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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지상에서 길찾기] 봄 물김치 담그기 - 이옥순

신아미디어 2018. 6. 18. 14:16

"물김치를 먹으면 봄이 더 기다려진다.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봄 마중을 나가보아도 괜찮다. 맨땅이 있는 곳으로 슬슬 나가면 쑥이나 냉이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은 끝이 난다."







   봄 물김치 담그기    -    이옥순

   남은 배추와 무를 정리하는 날. 배춧속 두 통과 무 두 개를 나박나박 썬다. 나박나박 이라는 단어는 참 경쾌하다. 한 번 씻어 건져 소금 두 주먹을 고루 뿌려둔다. 시를 읽든 커피를 마시든, 시를 읽으면서 커피를 마시든 일단은 잊어버리고 딴짓을 해도 좋다. 나라면 신문을 보면서 차를 마시겠다.
   무엇을 하든 간에 한 시간쯤 지나면 다시 김치 생각이 나게 되어있다. 그때 얼른 가서 설렁설렁 뒤집어 준다. 그때부터는 웬만하면 김치에 집중한다. 고명으로 파란 파, 붉은 고추를 채 썰어 넣으면 색이 조화롭다. 색은 식욕을 돋우는데 한몫한다. 사과 두 개와 양파 두 개, 생강 두 쪽, 마늘 열두 알, 소금 두 숟가락, 새우젓 두 숟가락, 생수 두 컵을 준비한다. 사과와 양파가 단맛을 내기 때문에 설탕 같은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젓갈은 취향이다.
   모든 재료를 두 번으로 나누어 믹서에 넣고 간다. 아무리 성능 좋은 믹서라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넣으면 모터가 열을 받는다. 믹서에 무엇을 갈 때는 물이 들어가야 잘 갈린다. 믹서라든지 칼, 도마 같은 살림은 오래 사용해야 하므로 갖출 때 좀 신중해야 한다. 야무진 살림살이를 갖추어 오래 사용하는 게 잘하는 살림이다.
   집에 물건 하나를 들이면 쓰레기 하나가 발생한다. 누구나 한정된 공간에 살기 때문에 결론은 그렇다. 생활용품을 볼 때 환경을 위한 생각이 들어갔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우체국 택배 포장 테이프가 종이로 만든 게 있는가 하면, 내가 가는 가까운 우체국에는 비닐 테이프만 있다. 우체국 직원은 그 비닐 테이프로 친친 감아 포장을 단단히 해준다. 종이테이프가 아닌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친절만 고맙게 받는다.
   포장이 단순해야 일이 적다. 과대 포장은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한다. 과자봉지를 뜯었을 때 과자 양보다 공기가 더 많아서 피식 웃음이 나왔던 적도 있다. 그 안에 아무리 좋은 물건이 들어있어도 포장이 과하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눈앞만 보고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과 그런 물건을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포장으로 가치를 높일 수는 없다. 붐 물김치로 잠시나마 그런 과대 포장된 것들의 소비를 줄여볼 수 있다.
   김치 담아둘 통까지 준비하면 반시간 정도가 지난다. 이제 절인 재료를 헹구어 큰 그릇에 담는다. 큰 그릇이 없으면 김치통에 바로 담는다. 물김치니까 딱히 물을 다 빼지 않아도 괜찮다. 준비한 모든 걸 섞는다. 간을 살짝 보고 한쪽으로 두고 뒷정리를 한다. 두어 시간 후 다시 국자로 아래위로 뒤집어주면서 간을 본다. 두 번째 간을 볼 때, 물이나 소금이나 젓갈을 추가한다. 뚜껑을 닫고 하루 정도 실온에서 익힌다. 다음날 다시 살펴보고 김치 익는 냄새가 사르르 난다 싶으면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다.
   그 김치를 먹는 동안 누군가가 같이 먹을 사람이 떠오르면 성공이다. 설 쇠고 남은 떡국하고 먹어도 구색이 맞고, 국수하고도 잘 어울리는 게 봄 물김치다. 고구마나 감자, 단 케이크하고도 먹을 수 있다. 겨울이 지루할 즈음 의외로 위로가 되는 한 가지 음식이다.
    아! 배추랑 무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려주겠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갈무리를 한다. 농사짓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가을에는 누구든 겨울 채비를 해야 한다. 감말랭이도 만들고 무말랭이도 만든다. 양은 적게 한두 번 먹을 만큼만 한다. 한겨울에도 웬만한 채소는 나오기 때문에 필요하면 그걸 구해 먹어도 괜찮다. 시래기는 말려두어도 잘 먹지 않게 되어 근래에는 그냥 데쳐서 두 주먹 정도만 냉동해 둔다. 작은 배추 열 포기와 무 열 개 정도를 박스에 담아 아파트 테라스 온도 정도에 두면 겨우내 쌈 배추로, 뭇국 거리로 그만이다. 그걸 설 쇠고 정리하는 것이다.
   물김치를 먹으면 봄이 더 기다려진다.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봄 마중을 나가보아도 괜찮다. 맨땅이 있는 곳으로 슬슬 나가면 쑥이나 냉이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추운 겨울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