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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1월호, 통권195호 I 지상에서 길 찾기] 함께 나이 드는 여자 - 김미원

신아미디어 2018. 3. 27. 09:05

"호르몬 탓인지 몸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은 차에 짧게 커트한 머리가 맘에 안 들어 너에게 푸념을 했더니, “엄마, 머리는 조금 있으면 자라.” 라고 했지. 마음이 순간 화르르 환해지더라. 그렇지, 모든 것은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게지. 이제 함께 나이 드는 여자, 너에게 어깨를 기대는 순간이 많아질 것 같다."





   함께 나이 드는 여자  김미원

   우연히 영화 <대학살의 신>을 보았어. 제목은 킬링필드나 아우슈비츠를 연상시켰지만 내가 좋아하는 조디 포스터와 케이트 윈슬렛이 나온다는 광고에 끌려 보게 되었지. 열한 살 사내아이들의 싸움에 교양 있고 지성적인 두 부모들이 만나면서 영화는 시작돼. 중요한 것은 가해자 부모의 사과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라 피해자 부모가 먼저 마음을 열었다는 거지. 피해자 부모가 우아하게 용서하고 가해자 부모는 간곡하게 사과를 하면서 악수를 하고 잘 해결될 것 같았는데 말꼬리를 잡고 서로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급기야 같은 편 배우자끼리도 쌓였던 감정이 폭발해 남의 집에서 물건을 던지고 육탄전까지 벌이지. 맛있다고 레시피를 물어보던 빵까지 토해내고 영화 원래 제목대로 ‘아수라장’이 되지.
   웃어넘길 수 있는 이 영화를 불편하게 느낀 건 과거 어떤 장면이 떠올라서였어.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땐가 친구에게 놀림을 받고 왔을 때 나는 널 좋아하는 거라며 넘겼다지. 너는 엄마가 당연히 그 아이를 찾아가 혼내줄 줄 알았다고 했지. 이 서운함을 다 큰 대학생이 되어 울면서 토해냈어.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이라고 머리에 입력시키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지. 덕분에 씩씩하게 자랐다고. 이 말을 듣는 순간 네가 기특하다기보다는 자라면서 혼자서 삭혔을 고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어. 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눈물을 꾹 참았지. 지금 생각하면 그때라도 널 와락 끌어안고,
   “엄마가 미안했어. 네 마음을 읽지 못해서. 얼마나 힘들었니?”
   라고 사과하며 소리내어 울었어야 했지.
   또 하나 마음 아팠던 건 피해자 엄마인 조디 포스터 때문이었어. 인권 전문 자유기고가인 그녀처럼 대단한 사회적 성취를 이룬 건 없지만 그녀의 모습과 내가 겹쳐졌어. 세계 곳곳의 짓밟힌 인권에 마음 아파하던 그녀가 아이들 싸움에 먼저 관용을 베푼 것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을 거야. 근데 점점 묘하게 감정을 건드리는 상대방 부부의 행동에 폭발하고 말지. 결국 그녀의 인내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던 거지. 이 퍼센트 다르다 한들 그녀 역시 다른 엄마와 다름이 없었지.
   옆에 허기진 사람이 있는데 내 입에 달콤한 것만 들어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 역시 한때 시민단체에 한때 몸담았지. 너희가 누굴 꼭 이기길 바라지 않았어. 이런 나를 어떤 이는 조롱조로 “휴머니스트구먼.”이라고 말하기도 했지.
   영화를 보며 조디 포스터처럼 애들 싸움에 잘못 끼어들다간 스타일 구길까봐, 아니면 어른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 비겁했던 건 아닌지, 위선자가 아닌가 반성을 했어. 너는 상처받았다는데, 그리고 그 사실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딸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을 자책했어. 영화는 공원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친하게 노는 어린이들을 줌 아웃시키면서 끝이 나지. 공연히 어른들만 바닥을 보인 거지.
   엄마가 돼본 적이 없는 엄마들은 첫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내 방법이 옳은 건지, ‘노릇’을 잘하고 있는지 애면글면하지. 언젠가 열흘간의 패키지여행 기간 동안 마음이 여려 양보만 하고 뒤에 처지는 엄마를 중학생 아들이 챙겨주는 것을 보았어. 그 아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엄마 대신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먹었을까. 천사 같은 그녀가 <써니>라는 영화에서 맞고 온 딸 대신 엄마가 친구들을 동원해 응징하는 장면을 보고 울었대. 글쎄 그 코믹한 난센스 같은 장면에 말이야. 그녀는 자신의 엉거주춤 착한 모습이 싫었던 걸까.
   시집가면 고생할 테니 자기 밑에 있는 동안 딸을 공주처럼 키운다는 친구가 있었어. 나는 아이는 내가 없는 곳에서 더 잘 자란다고 믿어 거꾸로 생각했지. 야생으로 자라야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있을 거라고 말야. 비가 억수로 쏟아지지 않는 한 학교 앞으로 우산을 들고 가지도 않았고 부끄럽게 엉거주춤 내미는 촌지가 부당하다 생각해 치맛바람을 일으키지도 않았어. 예민하고 욕구가 강한 너와 참 많이 부딪쳤지.
   주변 사람들은 겨우 십팔 개월밖에 차이 나지 않는 어린 두 아이들을 씩씩하게 잘 키우는 네가 참 대단하다고 말해. 예민해 상처를 많이 받았을 너는 아이들에게는 그 아픔을 주지 않으려고 주안이와 수아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온 신경을 쓰지. 너는 사라지고 없는 것 같더라. 나는 또 그게 마음이 아프네.
   지금 나는 변했어. 두 아이를 낳고 일가를 이룬 어른이 된 네게 나는 관대하지. 네가 도움을 청하면, 아니 그러기 전에 힘 닿는 한 도와주려고 해. 같이 나이 들어가는 사람으로 시간만 나면 너에게 달려가 좋은 추억 쌓으며 친구처럼 살고 싶어.
   네가 산통이 와서 주안이 낳으러 병원 가던 날 밤 생각나니? 너는 차에서 기다리고 약간 당황하고 흥분한 듯 보이는 윤 서방만 올라왔더라. 한걸음에 내려갔지. 작은 새처럼 두려움으로 웅크린 네가 뒷좌석에 앉아 있더구나. 옆에는 애기 배냇저고리 등을 넣은 보따리가 있었지. 잘하고 오라고, 아기 낳으면 새벽에라도 전화하라고, 힘겹게 내뱉고 눈물을 왈칵 쏟았지. 너는 왜 병원으로 곧장 가지 않고 내게 들렀을까.
   며칠 전, 호르몬 탓인지 몸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은 차에 짧게 커트한 머리가 맘에 안 들어 너에게 푸념을 했더니,
   “엄마, 머리는 조금 있으면 자라.”
라고 했지. 마음이 순간 화르르 환해지더라. 그렇지, 모든 것은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게지. 이제 함께 나이 드는 여자, 너에게 어깨를 기대는 순간이 많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