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8년 08월호, 통권202호 I 세상마주보기] 오면서 가는 세월 - 에릭 정 (정종진)

신아미디어 2018. 10. 22. 14:25

연약해지는 육체로 한숨 내뿜으며 가는 세월을 바라보기만 했다면 한없이 쓸쓸했을 것 같다. 어느 순간 세월이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기도 하면서 변한다고 생각하니, 늙어감도 싫진 않아진다. 세월이 흐름은 아름다운 예술이며 빈틈없이 정확한 철학이다. 하나님의 법칙에 허점이 있을 리 없으니, 하나님이 정해놓은 길이라면, 어느 것이나 즐겁게 따라가고 싶다. 내가 한 발짝 멀어져 가면, 손자가 자기 부모의 인생을 치밀며 한 발짝 다가온다. 세월이 내 인생을 관통하여 흐른다는 것은 아름다운 운율을 타고 즐거운 춤을 추는 일임에 틀림없다. 운율을 깨지 말고 거기에 합당한 춤을 의욕적으로 추며 살아가고 싶다. 발장단 신나게 맞추며 기쁨을 창출하고, 오늘도 나는 오는 세월 바라보며 가는 세월 속으로 떠내려가련다."







   오면서 가는 세월    -    에릭 정 (정종진)


   오늘은 꽃나무 두 그루 심느라 삽질 몇 번 했을 뿐, 온종일 빤빤히 놀았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어깻죽지도 아프고 엉덩이뼈도 아프냐? 건들지도 않은 요 새끼발가락은 왜 이렇게 덩달아 아파 내 속을 심란하게 만드는가? 공원에서 콘서트가 있으니 나가자고 작은아들이 전화를 했다. 음악 감상한답시고 공원 의자에 맥 놓고 앉아, 공상을 하고 있으니 영락없는 늙은이다. 두 살도 안 된 손자가 나에게 어딘가를 가자고 이끈다. 할 수 없이 따라 나서며, 어서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보라고 떠미니, 뙤똥뙤똥 잘도 걸어간다. 누군가가 뒤를 지켜주니 걱정이 없다는 듯, 신경도 안 쓰며 낯선 사람들을 젖히고 생소한 곳으로 끝없이 돌아다닌다. 야구장을 지나서 정구장 문도 열어보고 그네 뛰는 큰 아이들에게 시비도 걸어본다. 무죄한 개미도 밟아보고 돌멩이로 나무를 맞추려다 제 발등을 다칠 뻔하기도 한다. 솔방울도 주워서 정밀검사를 해보고, 쓰레기도 집어서 냄새를 맡아본다. 빨간 병뚜껑을 줍더니 큰 재물을 얻은 양 잔뜩 움켜쥔다. 엄마에게 가겠다고 울 때도 됐을 성싶은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무작정 전진한다. 힘없는 나를 완전히 믿어주니 좋기도 하지만, 미지의 세계탐험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아기의 호기심은 내 낡아가는 육체를 또 한 번 지치게 한다.
   내가 지침으로써 손자가 세상에 대한 의욕과 자신을 가질 수 있다면, 겉껍데기만 남을 때까지 기진맥진해도 좋다. 나의 탈진이 손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나의 피로가 손자의 배움에 원동력이 된다면, 나는 계속해서 지쳐갈 수 있다. 아들들은 너무 가까이 쫓아오니,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아들들이 어렸을 때, 손자와 똑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들들의 재롱을 눈여겨보지 못한 채, 어서 자라 빨리 어른이 되라고 채찍질만 했던 젊은 날이 아픈 그림자로 남는다.
   늙은 야곱이 죽기 전에 아들들을 불러 모아놓고, 한 사람씩 꼬집어 불러대며 유언한다. 아들들이 행했던 착한 일 나쁜 일 모두 언급하며, 축복도 하고 저주 비슷한 예언도 한다.
   “아들들이 곧 자기 자신입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야곱이 아들들에게 한 말은 결국 인생을 마감하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한 말이라는 뜻이다. 아들들의 단점이나 장점도, 또 그들 개개인의 캐릭터나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도, 곧 내 스스로였다는 말인가? 아들들이 행한 모든 일들은, 자기 몸속에 잠재하고 있던 관념들이 아들들을 통하여, 행위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결론이 된다.
   야곱은 자기가 일생 동안 겪어온 험한 길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서러웠던 일, 두려웠던 일, 보람되고 즐겁던 일들을 돌아보면서, 늙은 야곱은 그 굽이굽이 얼마나 아팠을까? 많은 후회에 가만히 한숨 쉬었고, 흐뭇한 성취감에 긴 날숨 내뿜으며 뿌듯해했을 것이다. 아들이 하나나 둘인 사람도 아들들과 마음이 안 맞아 싸우고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하며 산다. 이 여자 저 여자에게서 자기 아들들이 덜컥덜컥 태어나, 쑥쑥 자라날 때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자신감에 도취됐을 것이다. 엄마 다른 여러 아들들이 서로 싸우고 질투하고 말 안 들을 때는, 야곱도 힘 좀 들었을 것이다. 열두 아들들이 합심하여 몰려다닐 때는 세상이 다 내 것 같았겠지만, 그들이 패를 갈라 서로 맞설 때는 속깨나 썩었을 것이다.
   아들들이 결국은 나 자신이라니, 강하게 부인하고 싶은 진실인 성싶다. 아들들을 응시하면서 지나온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 별다른 이유 없이 눈물이 솟구친다. 아들들이 가진 나와 다른 점을 맹렬히 비난하던 시절도 있었고, 불평의 응어리가 가슴을 내리눌러 호흡곤란을 일으켰던 기억도 떠오른다. 아들의 다른 점이 어디서 발전해 나왔건 상관없이, 그것이 내가 지닌 필연적 단점이라면, 그 단점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떼어낼 수 없는 자아이니, 사랑해야만 된다. 나 스스로를 저주할 수도 없고 나를 버리고 살 수는 없다. 내 다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도마뱀 제 꼬리 잘라내듯 내 다리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와는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던 아들들의 실체가 곧 나라는 사실은,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아들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만 된다는 논리다. 싫어하는 점을 사랑하려 드니, 저항이 생기기 전에 눈물이 먼저 쏟아진다. 이것이 자아가 죽는 현상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고, 누구도 함부로 속단할 수 없는 미로가 인생길이라는 진리에 위로를 받는다. 단점이라고 증오했던 부분이 뜻밖에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다. 노력하며 살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인생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정확한 길로 들어서서 화려한 인생을 펼치고, 어떤 사람은 암흑의 동굴 속에서 출구를 찾아 평생 헤맨다. 분명히 빨간 크레용을 확인한 후, 꺼내서 칠했는데, 칠하고 보니 새카만 색이다. 까만 장미가 빨간 장미보다 더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을까? 실수로 만들어진 새카만 장미가 만인의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을 테니, 물론 실망은 금물이다.
   내가 그렸던 아들들의 인생길과 동떨어진 길을 걷고 있는 아들들을 바라보니, 입맛은 씁쓸하다. 나와 아이디어가 척척 맞아 들어가지는 않지만, 아들들이 그들 나름대로 사회활동 교회활동을 하며 타인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주님 주신 나의 길에 만족해야 될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면, 감사하며 살아갈 심적 여유는 지니고 있다. 손자 손녀가 어른들 흉내를 내면서 점점 사람 형태를 갖추어 간다.
   연약해지는 육체로 한숨 내뿜으며 가는 세월을 바라보기만 했다면 한없이 쓸쓸했을 것 같다. 어느 순간 세월이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기도 하면서 변한다고 생각하니, 늙어감도 싫진 않아진다. 세월이 흐름은 아름다운 예술이며 빈틈없이 정확한 철학이다. 하나님의 법칙에 허점이 있을 리 없으니, 하나님이 정해놓은 길이라면, 어느 것이나 즐겁게 따라가고 싶다. 내가 한 발짝 멀어져 가면, 손자가 자기 부모의 인생을 치밀며 한 발짝 다가온다. 세월이 내 인생을 관통하여 흐른다는 것은 아름다운 운율을 타고 즐거운 춤을 추는 일임에 틀림없다. 운율을 깨지 말고 거기에 합당한 춤을 의욕적으로 추며 살아가고 싶다. 발장단 신나게 맞추며 기쁨을 창출하고, 오늘도 나는 오는 세월 바라보며 가는 세월 속으로 떠내려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