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에서 신곡문학상 대상을 받으셨던 작가들의 신작에세이를 특집으로 꾸몄네요.
고수의 햇살과 숨결을 같이 느껴보시고, 신인작가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의 수필 쓰기
나는 지금껏 수필을 써 오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붓 가는 대로
의 수필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이 흘러가듯 어떤 형식에도 구애
받지 않고 써지는 글이 수필이라면 그처럼 매력적이고, 또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내게는 수필을 쓸 때마다 그와 달리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된다.
수필을 문학이라고 생각할 때면 먼저 시적 언어부터 생각하게 된다.
시처럼 엄격한 언어의 선택과 압축된 긴장미가 있는 문장을 우선은 수
필의 문장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문장으로 써진 수필이
어야 문학성을 지닐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신변잡기가 되고 말 것 같아
서이다. 그것은 내가 글 쓰는 연습을 할 때 시부터 공부하고 시 쓰기에
매달렸던 버릇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굳이 수필이 무형식의 글이라면 어느 형식의 글도 수필로 수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무형식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시의 형식을 빌려 시보다
아름다운 수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소설보다 더 진실을 담는 수필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이 개연성 있는 허구의 그릇에 인생
의 진실을 담는다면 자기고백이란 체험의 그릇에 담기는 수필이 독자들
에게 더 큰 감동과 친근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릇으로서
의 체험이 사실의 전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내가 나를 밖에서 만나는
작업이어야 하고, 또 나를 하나의 세계로 확대시키고, 확대된 자기 안에
세계를 담는 그릇이 되어졌을 경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창을 통해서 세상을 내다본다. 내다본 세상을 통해 자
신이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고 기쁨과 감동, 사유를 지니게 된다면 그것
은 자신을 들여다보기에서 얻어지는 결과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내가 내다 본 세상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을
들여다 본 나만의 이야기를 찾으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내다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이야기 그것이
들어 있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내가 수필을 쓰고 싶다고 느끼는 때는 어떤 감동적인 체험의 이야기
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경우 시적인 충동에서 비롯되는 경우
가 더 많다. 다시 말하면 수필을 이야기로 쓰고 싶은 경우보다 어떤 이야
기가 담고 있는 미적가치에 이끌려 쓰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상적인 사실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평범한
사실들에서 새롭게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 즉 한 송이의 평범
한 꽃이라도 그 꽃으로 하여 지금까지의 그 꽃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미
적가치의 재발견이 주어질 때 글을 쓰게 되는 경우를 이른다.
나는 수필을 쓰기 전 쓰려는 글을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생각하고 다
듬는다. 글의 포석이 되는 언어선택에 부심하고 언어가 선택되면 한 개
의 어휘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고 그것이 글 속에서 어떤
구조로 짜일 수 있나 생각한다. 그래서 한 편의 작품이 원고지에 옮겨지
기 전 며칠에서 몇 달 아니 몇 년씩 생각 속에서 걸러진다. 그렇게 해서
막상 써져도 한 번에 마무리 지은 글은 거의 없다. 열 장의 원고지를
메우기 위해 수십 장에서 수 백 장의 파지를 냄은 물론 다 쓴 수필도
여러 번 다시 쓰는 경우도 있다.
선택된 언어 하나하나가 문장 전체에 어떻게 은밀하게 작용하는가,
항상 염두에 두고 또 메모로 써진 글은 구성의 바탕이나 내용의 의도가
파괴되지 않나 살피는데 그것도 이야기에서 출발하기보다 시적인 감성
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수필을 쓴다는 행위는 세상 내다보기에서 얻어진 소재를 나를 들여다
보기로 자신의 깨달음을 주제로 담아낸다.
사람들은 스스로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자 한다. 나는 누구이
며, 어떤 존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에 서 있으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며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를 고통스럽게 또는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돌
아보며 세상 내다보기를 통하여 나를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비슷한 일상의 삶을 영위하며 살
아간다. 사물로부터 벗어나 있으면서 결코 그 사물들에서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삶이 수필의 소재다.
우리가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신변잡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한
다. 하지만 신변잡기라는 일상에서 얻어내는 소재를 버리고는 좋은 수
필을 쓸 수가 없다.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찾아내는 삶의 깨달음과 철학이어야 한다.
과거의 기억들은 마음에 재생되는 그림이다.
참다운 자아를 새롭게 자각할 수 있는 그림, 걸러지고 여과되어 적나
라하게 되비쳐오는 기억 속의 자신의 모습이야말로 자신이 누구인가를
확인시켜주는 자화상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관점은 도대체 진실에서 왼쪽일까, 중앙일까,
오른쪽일까, 내가 삶을 보는 관점은 정답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늘
궁금하다.
장님이 코끼리를 묘사하는 우화가 있다. 전체를 볼 수 없으니 자신이
경험한 손으로 만져본 느낌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넓죽한 배를 만지면 한없이 널따란 살덩어리라 생각할 것이고, 코를
만지면 요상하게 기다란 것이 코끼리라 생각할 것이다. 다리를 만지면
기둥처럼 생겼다고 생각할 거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느끼는 것과 보는
관점에서 사물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사물을 대하는 위치
가 일부만에 속해서일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좀 더 물러나 시야를 넓게
가진다면 코끼리의 모습은 하나로 보일 것이지만. 나는 눈을 뜬 사람으
로 그 코끼리를 보려고 한다. 한 마리 온전한 코끼리의 이미지 그것이
진실을 보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내 나름대로 만들어낸 수필쓰기의 영역이 아직도 수필쓰기에 바른 자
세인지 모른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되 세상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한 마리 온전한 코
끼리여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변해명 --------------------------------------------------------
1975년 ≪한국문학≫ 등단.
저서: 수필집 ≪시간의 작은 방울≫, ≪우주목과 물푸레나무≫.
이론서 ≪수필창작에 기초와 실제≫ 등 다수.
수상: 신곡문학대상, 한국문학상, 월산수필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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