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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2월호, 통권196호 I 사색의 창] 십원데기 - 구수현

신아미디어 2018. 4. 5. 09:35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십원데기들이 있을까?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긴 시간 웅크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숨은 가치는 얼마나 될까.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가장들의 휘어진 허리는 또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반짝반짝 빛나게 태어나 제각각의 모습으로 세월의 더께를 쌓아가는 사람들. 이런 십원데기들이 있어 세상을 지탱해 주는 것은 아닐는지. 그렇게 보면 나도 한낱 부엌데기가 아니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내 가족의 꿈을 차리는 부엌데기."





   십원데기   -  구수현

   “엄마, 나 오늘만 영어 학원 쉬면 안 돼?”
   요즘 큰아이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한두 번 허락해주다 보니 빠지는 횟수가 잦아지는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하루 학원비가 얼만데, 그걸 알까 싶어 한마디했다.
   “쉬고 싶으면 하루에 해당하는 학원비를 엄마한테 내야지.”
   아이는 온갖 불평을 늘어놓으며 투덜거리다 결국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곤 저금통을 가슴에 안고 미적거리며 다가왔다. 차마 팔이 뻗어지지 않는 듯 힘겹게 저금통을 내밀며 머뭇머뭇 말했다.
   “이거… 다… 엄마 가져.”
   ‘말하는 부엉’이 인형을 사겠다고 지난 일 년간 얼마나 열심히 모았는지 꽤 묵직했다. 와르르 쏟아보니 천 원짜리 열 개에 나머지는 시답잖은 동전들이었다. 그중 제일 많은 것이 십 원짜리였다. 집 안에 굴러다니는 십 원짜리를 열심히도 모아 둔 모양이었다. 천 원짜리 열 개는 화장대 서랍에 넣었다. 나중에 심부름이라도 시키고 한 장씩 꺼내 줄 요량이었다. 백 원과 오백 원들은 내 지갑으로, 저금통 한 가득 남은 십 원짜리들은 검정 비닐봉지에 와르르 쏟아 넣었다. 은행에 가서 바꾸기도 민망한 십 원짜리들.
   그런데 그것들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돈의 가치를 알려주겠다며 1년여의 꿈을 몽땅 가져와서는 십 원은 돈 취급도 않고 버리듯 검정 봉지에 쓸어담다니. 십 원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억울할 것이다. 저금통에 있든, 검정 봉지 안에 있든 돈의 쓰임새를 못한 채 캄캄하고 꽉 막힌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사실은 똑같지만, 자신을 대하는 사람의 기대와 태도는 천지 차이니 말이다. 그 십 원들은 지난 1년간 딸아이 수중에 들어와 예쁜 장난감 보석이나 인형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크나큰 기대를 한몸에 받지 않았던가. 아무데나 굴러다니며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십 원짜리와는 분명 다른 일 년을 보냈을 것이다.
   30여 년 전, 내 어릴 적 십 원은 대단한 가치가 있었다. 공중전화 요금이 20원이었고, 어린이 버스 요금이 60원이었다. 당시 하루 용돈이 100원이던 나에게 10원은 대단한 존재였다. 등굣길은 내리막이라 걸어가기 수월했지만, 하굣길은 그 반대여서 버스를 타야만 편하게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50원짜리 아이스바를 사먹은 날에는 버스를 타지 못해 달동네 꼭대기 집까지 꼬박 40분을 걸어야 했다. 반대로 버스를 타려면 시원하고 달콤한 아이스바를 포기해야 했다. 그 두 가지를 다 하려면 반드시 10원이 더 있어야 했다. 등굣길에 10원짜리 하나를 주운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아이스바인 먹쇠와 깐돌이 중 뭘 먹을지 고민하며 얼마나 설렜던가. 그렇게 10원짜리 한 개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안겨 주었다.
   요즘의 십 원은 땅에 떨어져 있어도 욕심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통용되기보다는 영수증이나 통장에 찍히는 숫자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에는, 자신을 차버린 연인에게 “이 십 원짜리야!”라고 조롱하는 부분이 있다. 아주 형편없고 하찮은,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으로 십 원에 비유한 것이다. 노래 가사에는 그 시대의 사회상이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요즘 사람들이 십 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십 원은 만드는 데 드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구형 십 원짜리 한 개를 만드는 데는 36원이 든다고 한다. 신형 십 원 또한 20원 정도가 든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를 입히는 존재다. 쓰는 사람에게도 만드는 사람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십 원을 대량으로 훔친 도둑이 붙잡혔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십 원의 재료인 구리를 팔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십 원은 이제 돈이 아니라 36원 어치의 고철 값으로 더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필요에 부합하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오늘은 참으로 가혹하다. 구박데기가 돼버린 ‘십원데기’. 어쩌면 나도 십원데기일지 모른다. 식탁이 나의 책상이요, 싱크대 선반이 나의 메모판이요, 주방 한쪽 구석이 나의 소지품을 넣는 곳이다. 대부분의 일을 부엌에서 해결하는 부엌데기.
   그런데 십 원이 기막히게 쓰이는 곳이 있다. ‘990원 마케팅’에서다. 1000원에서 고작 10원을 깎아 준 것이지만, 소비자는 10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할인 받는 것으로 느낀다. 지불 수단으로써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심리적 수단으로써는 없어선 안 될 미끼다.
   또 천대 받으며 굴러다니는 십 원들 중에는 간혹 귀하신 몸이 있기도 하다. 1970년에 발행된 적동색 십 원은 희소성으로 인해 수집가들 사이에서 70~90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냉정한 쩐의 세계에서는 액면가가 그 신분이다. 십 원은 당연히 천민계급이다. 그중에 뜻밖에도 지체 높은 5만 원권 지폐를 내려다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라도 그런 것이 있는지 다시 살펴볼 일이다.
   십 원은 서민들을 보호하는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십 원이 없다면 10원만 올려도 될 물건값을 50원씩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 짐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다.
   십 원은, 버려졌으나 오히려 효를 다한 바리데기 공주 같다. 36원의 가치를 가지고도 10원으로 몸을 낮춘 십원데기.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십원데기들이 있을까?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긴 시간 웅크리고 있는 젊은이들의 숨은 가치는 얼마나 될까.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가장들의 휘어진 허리는 또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반짝반짝 빛나게 태어나 제각각의 모습으로 세월의 더께를 쌓아가는 사람들. 이런 십원데기들이 있어 세상을 지탱해 주는 것은 아닐는지. 그렇게 보면 나도 한낱 부엌데기가 아니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내 가족의 꿈을 차리는 부엌데기.
   볼품없이 던져둔 검정 비닐봉지를 버스럭거리며 펼쳤다. 십 원들이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와르르 쏟아보았다. 그것들이 바리데기로 보였다.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은행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딸아이의 소망도 바리데기로 피어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