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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3월호, 통권197호 I 사색의 창] 선택 - 황인용

신아미디어 2018. 4. 25. 08:23

"리처드 로어 신부에 따르면 좋은 지도자는 항상 대안을 마련하고 더불어 해결하는 방법을 알며 자신보다 전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자다. 좋은 유권자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점의 폐해를 피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하고 대안정당의 육성은 필연임에랴!"






   선택    -    황인용

   농단壟斷은 깎아지르는 언덕을 뜻하는 용어다. ≪맹자孟子≫에는 이 농단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나이가 시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전체 상황을 파악한 다음 매점매석해 큰 이익을 남겼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겨 농단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명해진 것이었다. 박근혜 실용失用정권에서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은 국기國紀를 얼마나 문란케 했던가? 그토록 강성했던 보수세력의 마각을 통절히 폭로해준 점은 비선실세의 혁혁한 역설적 공헌일는지!
   농단에 해당하는 경제학 용어로 ‘독점’이 있었다. 경쟁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독점체제에서 공급되는 재화와 용역은 질이 낮은 대신 가격은 높다. 한마디로 가성비價性比가 형편 없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정치의 오랜 병폐였던 배타적 독점의 지역패권이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동안 한국정치는 지역정당이 특정지역을 볼모 삼아온 독점구조였다. 당연한 결과로 영호남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 까닭이 없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묻지 마 투표 말이다. 이 경우 유권자는 유권자 대접을 받을 리 만무다. 단적으로 호남은 참여정부로부터 주머니 속 물건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
   지난 대선에서 이 콘크리트 지역구도에 균열이 갔음은 다당제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진 축복이었다. 실로 다당제의 역사적 필연성과 당위성은 날로 분화돼 가는 국민의 다양한 이해를 대변해줄 군소정당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랴?
   양당제에서는 정권이 전리품이기에 승자는 모든 걸 독차지하는 반면에 패자는 잃는다. 그야말로 전부냐, 전무냐의 영합零合시합을 처절히 벌일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이러한 승자독식의 정치 문화를 개선하자면 다당제로 권력을 분점하고 연정을 통해 협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전제는 소수 정당도 국회 진출할 수 있도록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선거법 개정이다. 가령 정의당이 10% 득표하면 30명 정도가 국회 진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유형’이란 비교정치학의 현대판 고전을 쓴 레이프 하트는 우리에게 특별히 주문한다. 정부의 효율을 높이자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비례대표를 확대하라고! 또한 통일에 대비해 연방제 및 분권체제를 수립하고 상하 양원제 입법부를 구성하라고!
   리처드 로어 신부에 따르면 좋은 지도자는 항상 대안을 마련하고 더불어 해결하는 방법을 알며 자신보다 전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자다. 좋은 유권자라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독점의 폐해를 피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하고 대안정당의 육성은 필연임에랴!
   진보적인 유권자라면 좌파와 중도좌파 사이의 정권교체가 최선이다. 중도좌파정권이 실정失政하더라도 정권이 보수야당 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좌파정당을 육성해 놓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이 세상 장막이 무너지면 주는 그를 위하여 또 한 성을 예비해 두었나니.”
   성경 말씀은 얼마나 상징적인가?
   지금껏 좌파정당이 뿌리내릴 겨를이 없었음은 보수가 강하여 사표死票방지 심리가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보수가 폭망한 상황이니 진보주의자들은 마음놓고 좌파정당을 육성해도 좋을 계제가 아니랴?
   이러한 근본적인 여건 변화 탓인지 정의당에서는 호남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호남은 늘 전략적 선택을 할 만큼 정치의식이 높은 곳이니 진보의 비옥한 텃밭으로 기능할 소지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여기서 관건은 민주평화당의 진로다. 전국정당화와 수권능력 입증이 생존의 절대조건이라면 정의당과의 합당이 최선 아닌가 한다. 그럴 경우 우리의 정치구도는 좌파 중도좌파 중도우파 우파의 황금분할로 재편되는 셈이다.
   지금 문재인정권이 거울 삼아야 할 정권은 이명박근혜 실용失用정권은 결코 아니다. 민생경제에 무능해 폭망했던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경제민주화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어쩐지 문정권의 경제민주화 신념은 미덥지 못하다면 강력하게 견인해야 할 좌파정당의 필요성은 얼마나 절대적인가?
   그렇지 않아도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N포세대’는 부동산 폭등에 절망하고 가상화폐에 목을 매달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절망적 상황에서 좌파정당의 할 일이란 부동산 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토지공개념의 과감한 도입이다. 더불어 북유럽 복지국가들처럼 조세의 대부분을 부유층에게서 거두어 주거비와 교육비를 해결하자면 직접세(소득세 재산세 상속세) 위주로 조세제도 개편은 필수적이다. 좌파정당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같은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