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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3월호, 통권197호 I 사색의 창] 다섯 더하기 하나 - 송진련

신아미디어 2018. 4. 24. 08:15

"칠십에 가까워서야 자유 영혼이 되어 수채화를 그리는 언니의 도전 정신, 중병에 걸린 제부의 간병 중에도 붓을 놓지 않는 셋째의 강인함, 두 손주를 키우며 작가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넷째의 용기가 흐르고 흘러 태평양에서 하나가 되는 날을 기다린다. 나도 그 속에서 어울렁 더울렁 밤낮없이 뭍을 깨우는 파도가 되고 싶다."






   다섯 더하기 하나    -    송진련

   셋째의 그림 전시회가 M호텔에서 열린다. 남편의 은퇴식이 열리는 중국에 이어 인도까지 강행군을 한 탓에 여독이 쌓였지만 꼭 가야 할 곳이기에 준비를 한다.
   산다는 것은 강물처럼, 가야 할 곳을 향해 흔적을 만들며 흐르는 일, 목표를 향해 걷는 일이다. 쉼 없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러야 한다. 상류의 빠르고 격한 흐름은 젊은 날의 열정과 방황이었고, 맴돌고 애도는 시련과 갈등이 중년의 모습이었다면 하류의 깊고 완만한 흐름은 노년의 지혜와 넉넉함이라 하지 않았던가. 다섯 번째 전시회라 급히 서두를 것도 없고 가슴 떨릴 것도 없어 오후 기차를 탄다. 셋째와 나는 열정과 방황의 세월을 정리하고 시련과 갈등도 이겨 내고 바다로 합류한 강물이 되어 배를 띄우고 물고기를 키운다. 때론 바위를 툭툭 건드리는 파도가 되기도 하고 가끔은 몽돌을 씻기는 세신사도 되어 본다.
   축 처진 몸을 말없이 싣고 가는 기차가 새삼 고맙다. 영동 근처 들판 가장자리에는 녹지 못한 잔설이 얼룩덜룩 남아있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응달 언덕엔 눈의 잔해들이 수북수북 쌓여 있다. 겨울 산의 지킴이 낙락장송들도 오늘만큼은 마른 목을 축일 수 있겠구나. 눈이 펑펑 또 내렸으면 좋겠다. 동지冬至를 앞두고 있으니 서울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며 전시회장에 가기 전에 식당에서 모이자는 연락이 온다. 지하철 3호선 동대역 1번 출구에서 다섯째를 만난다. 식당엔 중년의 남녀가 섞여 술잔을 부딪치는 모습이 김을 내뿜는 냄비와 어울려 세밑의 풍요로움으로 다가오지만 이번에도 막내가 빠지니 앞니가 흔들리는 것처럼 따끔하다. 얼큰한 부대찌개 국물에 당면사리와 라면사리를 넣어 펄펄 끓인다. 지난주에 외국을 다니느라 먹지 못한 한식을 보충하려는 듯이 씹는 둥 마는 둥 훌훌 넘긴다. 땀을 흘리며 배불리 먹으니 허리가 펴진다, 혈액순환이 잘된 건지 벌건 얼굴로 어둑한 밤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문화와 예술의 거리라는 인사동 전시장을 몇 번 가 본 적이 있지만 호텔 전시장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다. 5, 6, 7층 객실과 복도에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늦은 도착이라 문 닫기 전에 열심히 돌아다닌다. 달리는 말 위에서 산을 보는 격으로 보고 다니자니 아쉽다. 새털같이 많은 나날이거늘 이 나이 되도록 이리도 여유가 없나 싶어 속이 상한다.
   작가들 작품 사이에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제품을 전시해 놓고 장사하는 사람도 있다. 며칠 후 창원공장에서 열리는 남편 은퇴식 때 입을 적당한 옷을 고른다. 주인은 검정 보석이 달린 코트와 큰 장미가 수놓인 스카프를 추천한다. 싫증나면 입을 사람이 여럿이니 망설일 필요 없다고 동생들이 너스레를 떨며 옷값을 지불해 버린다. 피로가 쌓여 앞뒤 분간도 못하면서도 수제 소품들을 사는 기쁨은 쏠쏠하다. 작가의 혼이 담긴 예술작품도 감상하면서 물건도 살 수 있는 바자회라고나 할까. 산책길에 사용할 천으로 만든 마스크 두 개와 빨간 인조 보석이 화려한 브로치도 한 개 산다.
   여섯 자매의 초상화가 전시된 객실로 돌아오니 셋째의 수고와 사랑이 살갑게 터치된 그림이 웃으며 다가온다. 내 수필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림 옆에 쌓아 두고 방문자에게 한 권씩 건넨다. “저쪽에 앉아있는 나의 언니가 수필가예요. 이 책에 저에 대한 글과 사진도 있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하니 언니도 목례를 한다.
   관람시간이 끝나고 화기애애한 수다삼매경에 빠져든다. 즐거움에 박장대소하고 감정에 겨워 눈물을 질금거리며 진정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대화의 시간은 잔잔하지만 깊게 흘러가는 우애의 강을 느끼게 한다. 매일 붙어살아도 지금처럼 편안할까, 가끔 살얼음에 금가는 소리라도 들리려나. “배연남 엄마를 향해 일동 경례!” 자매들의 모임이 있을 때 항상 엄마가 생각난다. 살아생전에는 엄마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진 않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고마움이 커진다.
   삶이 팍팍하여 여유가 없는 자매들을 밖으로 불러내려면 내가 용기를 내야 한다. 지갑도 활짝 열고 마음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우리는 만나도 불문율처럼 삶의 고통들은 말하지 않는다. 대충 알면서도 누구 하나 묻지 않는다. 뚜껑도 없이 꽉 찬 쓰레기통 위에 고운 포장지를 덮어 두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노랑나비 한 마리를 눈으로 쫓으며 곧 나타날 흰나비 얘기만 한다.
   사람은 다섯인데 침대가 셋이다. 밤을 새우자고 하면서도 누울 자리를 잡는다. 위로 셋은 침대에, 동생 둘은 침대에서 얇은 매트를 하나씩 빼내어 바닥에 자리를 잡는다. 찬물도 순서가 있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우리 자매다. 막내가 왔다면 문간 입구에 누울 테지. 밤이 깊어지니 한 사람씩 목소리가 잦아들고 가랑가랑 얕은 코고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수십 년 동안 각기 다른 질감으로 채색된 모습이 자매라는 이름으로 엉긴 채 정유년 십이월 중순의 밤 속으로 녹아든다. 
   남산 위에서 철갑을 두른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퍼진다. 화장실의 큰 거울 앞에서 태어난 순서대로 단장을 하고 객실 문을 나선다. 다가오는 무술년에는 여섯 빼기 하나가 아닌, 다섯 더하기 하나를 꿈꾸어 본다. 여섯 자매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 엄마가 즐겨 추시던 ‘몽당춤’ 한 번 추고 싶다. 얼씨구나 좋다 절씨구나 좋아……. 내가 선창을 하면 못 이기는 척 모두들 두 팔을 흔들고 훅훅 모둠발로 뛰어 날아오를 테지.
   모자를 눌러쓰고 외투를 걸친 채 로비에서 기념촬영도 한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기차로 버스로 전철로 각자의 길로 돌아갈 시간이다. 호텔을 나서니 직장인들이 영하의 칼바람에 코트 깃을 세우고 동동거린다. 추워도 비바람이 쳐도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한 부모 밑에서 오순도순 살던 유년의 기억이 뇌리를 스치니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시울이 따갑다. 급히 고개를 스카프 속에 묻는다. 앙칼진 바람을 이기기 위함인지 일그러진 내 모습을 들킬까 싶은 두려움을 숨기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칠십에 가까워서야 자유 영혼이 되어 수채화를 그리는 언니의 도전 정신, 중병에 걸린 제부의 간병 중에도 붓을 놓지 않는 셋째의 강인함, 두 손주를 키우며 작가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넷째의 용기가 흐르고 흘러 태평양에서 하나가 되는 날을 기다린다. 나도 그 속에서 어울렁 더울렁 밤낮없이 뭍을 깨우는 파도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