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시대에서 밀려난 우리 문학을 조금씩 우리 품으로 되돌려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색에서 검색으로 가고 있는 지금, 지하철을 타고 보면 열에 아홉은 폰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 곳곳에서 책을 보던 따뜻한 풍경이 그립다. 홀로 가두는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문학이 이루어낸다면 따뜻한 세상은 절로 올 것이다."
어려운 시 / 이병애(국악인)
시가 어렵다는 것은 작가가 창작을 하는 과정의 문제일 뿐 그것이 독자와의 관계까지 연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화자가 되는 모든 시적 대상물을 고도의 생략과 응축으로 예술적 가치를 부여할 만한 운문으로 쓴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고통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예술적 가치는 최소한의 보편성이나 객관성을 확보하여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독자들과 소통이 될 수 있는 범위 안이어야 한다. 과거의 시문학 역사를 보면 매우 뛰어난 예술성을 확보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 지금까지도 국민들이 애송하는 시가 되어 있다.
이해가 쉽고 감동이 있는 글을 만나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삶의 재미가 붙는다. 둥실 구름을 타고 좋아하는 꽃향기를 맡는 것처럼 행복하다. 작가를 만나진 않았지만 글 한 편만으로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까지 든다. 그냥 앉아서 널름 좋은 글에 감동하는 염치없음에 미안하기도 하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
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
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
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
상처 많은 꽃잎들이
가장 향기롭다
- 정호승의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전문
이렇듯 이름 있는 시인도 읽으면 가슴에 바로 와 닿는 시를 쓴다. 상처 많은 꽃잎이 향기롭다는 대목에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시를 읽어내는 마음이 따뜻해진다.
예로부터 ‘문장삼이文章三易’라는 말이 있다.
이견사易見事- 읽기 쉽게 쓰라
이식자易識者- 알기 쉽게 쓰라
이독송易讀誦- 외기 쉽게 쓰라
문장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을 이르는 말이다. 즉, 문장이란 보기 쉽고, 알기 쉽고, 읽기 쉬워야 한다는 뜻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글을 어렵게 쓰는 것도 작가의 개성일까?
요즘 현대시를 읽다보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첫 줄부터 해설이 필요한 시를 끝까지 읽어 내려 갈 능력이 내겐 없다. 시작노트의 힘을 빌리고 어지러운 문장을 풀어 보면서 노력해 봐도 이해가 될까 말까 한다. 물론 작가는 밤잠을 반납하면서 작성한 소중한 글이다.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몇 십 줄의 글을 읽고 작가만의 깊은 세계에서 나온 귀중한 시일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시는 따분해서 감동과는 먼 길이다. 제목과 연계해서 이해를 하고 싶어도 분석하고 연구하게 만드는 한계에 부딪친다. 시 감상으로 마음의 화평을 얻기 보다는 심한 경우는 고문당하는 느낌이다.
“어렵고 교묘한 말로 꾸민 글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문장의 재앙이다.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쉽고 간략하게 써야한다.” 교산 허균의 말이다. 독자와의 소통이 없으면 글로써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것은 독자와 함께 공유할 가치를 상실하는 일이다.
어려운 글은 철학만으로 충분하다. 그렇잖아도 복잡한 시대에 사는 독자들이 골치 아프게 어려운 시를 왜 읽겠는가! 어려운 시는 시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와도 멀어지게 한다. 오히려 문학을 통해서 피폐해진 정신세계를 위로받고 싶은 현실이라면 더 쉬운 시를 써서 독자와 소통해야 하지 않을까. 쉬워도 좋을 글이 왜 어려워야 대접을 받을까, 난해할수록 인정과 존경을 받는 글이 되는 것일까. 독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길, 작가의 글속에 빨리 파묻히는 길은 이해하기 쉽고 의미가 전달되는 글이다. 야속한 내 문학의 이해 능력의 한계에 부끄러움만 가득하다. 저절로 암송하고 싶어 못 견디던 노만주의 문학이 그리울 때가 있다.
우리 문학이 과거 19세기에 이루었던 자연주의나 노만주의魯漫主義 시대에는 문학도 뭉클했었다. 그 시대에는 시 몇 편씩 암송하면서 힘든 가슴에도 낭만의 시를 꽃 피웠다. 노벨상 중 문학상을 맨 위에 올려놓을 만큼 문학이 인류문명에 앞서갔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치, 사회, 과학이 대두되다 보니 사실 문학은 뒤로 밀려나 있는 상태다. 이 시대에 문학이 독자와 멀어진 원인이 몇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어렵고 재미가 없어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작품 생산에 있다.
우리는 곤고한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문명에 압박받고 복잡하게 살아갈수록 문학이 힘든 이들의 마음에 정신건강까지 책임 질 수 있는 길잡이었으면 좋겠다. 문학에도 ‘힐링’의 바람이 불어 감동성이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이 독자에게 힘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사회가 변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글도 바뀌어야 하는 줄은 안다. 음풍농월에서 안주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시문학이 추구하는 한계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추구하는 문학을 나는 잘 모른다. 그들이 그리는 세계를 치열하게 추구하면서도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표현 문장은 얼마든지 있지 않겠는가! 때로는 작품 이해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좋은 글이라고 추천되는 평론을 같이 읽어 보기도 하지만 정작 이해의 도움말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애매모호한 미화로 두루뭉실 넘어가고 있는 경우도 있어 어려운 시를 더욱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공모전이나 백일장 같은 곳에서 선정하는 작품이 먼저 쉬운 시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 곳에서 내 놓는 작품은 시 독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시대에서 밀려난 우리 문학을 조금씩 우리 품으로 되돌려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색에서 검색으로 가고 있는 지금, 지하철을 타고 보면 열에 아홉은 폰 속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 곳곳에서 책을 보던 따뜻한 풍경이 그립다. 홀로 가두는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길을 문학이 이루어낸다면 따뜻한 세상은 절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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