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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8월호, 통권202호 I 지상에서 길찾기] 갈대의 순정 - 김수자

신아미디어 2018. 10. 5. 13:46

갈대밭은 낭만과 상상력을 간직한 원시의 공간이다. 나는 ‘원시’라는 말이 좋다. 원시란 문명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순수를 의미한다. 화장하지 않은 민낯의 여인 같은 원시의 자연 앞에 서면 문명의 옷을 벗고 본래의 자신으로 회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노총각이여, 딱지 맞는다고 조바심 내지 말 일이다."







   갈대의 순정    -    김수자


   이웃에 사는 적령기의 청년이 몇 차례의 맞선에서 번번이 딱지를 맞았다. 겉보기엔 심신이 건강하고 학력도 빵빵하고 대도시에서의 글로벌한 직장……. 뭣 하나 흠잡을 데라곤 없는데 딱지 맞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날 슬쩍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가관이었다. 서울에서도 뚝 떨어져 있는 순천이 고향이라는 게 이유였단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순천은 멀긴 멀다. 고향이 멀리 있는 게 무슨 죄인가?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무조건 시골이라 칭하는 저 막무가내 우월감은 뭐냐? 순천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에서도 살기 좋은 두 번째 도시다! 지하철 바퀴 소리를 자장가 삼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겐 순천이 아프리카의 어느 미개국쯤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애향심이 극진한 이 총각, 원시인 대하듯 하는 아가씨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았단다. 아무려면 총각귀신 될라고? 마음 푹 놓고 기다리시라. 머지않아 금빛 날개옷 나부끼며 그대를 찾아오는 선녀가 있으리니!
   순천이면 어떻고 서울이면 어떻고 부산이면 어떠랴. 미국이라 한들 또 어떻겠는가. 어느 지역, 어느 고장인들 사람 살아가는 이치는 매한가지. 인심은 거기서 거기인 것을. 사람이 중요하지 멀고 가까운 거리가 중요한 것은 아닐 터. 체면이라는 껍데기 훨훨 걷어붙이고 힘껏 일하고 열심히 살아보세. 지역차별이라면 지금보다야 몇 배는 더 심(?)했을 법했던 그 시절에 도시 변방,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맏며느리 나중며느리 따지지 않고 용감한 병사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자진 입성한 그녀로서는 동서남북 따지고 도시 시골 따지는 인심이 괜스레 야박하고 야속하기까지 한 것이다. 뭐 굳이 싫다는 데야 어쩌겠냐만 하릴없이 흥분하는 내 마음 나도 모를 일이다.
   층층시하 이 일 저 일, 태산 같은 일에 파묻혀 동분서주하던 새댁 시절에 꿀맛 같은 하루 휴가를 얻어 주먹밥 싸고 계란 삶아 나들이 간 곳이 대대나루였다. 지금은 ‘순천만’이라 불리는 곳이 그때는 ‘대대나루’나 ‘대대선창’으로 불렸다. 충북 어디에 우리나라 지도를 꼭 닮은 지역이 있다더니 대대나루와 갈대밭, 맞은편 산자락의 생김이 내 고향 낙동강 하구와 닮은꼴이라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순천만과 내 고향의 닮은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 조수의 차, 무성한 갈대밭 옆으로 난 좁은 둑길, 갯벌 사이로 오가는 통통배, 인적에 놀라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의 비상, 이런 풍경들이 고향과 닮아 있어서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여기가 <무진기행>의 무대로구나 하고 감격해 마지않던 기억도 난다. 서걱거리는 갈대들의 춤사위에 잊고 있었던 고향의 기억들이 와락 되살아났다. 치맛자락 돌돌 말아 허리춤에 지르고 갯벌 아무데나 엎드려 통통한 재첩 한 주먹씩 잡던 고향과 달리 대대나루에서는 고막자루를 가득 실은 통통배들이 선창에 도열해 있었다. 무슨 용도인지 태산 같은 고막 껍데기가 선창에 쌓여 있었다.
   순천만의 대표주자는 갈대다. 갈대의 용도는 다양하다. 갈대꽃은 ‘노화蘆花라 하여 고급 빗자루의 재료가 된다. 마을의 처녀총각들은 갈대꽃을 뽑아 용돈을 마련했고, 노랗게 마른 겨울갈대는 울타리를 만들거나 지붕을 덮기도 하고 화력이 좋아 땔감으로도 인기였다. 지금은 갈대꽃빗자루 대신 비닐빗자루가 나오고 블록 담장이라 울타리를 칠 일도 없어졌다. 흔히 변덕스런 여자의 마음을 갈대에 비유하지만 모르는 소리. 갈대는 봄여름에는 초록, 가을겨울에는 황금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센스 있는 여인이다. 변덕이라니, 천부당만부당. 갈대는 짠물에서도 싱거운 물에서도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며 강한 바람에도 뿌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심지 깊은 여인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다. 뿌리의 성분은 중금속을 해독하고 면역력을 높이며 자정효과 또한 탁월하단다.
   온갖 생명들을 품고도 갯벌이 썩지 않고, 바닷물이 깨끗한 것은 갈대의 자정능력 때문이다. 세상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무언의 청소부라 할까.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아니하고 서로 부축하며 일어서는 몸짓은 측은하면서도 끈질기지 않은가! 일출과 일몰, 비와 안개, 벗과 연인 등 순수한 대상과 잘 어울린다. 해 뜨는 아침 또는 노을 지는 저녁 무렵이나 안개 자욱한 날, 벗이나 연인과 함께 순천만에 가보시라. 아니, 순천만의 매력이라면 달밤의 산책을 권하고 싶다.
   갈대밭은 낭만과 상상력을 간직한 원시의 공간이다. 나는 ‘원시’라는 말이 좋다. 원시란 문명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순수를 의미한다. 화장하지 않은 민낯의 여인 같은 원시의 자연 앞에 서면 문명의 옷을 벗고 본래의 자신으로 회귀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노총각이여, 딱지 맞는다고 조바심 내지 말 일이다. 순천만은 이 땅의 복주머니다. 귀중품을 듬뿍 감춘 보석집 안주인처럼 시치미 떼고 있는 저 당당한 표정이라니.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시의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남아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