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동토의 땅 북한을 녹이기 위한 훈풍을 불어넣기 위해서 남한은 ‘투키디데스의 예언’이 ‘요한 묵시록’ 이상으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계시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남북 간 화해협력의 물꼬를 트도록 가일층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고대 역사가의 예언 - 안영환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한 역사가가 지하에서 관 뚜껑을 열고 지상으로 나와 키보다 더 자란 구레나룻을 날리며 예언한다. “역사의 진실, 즉 역사의 반복에 대비하지 못하는 자는 재앙을 맞으리….” 고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바로 그다. 20세기 중 서방 인문사회학계의 부름을 받고 현실세계에 등장하곤 했다.
역사에서 신흥강국이 출현하여 기존 패권국과의 세력다툼으로 판세를 뒤흔드는 형국을 후세 정치사학자들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정의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기존 패권자 스파르타와 신흥 도전자 아테네가 30년에 걸친 혈투 끝에 양자가 패망한 역사의 기록을 보면서 이 함정에 빠지면 어김없이 크나큰 재앙이 덮친다는 논거를 끌어낸 것이다. 20세기 양차대전의 참화를 겪고 나서 서방 학자들은 그를 불러내 어리석음을 한탄했었다. 일이 터지고 난 다음 늦게 깨닫게 되는 게 인간사회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19세기 말 통일 게르만제국이 신흥강국으로 등장했으나 기존 패권세력인 영국과 프랑스는 우왕좌왕하며 독일을 제어하지 못해 20세기 양차대전의 참화를 겪게 되었다는 탄식이다. 비단 유럽뿐이겠는가. 동아시아에서도 19세기 말 일본제국의 도약으로 중화 일극체제에 균열이 생겨 비극이 초래됐었다. 그 비극의 와중에서 한반도는 일제 만행에 신음했으며, 오늘날까지도 분단 상태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21세기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과의 양극체제가 굳어져 세력다툼이 전개될 형세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 중에는 동서양문화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중국과 19세기 프로이센을 동일시하는 자들이 있다. 19세기 자유민주적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 채 전체주의를 신봉했던 프로이센은 서유럽의 이단자였듯이 21세기 서방 측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이단이어서 함께 가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 판단이 세를 얻으면 전쟁이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일 간 분쟁을 보면 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보다 더 심각하다. 오스트리아제국 속령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한 사건이 도화선이 돼 대전에 휘말렸듯이 중일 간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이 개입하게 돼 있다.
3차 대전은 핵탄두를 비롯한 대량살상 무기의 가공할 위력으로 보아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중국의 전체주의적 체제를 변화시켜 동반자로서 끌어들이는 전략이 서방세계의 최우선이 돼야 한다.
적어도 동토의 땅 북한을 녹이기 위한 훈풍을 불어넣기 위해서 남한은 ‘투키디데스의 예언’이 ‘요한 묵시록’ 이상으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계시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남북 간 화해협력의 물꼬를 트도록 가일층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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