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문학에서 재미시인 김송희님을 조명해봅니다. "시가 아니라도 그냥 새벽마다 자판을 두드리기로 작심했다. 이는 내 뉴욕 생활 50년 만에 처음 해보는 나와의 새해 약속이다. 그런데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시도 글도 아닌 것이 나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이 지상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리 해야 하는 것을…."
2015년의 날마다 새벽 Ⅰ 외 4편 / 김송희
Ⅰ
살아 있음에 사랑하는 이
머리 안에 그려진 미래의 시간들에
이젠 매달리지 않기로 한다
지상에서 이별하고
별과 바다가 된다는
그런 소녀의 꿈도 버린다
말간 해가 새벽잠을 깨우듯
그대 먼 얼굴
갈증으로 불타는 입술
사막에 꽃을 심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열 손가락마다 묻어나는
그대의 물결치는 가슴 속 떨림
나는 느껴야 한다
불타오르는 산불에 재가 되어가는
모든 순간을…
수천 년 묵은 꽃술에 나는 취하리라
살아 있음에 사랑하는 이
Ⅱ
파도여!
춤추게 하는 나의 넋
짙푸른 물결이 조용히
달려오는 겨울 바다
거대한 산이
입을 벌린다
눈을 감는다
사랑은 순종한다
넋이여!
천국까지 함께 갈 수는 없는가
바닷바람에 휩쓸어 가는
태초의 순수를 너에게 맡긴다
오랜 방황 끝에 다사로운 항구에 머물고 싶다
그대의 심장이 되어
두려울 것도 없는 뜨거운 태양으로
타오르고 싶다.
파도여!
내 심장을 적셔다오
태초로 소리 내어 통곡하도록
현실은 창살 없는 무서운 절망이다
처음부터 기다림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 사랑에 눈 먼 자다
고달픈 불면의 밤이 지나면
새벽은 언제나 환한 모습으로
나를 슬프게 한다
Ⅲ
먼 나라 그리움
하늘거리며 스쳐가는 뉴욕 바람에
아리는 속살
하늘과 물살이 그대 대신하여
입맞춤하는데
사랑하는 그대여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짙어가는 세월에 재가 되네
오늘도 빈자리 얼굴 파묻고
날마다 새벽
이슬에 젖은 꽃잎
Ⅳ
속으로 우는 뉴욕 메아리
그대가 먼저 종을 칠 수는 없는가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기다린다고
첩첩의 숲을 울리고 울려서
속으로 우는 메아리
절망이 그대를 두렵게 하거든
깊은 산으로 올라가
침묵보다 더 웅장하게 소리 질러라
춤추는 바람결
별처럼 수많은 잎새들의 오케스트라
숲 속에 숨어 있는 모든 생명들은 깨어나
노래할 것이다
그대는
천상의 아름다운 메아리에 취할 것이다.
소리 질러라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 있어도
숲으로 가득한 산이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기다린다고
Ⅴ
모국어 사랑은 날마다
나의 새벽이다
다시 뉴욕의 새벽이 시작되었다.
나는 시인인가, 재미 시인인가.
중간쯤에서 이방인의 쓸쓸함을 오랜 세월 견뎌냈어야 했다.
과거, 미래, 현실 이 순간
모든 것과의 마지막은 고요한 이별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내 작은 창에 다가 온 세월은
마음에 품지 않고
해가 솟아오르지 않아도
동트는 새벽을 그린다
창밖 멀리 반짝이는 산동네의 불빛이
보석처럼 빛날 때 쯤
고단한 마음을 접는다.
빛나는 것은 별 뿐이랴.
내 조국에 심어둔 추억과 사랑은
마음 속 그림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아스라한 먼 나라
모국어 사랑은 날마다 나의 새벽이다.
김송희 ---------------------------------------------
《현대문학》 3회 추천 완료(1963), 시집 《이별은 고요할수록 좋다》 외 6권 등 공저 다수, 수필집 《시도 때도 없이 외로울 땐 배가 고프다》 외 3권 등 공저 다수, 미주 펜 문학상, 숙대문학상, 미당 시맥상 외 수상, 한국여성문학회 자문위원, 한국 펜 이사, 미동부 한국펜 회장, 미동부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국시인협회 회원. 등
창작노트
시가 아니라도 그냥 새벽마다 자판을 두드리기로 작심했다.
이는 내 뉴욕 생활 50년 만에 처음 해보는 나와의 새해 약속이다.
그런데 한 달이 되어 가는데 시도 글도 아닌 것이 나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이 지상의 삶이 끝날 때까지 그리 해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