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못한 아버지가 꿈길에 망치를 드셨다. 예서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숨 거두길 소망하신 어머니 첫 기일을 이레 앞두고, 아버지가 폼 나게 오셨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뚝딱뚝딱 일을 하셨다. 꿈속이지만 지원군이 있어 든든했다. 가슴속 응어리도 다 소멸되는 것 같았다. 일이 더뎌지니 경계를 넘어서서 직접 나서신 걸까. 애태우는 딸을 더 두고 볼 수 없어 어루만져주는 것일까. 흑백이 명료한 보여주기 한 판 꿈! 돌이켜 생각할수록 미소가 고인다. 꿈속의 아버지 기세라면 천하에 다시없는 늘보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이제 곧 희소식이 들려오려나 보다."
아버지, 망치를 들다 - 김선화
내가 아마 남자였다면 하고 싶은 일 중에 건축가도 들어있을 것이다. 남자가 아니어도 이렇듯 불뚝불뚝 그 건설적인 일에 매료되니, 실제 그리 태어났다면 얼마나 열망하는 일이 많을까 짐작이 간다.
간밤엔 길 뜨신 지 13년이나 된 아버지를 만나 뵈었다. 고향집 너른 앞밭을 성큼성큼 걸어 올라오시더니 새 돌로 서툴게 쌓아올린 담장을 쓱 둘러보았다. 우리 내외가 구상은 잘했으나 힘이 달려 돌을 올려놓기에 급급한 옹성이다. 출입구를 낸 앞쪽으로는 훤하게 남겨두고 양 옆을 넓게 잡아 성곽처럼 쌓아올렸다. 그리고 사람이 기거해야 하는 안쪽으로는 둥그렇게 오밀조밀 제법 흉내를 냈다.
“이래서야 어디 담장 구실을 하겠는가.”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한마디 하시더니 이내 뭉툭한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딸은 본 듯 만 듯하고 안으로 튀어나온 큰 돌부터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펑~펑~펑~ 소리가 시원스러웠다. 그 장단 따라 돌들이 차츰 교열되어 갔다. 꿈쩍할 것 같지 않았던 바위도 망치질이 잇따르자 서서히 뒤로 물러나 안쪽이 고르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바깥쪽은 자연스런 미를 구축하고 있었다. 들쑥날쑥하긴 했지만, 외려 햇살과 바람이 돌 틈에 앉아 놀다 가지 싶었다. 묵묵히 지켜보던 나는 ‘아, 담은 저렇게 치는 거로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도 그윽하게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젊은 날의 아버지는 지게, 망치 등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땔감이며 모든 농사에 필요한 짐들을 지게로 져 날라야 했으니까. 생활반경이 산골이니 수레도 없을뿐더러 리어카길이 났을 리 만무하다. 그러한 중에 망치는 갖은 일에 쓰였다. 외양간을 짓거나 닭장, 토끼집을 지을 때 등등. 그것이 없으면 기초적인 일부터 할 수가 없었다. 논두렁 밭두렁이 빗물에 흘려내려도 나뭇가지를 잘라다가 망치질 몇 번으로 방천을 쌓았던 시절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공주 시골집에 있다. 헛간 시렁에까지 올라앉아 어험! 하며 헛기침소릴 낸다. 나는 그 집을 1년 전부터 기술자들에게 맡겨 수리 중인데, 맨 처음 한 일이 외관상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담장 정리였다. 소를 키우던 외양간 한 채를 후딱 헐어치웠다. 그 휑한 자리는 어른 가슴께 높이의 신식 담으로 멋을 부렸다. 앞 담과 옆 담이 그럴 듯하게 키 맞춤을 하자 마음이 한결 말끔해졌다.
그 다음으로 한 일이 지붕개량이었다. 전형적인 흙집에 빨간색 기와가 얹혀있던 안채를 검정 기와꼴로 올리고, 좌청룡 우백호 격의 사랑채 두 곳을 적색 함석으로 바꿨다. 산 아래 집이니 빗물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흙벽 아래쪽에는 어쩔 수 없이 시멘트로 옹벽을 쳤다. 그리고 황토 마당에는 질퍽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뒤꼍까지 자갈을 몇 차 부렸다. 이만큼만 수리를 해놔도 마을에 들어서면 집이 한 인물 났다. 동네에 들어서며 첫 번째 집이니 마을의 첫인상에 누가 되지는 않을 성 싶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자 장남인 오빠는 어머니만 쏙 빼서 이사 나간 집이다. 그곳에 어머니가 간간이 들러 사나흘씩 묵으며 텃밭을 일구고 이웃과도 정을 나누었다. 그때만 해도 안채가 온전했고, 이웃 할머니들이 평안했다. 하지만 노인들이 한분 두분 길을 뜨고 집도 기운이 쇠해 서까래 한 곳이 휘어졌다. 그리 되자 어머니는 서둘러, 짐을 사랑채로 옮기게 하고 혼자 묵는 일이 없어졌다. 혹 사랑채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셔도 내가 열쇠를 빼앗아두고 드리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지방에 오고가는 딸의 게으름이 한몫을 한 것이지만, 혼자 기거하시다 무슨 변고라도 날까 싶은 기우가 그리 주춤거리게 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내가 여기저기 풍수를 살피고 다니자 어머니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지나가던 스님이나 아버지 말씀으로 이 집터가 꽤 쓸 만하다 했다며 설득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나는 3년을 더 방황하다가 이차저차로 결국 친정집을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동생이 유산으로 받은 것을 누이가 의지처로 삼겠으니 넘기라 한 것이다. 금전적 가치를 떠나 부모형제와 살을 비비고 살아온 애환 깃든 공간이니, 누구라도 감행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라도 구옥의 외형부터 수리하고 나자 이웃사람들에게 체면치레는 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헌집 고치는 일이란 생각처럼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최대한 옛것을 살려두며 사람살이에 지장 없이 하려니 건축업자와의 사이에 마찰도 잦았고, 변덕도 자주 일었다. 그러면서 공사 시작한 지 근 1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어머니는 이미 사랑방 한 번을 열어보지 못한 채 먼 길 뜨시고……. 그 뒤에야 이 딸은 청개구리처럼, 어머니께 따스한 진짓상 한 번 지어올리고 싶었던 옛집에 마음 매달려 기웃댄다.
느려도 너무 느리다. 집 고치는 일로 거래하는 충청도 사람 말이다. 나도 충청도 출신이지만 그 성정이란 것이 사람 따라 다르지 땅 따라 다른 것은 아닐 터, 오리지널 그 업자는 아예 나무늘보다. 한다 한다 하면서 미루기를 몇 계절, 여름 가고 가을 가고 겨울 가고 봄이 무르익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내가 할 줄 안다면 직접 나서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하지만 장가 안 든 자식까지 남자가 셋인 집안의 아낙이니 벙어리 냉가슴 앓기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꿈길에 망치를 드셨다. 예서 하루만이라도 살아보고 숨 거두길 소망하신 어머니 첫 기일을 이레 앞두고, 아버지가 폼 나게 오셨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뚝딱뚝딱 일을 하셨다. 꿈속이지만 지원군이 있어 든든했다. 가슴속 응어리도 다 소멸되는 것 같았다. 일이 더뎌지니 경계를 넘어서서 직접 나서신 걸까. 애태우는 딸을 더 두고 볼 수 없어 어루만져주는 것일까.
흑백이 명료한 보여주기 한 판 꿈! 돌이켜 생각할수록 미소가 고인다. 꿈속의 아버지 기세라면 천하에 다시없는 늘보라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이제 곧 희소식이 들려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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