가야 한다.
시원한 방갈로 비치는 나무로 지은 이층으로 시설은 선진국보다 더 편리해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아늑함이 너무 좋아 더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얀 모기장이 더욱 예쁜 꿈을 꾸게 하는 환상의 숙소였다. 관광사업에 주력하는 마다가스카르 정부의 계획은 훌륭하였다.
지구 저편까지 찾아다니며 여행할 수 있는 여유로운 우리 문화에 비해 거기 헐벗고 불쌍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이 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실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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