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아온 손자 녀석이 신이 나서 힘껏 내달린다. 그를 제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뛴다고 나무라지 않으며 복잡한 집기들도 없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오늘도 거실바닥에 온통 테이프로 선을 그어놓고 저만의 선을 지키려는 녀석의 밝은 미소가 집안 가득하다. 그래, 이 할미의 우둔한 감지를 뛰어넘어 손자 녀석은 슬기롭게 선을 지키며 살기를 오늘도 기도해 본다."
선 지키기 - 차은혜
“할머니, 이 선 넘어오면 안 돼.”
네 살배기 손자 녀석이 노란 테이프를 거실 바닥에 길게 붙여놓고 그 선을 넘지 말라고 으름장이다. 아이의 반응을 보기 위해 살며시 발을 선 안으로 넣어본다.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선 밖으로 내몬다.
“손자, 할머니도 함께하면 안 될까?”
조금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 보자 한참을 망설이다 후하게 인심이나 쓰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손자 녀석이 그어 놓은 선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선 밟으면 밖으로 나가 있어야 해. 그리고 못 들어온다.”
네 살배기 손자 녀석도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단호했다가도 더러는 유연한 손자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엉뚱한 생각으로 고개를 들게 한다. 선, 선, 선, 선…. 이 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제어하는 것인지 녀석은 알기나 할까.
‘선’을 안다는 것은 자기의 세계를 안다는 것이고, 또 나와 남을 의식하고 산다는 것이며, 많은 것들을 막고 있는 것을 알까. 네 살밖에 되지 않는 손자가 벌써 이 골치 아픈 문제에 빠져들고 있다는 데에 소름이 돋는다. 상대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자기의 영역을 지키려 함은 소유의 개념을 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갓난아이가 백일이 지나면서 손을 움켜쥐는 것을 보고 욕심이 생겼다고 이야기하지 않던가.
난 손자 녀석을 측은히 바라본다. 처음에는 완강하다가도 할미의 애원에 너그러워지는 것을 보니 나름 인간미는 있는 것 같은데, 요즘 세상을 어찌 살지 걱정도 된다. 그러면서도 다시 선을 밟지 말라며 강력하게 룰을 가르쳐 주는 모습을 보면서 큰 탈은 없겠지 싶기도 하여 미소를 보낸다.
“꽝” 무엇인가에 부딪히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이 무엇일까.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났는지 에어백이 강하게 얼굴을 때렸다. 순식간의 일에 정신을 잃었다. 쿵쿵 둔탁한 소리에 눈을 떴다. 차창 밖이 어수선하다. 그제야 무엇인지 어렴풋이 감지된다. 몸이 무겁고 얼굴은 후끈후끈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사고다. 지금 사고가 난 것임을 그제야 깨닫는다.
조금 전까지 내 앞을 달리던 차를 뒤따라가고 있었다. 좌회전할 때까지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앞차를 뒤따라가는 것에만 몰두했지, 직진으로 달려오는 차를 유념하지 못했다. 아니 상대 차가 좌회전하는 앞차를 미처 생각지 못하고 달리다 그만 뒤따라오는 내 차와 정면충돌을 한 것이다. 차의 앞 범퍼가 하마 입이다.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난 대책 없이 달아오르는 얼굴만 감싸고 서 있었다. 상대는 어딘가에 연락을 취하고는 태연하게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이런 일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상대는 도로 바닥에 하얀 선을 그으며 나를 향해 ‘중앙선 침범’이라며 눈에 힘을 준다. 아, 중앙선이 이리도 무서운 것이었구나.
“얘, 어른 노릇하기가 그리 쉬운 줄 아니? 니도 나중에 며느리 보면 알게 될 거다.”
친정엄마가 살아 계실 때 종종 하시던 말씀이다. 성깔 있는 양반이 어느 날부터 며느리 앞에서 납작 엎드리셨다. 아들밖에 모르던 엄마가 밖으로 빙빙 돌더니, 큰 각오를 하고 집으로 입성하면서 방향을 바꾸셨다. 당신의 자리를 확실하게 좁히셨다. 웬일인가 싶어 물어 보아도 대답이 없다. 묵묵부답이던 엄마가 겨우 챙긴 말은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었다.
친정엄마가 느꼈던 상황을 지금 이야기하는 자매가 있다. 아들 하나밖에 없는 그녀는 교직을 가진 며느리를 보았다고 좋아했다. 이것저것 싸들고 서울 아들네에 열심히 들락거렸다. 신혼 초이니 그만 가라고 권해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며느리가 두 해 만에 손주를 낳았다. 한걸음에 달려가더니 내려올 땐 풀이 죽어 말이 없다. 아들 이야기만 나와도 환하던 얼굴이, 울음이 터져 나올 상이다. 긴 시간 동안의 가슴앓이가 지나간 후에야 자매는 입을 열었다.
“이젠, 자식이고 나발이고 없다. 내 건강 내 지키고 재미있게 살끼다.”
자매 생각엔 직장생활에 살림이 쉽지 않겠다고 여겨 이것저것 해 주고 싶었지만, 며느리가 쳐놓은 선을 넘은 모양이다. 이 선이 아주 선명하게 쳐 있는 것을 시어머니인 자매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손주를 안아 보겠다고 하니, 며느리가 막는다.
“손 닦고 옷 갈아입고 만지세요.”
자매 딴에는 단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니 딸처럼 지내겠다고 생각한 것이 문제였다. 둘 사이의 선이 명확하지 않아 불신의 아픔이 컸던 것 같다.
밀착되어 지내면 좋지만 간격이 없다 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잊을 때가 있음을 까맣게 잊게 된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서로 배려하는 것이 신뢰를 지속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삶도 조금은 밀쳐놓고 이만치서 선을 지키며 바라볼 수 있는 거리라면 부딪치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자 녀석이 신이 나서 힘껏 내달린다. 그를 제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뛴다고 나무라지 않으며 복잡한 집기들도 없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오늘도 거실바닥에 온통 테이프로 선을 그어놓고 저만의 선을 지키려는 녀석의 밝은 미소가 집안 가득하다. 그래, 이 할미의 우둔한 감지를 뛰어넘어 손자 녀석은 슬기롭게 선을 지키며 살기를 오늘도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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