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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2014년 1-2월호, 나 홀로 여행] 늦가을의 법주사, 그리고 문경새재 2박 3일 - 김현지 (시인)

신아미디어 2014. 8. 2. 11:21

"옛날 문경 어느 마을에 3대 독자 귀한 자손이 있었는데, 몸이 약해서 과거는커녕 목숨을 지탱키도 어려웠겠다. 그래서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물었더니  “당신 집의 담장이 너무 높아 그 아들이 기를 펴지 못하니 반드시 아들의 힘으로 담장을 허물어 저기 산속에다 차곡차곡 책처럼 쌓아올리면 건강도 찾고 장원급제하리라.”라고 하더란다. 그 말을 따라 비실거리던 그 청년은 죽을 힘을 다해 담장의 돌들을 산으로 나르기 시작한 지 어언 3년. 드디어 칠성단이 완성되었고, 그 청년은 무척 건강해졌단다. 물론 머리도 맑아져 읽는 책마다 척척 머릿속에 쌓이니 장원급제는 식은 죽 먹기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러한 전설로 인해 이 고개를 넘나드는 과거꾼들이 반드시 들러 소원을 빌던 그 칠성단 앞에서 나도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늦가을의 법주사, 그리고 문경새재 2박 3일      /  김현지(시인)

 

   지난주부터 자꾸 법주사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 만추의 계절에 단풍도 낙엽도 볼만하겠지만, 그보다는 어느 해 이울녁에 도착한 법주사에서 환상처럼 펼쳐지던 저녁 예불 풍경을 꼭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어서이다.
서울서 속리산까지 바로 가는 차편도 있을 테지만 그냥 쉽게 10시발 KTX로 대전을 향한다. 대전역에서 택시로 시외 주차장에 가서 다행히 바로 연결되는 속리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속리산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2시가 다 되어간다. 너무 여유를 부린 건가. 부지런히 걸었지만 정상까지는 무리인 게 분명하고, 초겨울의 짧은 해 꼬리는 바로 내 걸음을 앞질러 가고 있다. 어디쯤에서 등산로를 포기하고 "탈골암"이라는 표지를 따라 걷는다. 0.9km, 하산하는 사람들과 자꾸 부딪치던 등산로를 버리니 한적하고 아름다운 길이 나타나고 쉬엄쉬엄 걷는 오르막길이 전혀 낯설지 않다. 천천히 도착한 탈골암은 비구니들의 수련 도량으로 조용하고 아늑한 절의 앉음새가 무척 마음에 들어 오랫동안 절 마당에 서 있었다. 
   탈골脫骨! 뼈를 벗고 그 안에 들어앉은 마음마저 벗으려는가. 많은 사찰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절집 분위기는 처음인 것 같아서 자꾸 뒤돌아본다.
   내려오면서도 이 길을 발견한 것이 너무 행복해서 아예 낙엽 위에 주저앉아 온몸으로 저무는 가을 햇살을 받아 안는다. 
   그러나 법주사에 도착하니 저녁 예불 시간은 아직도 1시간이나 남았다.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사찰을 한 바퀴 둘러보며 생각해 본다. 아, 그때는 여름이었지, 감기 증세를 안은 채 나선 길이기에 무리하면 안 되겠다 싶어 그냥 발길을 돌린다. 그해 늦은 여름, 해 질 무렵에 도착해서 마주친 법고소리가 나를 여까지 다시 오게 했는데…. 내일 문경새재를 제대로 걸으려면 일찍 자야겠기에, 언제고 다시 오리라 다짐하면서 절 입구에 숙소를 정하고 일찍 쉬기로 한다.
   이튿날 아침, 감기 증세가 심해진다. 그래도 문경은 가야지.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다. 아홉 시쯤 주차장에 나왔는데 문경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단다. 일단 보은으로 나가보라는 현지인의 말대로 보은행 버스를 탔다. 보은에 도착했을 때, 아뿔싸 상주행 버스가 방금 꼬리를 보이며 떠난다. 보은 읍내 가까운 시장통을 두루 누비고도 시간이 남아돈다. 
   한 시간쯤 지난 후 출발한 상주행 버스. 그러나 상주에서 문경까지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새재를 먼저 걷고 쉬기로 한 일정을 수정하고 수안보로 향한다. 오늘 밤은 온천이나 하고 푹 쉬어야지. 그런데 40분 간격이던 충주행 버스가 갑자기 한 시간 반으로 늘어진다. 오후 5시 30분, 어둑살 사이로 도착한 수안보도 단풍철이 지나 한적하다. 그러고 보니 속리산에서 수안보까지 거의 종일이 걸린 셈이다. 애초에 이런 산간지역의 특성은 생각하지 않고, 지도만 보고 속리산과 문경을 묶은 것이 불찰이었다.
   다음날 오전 열 시경, 숙소에서 불러준 택시가 문경새재 제3관문 300미터 못 미쳐 내려준다. 수안보에서는 제1관문 가기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기에 거꾸로 내려가기로 했다. 날씨가 쾌청하고 기침도 조금 가라앉았다.  
   과거길, 지금보다 몇 배나 험준했을 이 길을 오로지 장원급제의 꿈을 안고 걸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금의환향하고, 누군가는 좌절의 아픔을 안은 채 넘고 또 넘었을 젊은 그들이 오가던 이 길을 오늘은 전설을 따라가듯 내가 걷고 있다.
   보드랍고 약간 차진 흙길이 넓고 평탄하다. 생각 같아선 맨발로 걷고 싶은데 발이 시릴 것도 같고 무거운 등산화를 들고 가자니 그것도 불편할 것 같아 그냥 걸었다. 약간의 경사는 오르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 같은 무난한 흙길이 한참 계속되더니‘옛 과거길’ 팻말이 나오고 정말로 옛 그대로인 듯한 한적한 풀숲길이 펼쳐진다. 
   한참을 내려와서 큰길과 합쳐졌을 때, ‘장원급제길’이 위쪽에 있다는 팻말을 만난다. 당연히 다시 올라가야지. 큰길을 따라 300여 미터를 거슬러 올라가니 ‘장원급제길’이라는 이정표가 있고, 바로 오른쪽에 조금 전에 내가 걸었던 옛 과거길 안내판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과거길을 제대로 걸어 지금 장원급제를 하러 가는 중. 그러므로 왕복 600미터의 걸음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원급제길을 따라 한참을 올랐을 때 눈앞에 나타난 책바위, 이 길을 오르던 수많은 선비가 장원급제하게 해달라고 빌고 빌던 칠성단인데 여기에 얽힌 전설 하나 소개해본다. 
   옛날 문경 어느 마을에 3대 독자 귀한 자손이 있었는데, 몸이 약해서 과거는커녕 목숨을 지탱키도 어려웠겠다. 그래서 용한 점쟁이를 찾아가 물었더니  “당신 집의 담장이 너무 높아 그 아들이 기를 펴지 못하니 반드시 아들의 힘으로 담장을 허물어 저기 산속에다 차곡차곡 책처럼 쌓아올리면 건강도 찾고 장원급제하리라.”라고 하더란다. 그 말을 따라 비실거리던 그 청년은 죽을 힘을 다해 담장의 돌들을 산으로 나르기 시작한 지 어언 3년. 드디어 칠성단이 완성되었고, 그 청년은 무척 건강해졌단다. 물론 머리도 맑아져 읽는 책마다 척척 머릿속에 쌓이니 장원급제는 식은 죽 먹기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러한 전설로 인해 이 고개를 넘나드는 과거꾼들이 반드시 들러 소원을 빌던 그 칠성단 앞에서 나도 소원을 간절히 빌었다.

 

 

 

 김현지  ---------------------------------------------
   시인.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연어일기》, 《포아풀을 위하여》, 《은빛 눈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