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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인간과문학 2015년 봄호, 수필] 한 장 혹은 두 장 - 이상원

신아미디어 2015. 5. 14. 18:00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티슈. 이용하는 사람이 필요와 용도에 따라서 한 장 혹은 두 장을 선택한다. 때로는 여러 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부족하다면 다음에는 더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만 고집하지 말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이용하면 된다. 나에게 이 적절함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 듯싶다. 평생을 살면서 적절함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인류의 문제일지 모른다. 인류가 가진 ‘명제’를 혼자 짊어지기에는 부담스러워진다. 만약 내가 찾지 못한다면 내 자녀들이 찾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피식하고 코웃음이 나온다."

 

 

 

 

 

 

 한 장 혹은 두 장        /  이상원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신 후 책상 위 티슈 한 장을 뽑아 입을 닦는다. 부족한 것 같아 한 장을 더 뽑아서 처음 것과 겹쳐 다시 닦는다. 입을 닦은 휴지는 두 손으로 동그랗게 말아서는 휴지통에 넣는다. 하지만 아직도 입주위에 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다시 뽑으려 했지만 티슈 통은 비어 있고 휴지통에는 버린 티슈가 쌓여 있다.
   오늘 회의를 다녀온 후 내가 한 행동이다. 장시간 회의에 할 말을 못해서 입술이 마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입술이 마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항상 그렇지만 회의는 부담스럽다. 준비할 것이 많고 다루는 주제가 대부분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주최자의 일방적인 설명이나 연설을 듣는 것이 회의였다. 이런 회의는 덜 부담스럽다.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적을 뿐더러 상대방의 발언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며 잘 듣고 있다는 반응만 표현해 주면 된다. 하지만 최근 경향은 참석자들에게 대부분 발언할 기회가 주어진다. 주제가 본인과 관계가 있든 없든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이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발언의 기회는 더 자주 온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에게 질문이 오지 않길 바란다. 만약 발언할 기회가 온다고 하더라도 참석자 누구든 본인이 잘 알고 있고 답변을 잘할 수 있는 질문이 오길 바란다. 나 또한 그렇다. 무엇보다 나의 생각과 의견을 말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서툴기 때문이다.
   주위를 보면 생각이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 과할 때가 많다. 특히 내 자신이 그런 거 같다. 내가 하는 말들은 휴지통에 버려질 티슈와 같아 늘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머리에 담겨 있던 많은 생각들이 말로 표현될 때 내가 하려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은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오해가 생겨 사이가 멀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고자 하는 말은 티슈 한 장이면 충분할 것인데 두 장을 쓰며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리 있게 말을 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말수를 줄이게 되고 입을 닫게 되었다. 
   말수를 줄이고 입을 닫으니 다른 사람들과의 오해는 없다. 그냥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기만 하면 되니 오히려 편하다. 그러다가 하고 싶은 말들을 적절한 시간에 표현하지 못했을 때는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혼자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회의시간에 질문이 나에게 오지 않길 바라는 이유이다.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회의가 길어진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동료들에게 질문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질문이 오면 준비했던 것처럼 모두들 적절하게 대답도 잘한다. 필요한 시기에 적절하게 이용되는 한 장의 티슈와 같다.
발언 기회 없이 회의가 마무리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에게 의견과 경험들을 묻는 질문이 들어왔다. 머릿속에는 논의되었던 안건들에 대한 혼자만의 생각과 다른 이들이 발표한 견해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생각들로 넘쳤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말로 표현한다면 과할 것 같아 어느 정도 수위와 길이로 해야 할지 맴돌기만 한다. 어쩌면 나의 말에 의해 분위기를 망칠 것 같다. 정적이 흐른 후에 짧은 대답을 하지만 질문은 다른 동료에게 돌아간다.
   동료가 한 발언은 기억나지 않은 채 회의는 정리된다. 회의 주최자는 정리 발언을 하면서 나를 보며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너무 없어졌다면서 무슨 고민 있냐고 물어온다. 또다시 내가 말을 한다면 장황하게 말하게 될 것이고, 그 답변에 대해 되돌아올 질문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머뭇거린다. 마지막으로 주최자는 나를 지목하며 앞으로 회의를 비롯한 직장생활에서 말을 많이 할 것을 권유하며 회의는 종료되었다.
   금번 회의에서 나는 몇 장의 티슈를 이용한 것일까. 나는 적절치 못했다. ‘적절함’이란 단어만큼 애매한 표현이 또 있을까 싶지만 요리에서도 ‘소금 적당히’가 있지 않는가.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티슈. 이용하는 사람이 필요와 용도에 따라서 한 장 혹은 두 장을 선택한다. 때로는 여러 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부족하다면 다음에는 더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가지만 고집하지 말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적절하게 이용하면 된다. 나에게 이 적절함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인 듯싶다. 평생을 살면서 적절함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인류의 문제일지 모른다. 인류가 가진 ‘명제’를 혼자 짊어지기에는 부담스러워진다. 만약 내가 찾지 못한다면 내 자녀들이 찾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니 피식하고 코웃음이 나온다.
   나의 말들이 늘 필요 없는 두 장이 될까 봐 고민하고 위축되어 있던 나. 한 장이든 두 장이든 그 절묘함을 찾아보면서 이제는 화장실 거울과의 대화시간은 줄여보고 싶다.
   다 써버려 비어 있는 티슈 통을 새 것으로 바꿔본다. 그 다음에 티슈가 쌓여 있던 휴지통을 들고 일어선다. 다음 회의는 언제일까.

 

 

이상원  ----------------------------------------------

   《수필과 비평》 등단(2009), 한국 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계룡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