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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3월호, 통권197호 I 세상마주보기] 꽃물 든 손톱 속에는 - 김새록

신아미디어 2018. 5. 8. 08:26

"몇 시간을 헤매다 겨우 찾아낸 봉숭아 두 포기. 이 귀한 것을 나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꽃잎을 따가지고 간다는 게 편치가 않다. 일말의 양심과 귀한 선물을 훔쳐가려는 도둑의 심보가 줄다리기한다. 딸까 말까 갈등의 시소를 타면서 작달막한 봉숭아꽃이 되어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향해 엄니를 불러본다. “아따 겁나게 피어 있그만 그러냐. 양쪽 손가락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 세 개씩 물들일 꽃잎 정도 따는 것은 괜찮것따.” 엄니의 환영 속에 그만, 꽃잎과 잎사귀 서너 잎을 따가지고 와 봉숭아 꽃물을 머금고 깨복쟁이가 된다."






   꽃물 든 손톱 속에는    -    김새록

   그녀의 긴 손톱에 화려한 꽃이 피어 있다. 명예, 권력, 물질을 붙잡고 싶은 욕망의 갈증이 꽃으로 어울린 것 같다. 봉숭아 꽃물이 든 손톱 자랑을 하던 때가 그녀의 네일아트 속에 피었다. 은하수 흐르는 밤하늘을 가슴 속에 그리며 봉숭아꽃을 찾는다. 봉숭아꽃 속에는 오매불망 그리워도 뵐 수 없는 울 엄니를 볼 수 있다. 장독대에 앉아 깨복쟁이 동무들과 꼬막 껍데기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던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 속에는 세상 물정에 찌든 어른이 아닌 숨바꼭질하고 뛰어놀던 어린 친구들이 있고 쓸쓸한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먼 추억들이 잠겨있다.
   황금보화가 물질의 갈증을 충족시켜준다면, 봉숭아 꽃물은 세상 흐름에 지치고 메마른 정서를 순화작용하는 셈이다. 질펀함 속에 순수함이 있다. 그 목마름으로 여름이면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 연례행사를 한다. 까칠한 현실 속에서 탈피하고 오염된 때를 씻고자 하는 나만의 돌파구이기도 하다. 우리 집 짝지는 네일아트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마당에 촌스럽게 무슨 봉숭아 꽃물이냐며 핀잔을 주지만 나는 되레 콧방귀를 뀌고 만다. 바라보는 관점에서 현실과 과거의 충돌 속에 서로 마이동풍이다.
   그녀의 긴 손톱에 그려진 화려한 네일아트 너머 순박한 소녀를 그린다. 달빛 아래 모깃불 피워 놓고 마당에 펼쳐져 있는 평상에 앉아 부채 부쳐가면서 아롱다롱 손톱에 꽃물들이던 그때가 빛바랜 스냅사진처럼 펼쳐진다. 이 정겨운 수채화가 찜통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며칠째 요동친다.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중복을 앞두고 이슬비가 내리는 초저녁이다. 발동이 걸렸다. 뜨거운 간절함으로 세 시간 넘게 꽃을 찾아 샅샅이 눈에 불을 밝혔지만, 꽃은 보이지 않는다. 회색빛 고층아파트의 흔적들로 아우성일 뿐이다. 대단지 아파트 화단 어딘가에 코흘리개 친구를 닮은 봉숭아꽃이 있을 법했거늘, 그 생각은 도시의 괴물인 아파트가 가로막는다. 임을 찾아 나섰는데 바람맞은 휑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린다.
   는개비에 스며든 옷자락과 아픈 다리가 포기하라며 충동질을 한다. 갈등과 끌탕의 연속이다. 마음 한쪽에서는 어딘가에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을 것만 같아 포기할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사노라면 마음은 더욱 거칠어질 수밖에 없을 터. 무미건조한 현실일수록 추억을 들춰보는 일은 생기가 돋는 일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불렀던 “이슬비 내리는….” 동요를 흥얼거리면서 봉숭아꽃을 찾아 다시 헤맨다.
   그때다. 다세대 주택 골목으로 들어선 낯선 중년 여인이 나타났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속 좋은 친구를 만난 듯이 반갑다. 혼자 반가워하며 말을 붙여본다. “혹시 이 근처 어디에 봉숭아꽃이 피어 있는 곳을 아시나요?” 나를 바라보는 그 여인의 눈길이 흥미롭다. 흥얼흥얼 노래도 부르겠다. 날씨도 덥고 비가 오니까 정신 나간 여자가 나타났나 싶었을까. 요리조리 살핀다. 아니면 현실감 떨어진 케케묵은 이상한 사람을 보기라도 한 듯 채송화는 보았어도 봉숭아꽃은 못 보았다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며 지나간다.
   휑한 자리에 는개비보다 좀 더 굶어진 실비가 빗금을 긋는다. 어디선가 나타나 몸을 웅숭그린 채 엿듣고 있던 길고양이도 줄행랑을 친다. 나 혼자 넋 나간 여자처럼 반가워했던 낯선 여인도 지나가고, 고양이도 외면하며 손살처럼 달아나버린 일직선의 골목에서 맥이 빠질 무렵이다. 막다른 길 끄트머리서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심봤다.” 붉고 하얗게 피어있는 봉숭아 두 포기가 초연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름 달빛 속에 환하게 웃고 서 계신 어머니가 봉숭아꽃 속에 피어오른다. 사라져간 옛것의 아쉬움이 아련하게 머문 곳, 곡선의 골목과 창호지문에 스며든 달빛의 그리움이 흘러나온다.
   몇 시간을 헤매다 겨우 찾아낸 봉숭아 두 포기. 이 귀한 것을 나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꽃잎을 따가지고 간다는 게 편치가 않다. 일말의 양심과 귀한 선물을 훔쳐가려는 도둑의 심보가 줄다리기한다. 딸까 말까 갈등의 시소를 타면서 작달막한 봉숭아꽃이 되어 쪼그리고 앉아 하늘을 향해 엄니를 불러본다. “아따 겁나게 피어 있그만 그러냐. 양쪽 손가락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 세 개씩 물들일 꽃잎 정도 따는 것은 괜찮것따.” 엄니의 환영 속에 그만, 꽃잎과 잎사귀 서너 잎을 따가지고 와 봉숭아 꽃물을 머금고 깨복쟁이가 된다.
   앞을 향하여 질주하는 욕망의 덩어리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중지 약지 새끼손가락에서 추억의 달이 뜬다.
   그 속에서 노란 병아리가 기우뚱 걸어 나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