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는 인간에게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부여했다. 그 뜻을 제대로 받든 ‘나무를 심은 사람’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보낸 성자다. 그의 발자국마다 사시절 꽃이 핀다. 장 지오노의 정성이 깃든 메시지가 꽃으로 화한 거다."
환대하는 자연 - 강순희
운 좋은 날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 나에게 눈길을 준다. 머물러도 좋다며 두 손 들어 반긴다. 속내를 털어 보라고 방석까지 내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소설 제목이다. 며칠 전, 인문학 강의를 들을 때 주제로 나왔던 책이다. 프랑스 프로방스 태생인 장 지오노의 작품이다. 우리는 남이 쓴 글이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내 삶의 부족한 공간을 채워 간다. 위로받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게 되고, 나를 변하게도 한다. 강의 내용에 반해서 바로 완독하길 잘했다. 이십 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이 소설은 가벼운 분량이지만 읽은 후 느낌은 묵직하다. 내친김에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영화도 봤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같이 현실감을 살려준다.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배가된다.
“오시오, 들어오시오, 우리 집이 마음에 들면 머무르시오, 당신 이름을 묻지 않겠소,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묻지 않겠소.” 주인공인 ‘부피에’가 처음 보는 작가에게 내보인 언행이다. 우리에게 모든 걸 내주는 자연과 닮았다. 소설의 첫 시작부터 자연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 주인공 부피에를 ‘보기 드문 인격의 소유자’로 표현하며 시선을 빨려들게 한다.
저자는 부피에 집에서 이틀을 같이 지낸다. 그 후, 반세기 가까이 나무만을 심으며 살아가는 그의 일생을 줄기차게 좇아서 다닌다. 양치기 부피에의 자연 사랑을 세상에 알리려는 작가의 소명감이 구절마다 절절히 흐른다.
나무를 마구 베어 숯을 구워 내다 파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살벌하고 부질없는 욕심만 팽배했다. 그들은 숯을 구울 생각으로 서로 질 좋은 나무를 차지하려 경쟁할 뿐, 나무를 심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땅, 황막하기만 한 고원지대는 나날이 세찬 바람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부피에는 사람들이 분별없는 욕망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백 개의 씨앗을 심으며 어린 나무를 가꾸어 나간다.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숲이 다시 살아나고 맑은 강물이 흘러들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생명의 땅으로 변하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삶의 터전을 만든다. 세찬 바람 몰아치던 능선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꽃과 나비가 어우러져 꽃바람이 허공에 가득하다. 무뚝뚝하던 원주민들도 꽃 핀 들판에서 웃음꽃 너울거리며 이웃들과 생기 넘치는 삶을 이어간다.
나무를 닮아가는 부피에와 자연이 서로 신뢰하고 환대하는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기적이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 벌어질 때라고 한다. 나무를 심는 한 사람의 고결한 행동으로 인해 마을이 변해 가는 모습은 자연이 펼쳐주는 기적의 세계였다.
양치기 노인은 말년에 말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스스로 나무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무는 말을 안 해도 계절이, 바람이, 별과 달이 어우르며 나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지 않는가. 어떻게 나무들끼리 나누는 참 언어를 사람의 입을 통해 옮기랴.
평생을 오로지 나무 심는 걸 멈추지 않았던 주인공은 나뭇결 스치는 바람과 이야기하고, 노을에 비친 나무 그림자나 오로라의 여명에 제 모습 내보이는 나무들과 대화하다가 자연으로 평화롭게 회귀한다.
우직함이 현명함과 지혜의 바탕이라는 역설적인 말이 있다. 옳다고 느끼는 일에 외곬으로 나가는 고지식한 사람들이 있어 아직 세상은 평형을 유지하며 온전하다. 이에 <나무를 심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주위를 환기시키려 경종을 울린다.
우리는 어디에 발 디뎌 살고 있는가. 자연은 모든 생명체를 가리지 않고 품으면서도 그들로부터 당하는 위험을 기꺼이 무릅쓴다. 지성을 가졌다는 인간이 자연에겐 제일 고약한 생물로 비침은 내 중심의 소견일까. 무조건적으로 환대해 주는 자연 위에 주인으로 군림하며 개발이란 명분을 내세워 닦달하고 괴롭히고 파괴한다. 한술 더 떠서 자연과 함께하는 다른 생물들을 무자비하게 없애는 것도 서슴없이 한다. 묵묵히 곁과 속을 다 내주는 자연이 있어 우리의 삶은 영위되고 있음을 깨우쳐야 하리.
지구는 수없는 발전으로 인해 오염되어 가고 있다. 매연, 오존층 파괴, 사막화 현상, 기온 상승 등 자연의 거친 숨소리가 두렵고 무섭다. 초미세먼지의 습격은 일상에 불편을 느낄 정도를 떠나 거대하게 밀려들며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다행인 게, 지구의 땅 거의를 차지하고 있는 나무는 밤낮없이 인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산과 들로 나서면 자연은 손 흔들며 환대해 준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부여했다. 그 뜻을 제대로 받든 ‘나무를 심은 사람’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보낸 성자다. 그의 발자국마다 사시절 꽃이 핀다. 장 지오노의 정성이 깃든 메시지가 꽃으로 화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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