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 2013년 12월호, 신작수필 16인선] 고래사냥, 시대의 노래 - 김창식

"치열한 삶? 그런 것 없었다. 단언컨대 그와 나를 견인한 것은 역사 인식이나 사회적 책임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하찮은’ 빈곤이었다. 그와 나는 가난에 변변히 맞서보지 못했다. 때로 가난은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으며, 삶의 징표, 존재의 이유처럼도 느껴졌다. 동생은 형의 제대 시기에 맞춰 지원 입대했다. 그것은 식구를 줄이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고래사냥, 시대의 노래        /  김창식

 

   그해 11월. 복학한 지 일 년여가 돼가던 나는 명동 유네스코 회관 뒤 생맥줏집 ‘청맥靑麥’에 그녀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사뭇 나이 차가 나는 같은 과 여학생인데 나를 ‘형’이라고 칭했다. 중성적 어감이면서도 친근감이 우러나는 표현. “형, 있잖아요. 형을 보면 어떤 사람 얼굴이 떠올라요. 그 사람은 같은 과 학생인데….”
   그녀가 맥주잔을 부딪치더니 “형, 마셔!”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강의실이 아니라 동산이나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곧잘 누워 지내곤 했어요.” 이어 덧붙이길, “왜 그런 날 있잖아요. 연무가 끼어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고 스산한 바람이 젖은 나뭇잎을 흩뿌리는 날….” 내가 대꾸했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그녀가 ‘쿡’ 웃었다. “맞아요, 오늘 같은 날이면 어디선가 그가 나타났어요. 어김없이. ‘툭’하고 돌멩이를 걷어차며. 그리곤 교정을 가로질러 수돗가로 가서 물을 마시곤 했죠.” 그는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돌이야 우연히 발밑에 있었고, 던져진 돌도 그 자체로서 거기에 존재했을 것이며, 그의 발부리에, 운동장에, 세상에 버려져서, 여하튼 그곳에. 참, 그가 수돗가에 간 것은 인식의 충동으로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허기진 배를 물로 달래려 한 것이었다.
   그녀는 내처 그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행동거지가 어설퍼 복학생으로 불린 그는 또래 재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겉돌았다. 그렇다고 복학생 형들과 트고 지내는 것도 아니었다. 과 대항 축구시합이 있던 날, 학생들이 모여 응원을 하는데 누군가 “복학생이다!” 하고 소리쳤다. 그가 불콰한 얼굴로 동료들이 앉아 있는 비탈진 돌계단으로 비틀비틀 걸어왔다. 그는 그런 류의 모임에 도통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이심전심 껄끄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심약한 여학생들은 자리를 피했고, 사람들은 다시 응원에 열중했다. 응원가는 <고래사냥>이었는데, 그도 간간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는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붉어지고 눈물이 비치며 숨결에 열기가 느껴졌다. 노래의 후렴 가사가 하필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였다. 목청껏 “자~”를 외치는 순간 그가 있던 뒤쪽에서 물줄기가 쏟아져나오며 시큼한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은 주낙 같은 물세례와 멸치 떼처럼 비산하는 파편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새로운 감수성의 저항가요로 자리매김한 〈고래사냥〉(1974)은 국가 원수를 고래에 빗대었다고 해서 얼마 되지 않아 금지곡으로 묶였다. 이 곡을 작곡하고(작사는 최인호) 노래한 송창식 또한 어떤 메시지를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그냥 노래를 불렀을 뿐이라고 나중에 해명했다. 경위야 어떻든 엄혹한 시대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이 노래로 위안을 받았으며, 이 노래로 불온한 시대와 맞서거나 시대의 광기에 개입했다.  “노래의 ‘자아~’ 부분이 문제였나 봐요. 그렇지 않았으면 참을 수 있었을 텐데….” 그녀가 상념을 일깨웠다. “근데, 근데 말이죠. 형을 보면 그가 생각나요.” 그녀는 외치듯 단숨에 말했다. “아까부터 이 말을 하려 했어요. 그 사람은 키도 크고 형과는 다르게 생겼어요. 근데….”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는데 열정은 더 강해졌다. “근데도 무언가 형과 닮은 구석이 있어요. 기질이랄까 분위기. 전해오는 미세한 기운의 파동이. 그것이…, 그것이 정말 이상해요.”
   나는 “왜 아니겠어요. 그게 그럴 수밖에.”라고 말하려 했으나 목이 메어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가 시작되고부터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리 된 것…. 그가 가고 형이 온 것이군요.” 나는 입술을 달싹여 억눌린 목소리로 그렇다고 했다. “한꺼번에 대학생 두 명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어느 집도!”
   삼 년 터울인 동생은 정릉동 산 1번지 ‘해 뜨는 집’에 세 들어 사는 형제 중 별종으로 유독 키가 컸다. 나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 역시 시대의 초상이 아니었다. 그에게 시대와의 불화, 저항을 덧씌우는 것은 허울 좋은 췌사贅辭였다. 그는 운동권 학생이거나 광기의 천재가 아니었다. 사는 것이 마뜩지 않고 남루한 현실에 발목 잡힌 보통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물간 생선의 흐린 눈동자 같은 나날을 보낸 것이었다. 축구시합이 있던 날은 낮술을 과하게 마셔 토吐한 것이었다.
   치열한 삶? 그런 것 없었다. 단언컨대 그와 나를 견인한 것은 역사 인식이나 사회적 책임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하찮은’ 빈곤이었다. 그와 나는 가난에 변변히 맞서보지 못했다. 때로 가난은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으며, 삶의 징표, 존재의 이유처럼도 느껴졌다. 동생은 형의 제대 시기에 맞춰 지원 입대했다. 그것은 식구를 줄이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김창식  ---------------------------------------

   김창식님은 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수필》로 등단.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文영映음音을 사랑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