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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여행작가 3-4월호, FRUITFUL LAND INDOCHINA-Laos] 라오스의 붉은 흙길 위에서 - 산강 김락기

신아미디어 2014. 8. 23. 11:34

"쌀국수 한 끼에다가 맥주 비어라오 한 잔이면 그저 족한 나라, 남방으로 가도 가도 펼쳐지는 차마 붉은 흙길은 따뜻한 여유로움 너머에 더불어 기생하는 체념 같은 것. 만월에 젖어있는 메콩강물은 잠자는지 흐르는지 환상의 꿈밭, 술판이었어. 이내 백만 마리 코끼리 떼가 운집하는 저 중세의 왕국, 고도 루앙프라방이 희뿌연 달빛 속으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는  사실인가 아닌가.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들의 탁발행렬, 그 또한 장관이렷다."

 

 

 

 

 

 

 라오스의 붉은 흙길 위에서        산강 김락기

 

   초광속 첨단문명의 변화 속에 살다 찌든 이들이라면 모든 걸 내려놓고 한번쯤은 다녀올 수도 있겠다. 서력 1960년대의 우리 시골길을 걸어간다고나 할까? 미답의 오지를 찾아가는, 저 속마음 깊은 곳, 원형(archetype)으로의 여행. 시간이 천천히 흐르다 못해 멈춰버린 곳. 정지된 낭만과 무료가 넘쳐나고, 삶과 죽음, 현대와 중세가 한 덩어리가 되어 같이 사느니…….
   쌀국수 한 끼에다가 맥주 비어라오 한 잔이면 그저 족한 나라, 남방으로 가도 가도 펼쳐지는 차마 붉은 흙길은 따뜻한 여유로움 너머에 더불어 기생하는 체념 같은 것. 만월에 젖어있는 메콩강물은 잠자는지 흐르는지 환상의 꿈밭, 술판이었어. 이내 백만 마리 코끼리 떼가 운집하는 저 중세의 왕국, 고도 루앙프라방이 희뿌연 달빛 속으로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는  사실인가 아닌가.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들의 탁발행렬, 그 또한 장관이렷다. 나도 몰래 그 속에 섞여든다. 한 수 시조가 터진다.

 

    은밀한 달빛, 고색

 

   아직도 숨을 쉬는 누백 년 전 왕국인가
   새벽시장 야시장에 북적대던 무리들이
   황홀한 무곡에 홀려 춤사위에 휩싸이고
   백만 마리 코끼리가 돌아오는 저, 저 장관
   탁발하던 스님들이 맨발채로 합장하네
   새벽닭 울 때까지는 달 속인 줄 채 몰랐어

 

   꿈인지 생시인지 두 손으로 얼굴을 비벼본다.
   서울 하늘이 떠오른다.
   꼽자이더 라오!

 

 

김락기  -----------------------------------------------

   山堈 김락기님은 시조시인. (사)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시조문학≫, ≪문학세계≫로 등단. 수안보상록호텔 대표이사, 저서 ≪삼라만상≫,≪바다는 외로울 때 섬을 낳는다≫,≪고착의 자유이동≫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