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을 알리고 지켜내는 일에 열심인 당찬 그녀에게 우리 모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걸어온 길이 그랬듯 앞으로의 행보도 우리 것을 알리고 빛내는 일에 앞장서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다시금 조각보의 미학에 빠져든다."
규방문화의 한 획을 그은 열정의 ‘조각보’
-전통자수에 평생을 바친 정영자 화백을 만나다 / 글·사진 김서로(시인,여행작가)
아름답다! 눈부시다! 환상이다!
2011년 9월 14일, 조선일보 미술관에서는 색다른 전시회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꿈과 환상의 바늘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한국화 화가인 정영자 화백의 조각보 전시였다. 조선일보 미술관 두 개의 넓은 전시실을 가득 채운 조각보들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색채와 문양에 입을 다물지 못한 관객들의 찬사가 각양각색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특히 우리 전통자수나 규방 문화에 관심이 많은 관객들이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할 정도로 열띤 분위기였다. 한 사람의 정성과 열정이 빚어낸 결과였다. 정영자, 그녀는 홍대를 졸업한 한국화 화가다. 그녀가 화필 대신 바늘을 들고 이루어낸 조각보의 세계는 아름답다 못해 숨이 막힐 듯한 문양과 색채의 파노라마였다.
우리 비단이 가지고 있는 색감과 질감을 최대한으로 살려낸 그녀의 수고로움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쁨은 측정하기 어려울 만치 환상이었다.
품위 있는 엔틱으로 잘 정돈된 그녀의 작업실, 고전적인 반닫이에 한지로 고이 싸서 차곡차곡 간수해둔 비단의 조각보들은 펼쳐도 펼쳐도 끝이 없다. 한 작품을 펼칠 때마다 한 옥타브 높은 탄성이 터졌다.
그림에서 처음 조각보를 택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남편의 사업관계로 많은 시간을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고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이들의 교육이었습니다. 글로벌화한 이 시대지만 우리 것, 우리 얼을 내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이 길이 오늘 제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문화나 얼 같은 영혼을 위한 정신적인 작업이 문자나 언어로만 계승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저의 진심을 알아주는 듯 잘 자라주었습니다. 외국에 살다 보면 다 애국자가 된다지만 우리 것을 지키고 계승 발전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애국이라 믿었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빠르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날로 황폐해져 가는 삶의 경도된 시각들이 정도인 듯 자리매김 되고 있는 건조한 이 시대, 우리 고유의 옛 것을 지키고 키워가야 하는 당위성은 인지하면서도 누구도 선뜻 이 길에 들어서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욱 세심하고 어려운 손작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조각보 작업은 많은 인내와 시간과 고통을 요구한다. 비교적 유복한 외국생활을 해온 그녀지만 검지와 인지에는 지문이 없다고 한다. 바늘이 그녀의 지문을 지워버릴 정도로 그녀는 작품에 올인해 온 까닭이다.
등촉을 밝히고 긴긴밤 꿈과 그리움과 기다림과 한을 수놓던 여인의 손길, 오리고 맞추고 이어가며 일궈내는 눈부신 색의 조화다. 그들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문양과 방법을 전승 발전시켜 재현해 낸 정영자 여사의 이 대단한 작업은 실로 우리 문화사의 한 획이라 상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 상찬할 일은 30년 가까운 시간을 해외에서 생활했으면서도 국내의 작가들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으로 우리 것을 지키고 가꿔온 점이다.
작품의 제작과정과 향방에 대해 질문했다.
“조선일보 미술관 전시회 때 여러 점이 낙점되었으나 저는 한 점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작품을 왜 팔지 않느냐고 의아해하시겠지만 유럽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과 달리 한 점을 완성하는데 적어도 몇 달은 걸리는 힘든 작업입니다. 손가락이 닳도록 힘든 산고의 고통을 겪은 자식 같은 작품을 내놓기가 쉽지 않았어요. 황라나 숙고사 같은 오래된 재료를 구하는 것도 어렵고, 같은 질감, 어울리는 색의 배합 등을 위해 옛 의상이나 장신구, 침구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매듭이나 흉배 같은 장신구들은 옛 것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구요.“
“외국에서의 전시회의 반응은 어땠나요?”
“한국통이기도 한 프랑스 솔본느의 마틴 푸르스트 교수 같은 분들이 내 작품에 키스를 할 정도로 좋아하셨어요. 유럽 문화를 주도하는 문화의 거장들이 부족한 저의 작품에 보내는 과분한 찬사는 아무래도 제가 작품 속에 우리 빛깔, 우리 문양, 우리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하시던 오방색에서 파생된 빛의 갈래들은 환상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임지를 따라 30년 가까이 해외에서 생활했다. 파리나 로마 비엔나 런던 등 그녀의 전시 계획은 거침이 없다.
잘 자란 1남 2녀의 자녀들과 남편의 후광 역시 그녀를 당당하게 했으리라.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다시 유럽 진출을 시도하려는 그녀의 의지는 자신에 차있다. 우리 것을 알리고 지켜내는 일에 열심인 당찬 그녀에게 우리 모두 큰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걸어온 길이 그랬듯 앞으로의 행보도 우리 것을 알리고 빛내는 일에 앞장서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다시금 조각보의 미학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