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곡할 노릇’인 소지품 실종 사건은 어릴 적부터 너무 많이 경험해 왔다. 아직도 털털한 성격 탓에 겪는 이 참담함은 고쳐야 할 일 중 하나다. 앞으로 내 습관을 조금은 고치겠지만 무의식적인 습관이 기억을 흩트려 놓음은 무엇으로 다스려야 하는지, 습관이나 기억과도 무관한 이런 실수는 또 어찌 찾아내야 할지, 시간은 분명 더 헝클어진 기억과 습관의 세상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을 텐데….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유레카!"
차 키 실종사건 - 권현옥
수북한 가방 앞에 앉았다. 허탈한 어깨에서 늘어진 손으로 진땀을 닦는다. 찌그러져 있거나 지퍼를 헤벌쭉 열고 있거나, 제 스타일 지키기 위해 구겨진 종이를 잔뜩 먹고 있는 오래된 가방들. 하나씩 손으로 더듬어보고 뒤져보고 털어보았다.
없다. 내 심장은 쪼그라져, 그 텅 빈 공간에 우울함이 들어설 참이다. 제발, 혹시, 너라도−오래전 잃어버린 차 키−다시 찾아야 자존심을 일으켜 세우고 자학을 떼어낼 수 있는데 말이다.
차 키는 보일 기미가 없고 말라버린 볼펜이나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영수증 몇 개, 비스킷 부스러기가 떡고물처럼 묻은 동전만 나온다. 어쩌자고 안 버린 과자가 있었는지….
그래도 열심히 뒤진다. 오래전 언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열쇠를 찾고 있는 이유는 마지막 남은 차 키를 어제 또 잃어버린 것이다. 그 키를 찾으면서 혹시 예전의 키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 아니 절심함이었다. ‘그만 찾자.’는 단언은 1분도 못 가 무산되고 벌떡벌떡 일어나 ‘혹시’를 확인하느라 반나절을 보냈다.
‘A니까 B임에 틀림없어.’ 처음에는 자신의 기억을 믿으며 당당하게 이 공식에 대입했다.
“나는 오늘 차로 외출을 안 했으니까 키를 내가 가지고 나갈 리가 없지.”라고 말한 나와 “나는 언제나 키를 여기에 놔두는 사람이니까 여기에 안 뒀을 리가 없어.”라는 남편이 대치했지만 분명한 건 없다는 사실이다. 어제의 발걸음 하나, 손짓 하나, 생각 하나, 눈동자에 남은 잔상 하나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혹시~했을까?”라는 두 번째 공식에 기억을 맞추는 미션으로 진입했다. 기억을 반쯤 의심해 보자는 후퇴다.
남편은 차를 주차하고 떨어뜨렸나 싶어 관리사무소와 경비에게도 물었다. 어제 입은 바지와 근래 입은 바지 주머니를 다 뒤져보고 혹 바지를 벗다가 떨어뜨렸을 가능성에 방바닥도 살피고 급기야는 나의 꼼꼼치 못함을 침묵으로 비난하려는 듯 내가 먼저 뒤져본 가방을 몽땅 다시 뒤졌다. 눈과 손이 일하는 동안 애간장이 다 녹아내렸다.
“거기는 금방 내가 다 봤어,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분명 내가 봤을 때 없었는데, 세상에나~.’ 하는 경탄의 말이라도 하게 되면 좋겠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여러 번을 뒤지고도 또 보고 싶은 마음, 이건 필시 맘에 든 이성을 사귀려는 첫 단계의 감정과도 비슷했지만 타들어가는 빛의 색깔이 다른 이 한심한 놀음이라니….
추측과 상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에는 화를 돋우는 악재가 숨어있었다. 슬슬 자신에게 화가 나고 서로에게 화가 난 우리는 싸움의 링으로 올라갈 뻔했지만 간신히 마지막 발을 되돌리곤 했다. 누구를 탓할 자신감이 없어진 것은 요즘의 무른 기억 때문인데 드디어는 흐물흐물해진 것이다. 기억이란 것 위에 상상을 버무리기 시작하니 그때부터는 정말 알쏭달쏭 오리무중이었다.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라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설마 내가 무의식적으로 키를?’ ‘혹시 어디에 들를지 몰라 키를 들고 나왔나?’ 한 발짝 물러선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털고 흔들어 볼수록 확실한 것은 없어져 갔다.
나는 그날 흰머리 염색을 했고 운동을 했고 마트를 들렀다. 미용실과 연습실에 전화를 해보았다. 없다는 답변에 또다시 어제의 회로를 돌리며 반복의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밥맛도 잠 맛도 뚝 떨어져 나갔다.
밤은 깊어갔고 늦은 문자를 지인에게 넣었다. “내일 나들이에 우리를 태우고 가달라”고. 자학이라도 더 해야 될 것 같다가도 ‘며칠 우리 차 안 타면 되지 이렇게까지 세상 무너진 듯 힘들어 할 건 없잖아.’ 하면서 잠이 내 우울함을 리셋해주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어디에 놨을까.’가 사라지진 않았다. 다음날 지인의 차 안에서 남편은 ‘허탕 치는 셈 치고 마트에 한번 전화’를 해보란다. ‘설마 내가 왜 거기서 차 키를 꺼냈겠어?’ 짜증을 내면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여직원은 “없는데요” 라고 했는데 “잠깐만요.”라며 다른 직원이 받아들었다.’ “무슨 색이죠?” “빨간 가죽 키인데요.” “네. 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쩌다 거기에 키를 빠뜨리고 또 왜 그곳에만 전화를 안 해 보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찾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내 기억과 행동을 불신해야 하는 사실이 슬펐다.
우리 모두는 일상적 사고나 실수에 대비를 하고 살지만 사고나 실수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난다. 생각지 못한 일, 맹점.− 이것이 우리의 깊은 삶 안에 살아서 숨어 다닌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이 잘 닿지 않는 그곳을 끝까지 찾아내서 의외일 뻔한 것을 일상으로 끌어오는 게 또 우리의 지혜이고 생활에 필요한 정확성 아닌가.
‘귀신이 곡할 노릇’인 소지품 실종 사건은 어릴 적부터 너무 많이 경험해 왔다. 아직도 털털한 성격 탓에 겪는 이 참담함은 고쳐야 할 일 중 하나다.
앞으로 내 습관을 조금은 고치겠지만 무의식적인 습관이 기억을 흩트려 놓음은 무엇으로 다스려야 하는지, 습관이나 기억과도 무관한 이런 실수는 또 어찌 찾아내야 할지, 시간은 분명 더 헝클어진 기억과 습관의 세상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을 텐데….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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