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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인간과문학 2015년 봄호, 특집 재미시인: 김송희]  2015년의 날마다 새벽 Ⅰ 외 4편 - 김송희

신아미디어 2015. 4. 22. 08:48

계간 인간과문학에서 재미시인 김송희님을 조명해봅니다.  "시가 아니라도 그냥 새벽마다 자판을 두드리기로 작심했다. 이는 내 뉴욕 생활 50년 만에 처음 해보는 나와의 새해 약속이다. 그런데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시도 글도 아닌 것이 나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이 지상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리 해야 하는 것을…."

 

 

 

 

 

 

 

 2015년의 날마다 새벽 Ⅰ  외 4편        /  김송희

 

살아 있음에 사랑하는 이

 

머리 안에 그려진 미래의 시간들에
이젠 매달리지 않기로 한다
지상에서 이별하고
별과 바다가 된다는
그런 소녀의 꿈도 버린다

 

말간 해가 새벽잠을 깨우듯
그대 먼 얼굴
갈증으로 불타는 입술
사막에 꽃을 심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열 손가락마다 묻어나는
그대의 물결치는 가슴 속 떨림
나는 느껴야 한다


불타오르는 산불에 재가 되어가는
모든 순간을…
수천 년 묵은 꽃술에 나는 취하리라

 

살아 있음에 사랑하는 이

 

 

 

파도여!
춤추게 하는 나의 넋

 

짙푸른 물결이 조용히
달려오는 겨울 바다
거대한 산이
입을 벌린다

 

눈을 감는다
사랑은 순종한다
넋이여!
천국까지 함께 갈 수는 없는가
바닷바람에 휩쓸어 가는
태초의 순수를 너에게 맡긴다

 

오랜 방황 끝에 다사로운 항구에 머물고 싶다
그대의 심장이 되어
두려울 것도 없는 뜨거운 태양으로
타오르고 싶다.

 

파도여!
내 심장을 적셔다오
태초로 소리 내어 통곡하도록
현실은 창살 없는 무서운 절망이다
처음부터 기다림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 사랑에 눈 먼 자다
고달픈 불면의 밤이 지나면
새벽은 언제나 환한 모습으로
나를 슬프게 한다

 

 

 

먼 나라 그리움

 

하늘거리며 스쳐가는 뉴욕 바람에
아리는 속살
하늘과 물살이 그대 대신하여
입맞춤하는데

 

사랑하는 그대여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짙어가는 세월에 재가 되네

 

오늘도 빈자리 얼굴 파묻고
날마다 새벽
이슬에 젖은 꽃잎

 

 

 

속으로 우는 뉴욕 메아리

 

그대가 먼저 종을 칠 수는 없는가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기다린다고
첩첩의 숲을 울리고 울려서
속으로 우는 메아리

 

절망이 그대를 두렵게 하거든
깊은 산으로 올라가
침묵보다 더 웅장하게 소리 질러라

 

춤추는 바람결
별처럼 수많은 잎새들의 오케스트라
숲 속에 숨어 있는 모든 생명들은 깨어나
노래할 것이다
그대는
천상의 아름다운 메아리에 취할 것이다.


소리 질러라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 있어도
숲으로 가득한 산이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기다린다고

 

 

 

모국어 사랑은 날마다
나의 새벽이다

 

다시 뉴욕의 새벽이 시작되었다.
나는 시인인가, 재미 시인인가.
중간쯤에서 이방인의 쓸쓸함을 오랜 세월 견뎌냈어야 했다.
과거, 미래, 현실 이 순간
모든 것과의 마지막은 고요한 이별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내 작은 창에 다가 온 세월은
마음에 품지 않고
해가 솟아오르지 않아도
동트는 새벽을 그린다

 

창밖 멀리 반짝이는 산동네의 불빛이
보석처럼 빛날 때 쯤
고단한 마음을 접는다.

 

빛나는 것은 별 뿐이랴.


내 조국에 심어둔 추억과 사랑은
마음 속 그림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아스라한 먼 나라
모국어 사랑은 날마다 나의 새벽이다.

 

 

 

김송희  ---------------------------------------------

   《현대문학》 3회 추천 완료(1963), 시집 《이별은 고요할수록 좋다》 외 6권 등 공저 다수, 수필집 《시도 때도 없이 외로울 땐 배가 고프다》 외 3권 등 공저 다수, 미주 펜 문학상, 숙대문학상, 미당 시맥상 외 수상, 한국여성문학회 자문위원, 한국 펜 이사, 미동부 한국펜 회장, 미동부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국시인협회 회원. 등

 

 

창작노트

   시가 아니라도 그냥 새벽마다 자판을 두드리기로 작심했다.
   이는 내 뉴욕 생활 50년 만에 처음 해보는 나와의 새해 약속이다.
   그런데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시도 글도 아닌 것이 나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이 지상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리 해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