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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2월호, 세상마주보기] 길 잃은 도마뱀 - 김원

신아미디어 2014. 7. 28. 10:25

"도마뱀은 보름간의 잠행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굶어 꼼짝 못하고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점차 땅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더니 몸을 움칠거리면서 서서히 풀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 집에서 보름간 먹지 못하고 굶은 몸으로 나갔으니 가슴이 아팠지만 저 살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그때의 흐뭇함과 기쁨은 잊을 수가 없다."

 

 

 

 

 

 길 잃은 도마뱀       -  김원


   우리 집에 도마뱀 한 마리가 들어왔다. 워낙 빠른 놈이라 손을 쓸 시간도 없이 나를 따라 들어온 것이다. 내가 뭐가 좋아서 따라왔단 말인가. 분명 길을 잃고 헤매다 내가 문을 여는 틈을 타 잘못 들어온 것이다. 잽싸게 잠행을 한 도마뱀은 들어오자마자 소파 밑으로 쏜살같이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잡을 길이 없었다. 막대기를 이리저리 휘저어 보았지만 허탕이다.
   왜 하필 내가 여행을 떠나는 날 들어왔단 말인가. 우리는 부득이 도마뱀을 남겨두고 예정되었던 보름간의 하와이 쿠르주를 떠났다. 하와이 다섯 개 섬을 도는 동안 잊고 지냈다. 화산지역의 신기하고 장엄한 자연경관에 흠뻑 젖고는 배에 돌아와서 탐식으로 포만을 이루고 일행들과 더불어 놀기에 바빴다. 그러다 2주 만에 돌아와서야 도마뱀이 궁금해졌다. 침대 속으로 들어가 숨어 있지는 않는지 은근히 걱정 반 공포 반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렇다고 그놈이 다시 밖으로 나갔을 리는 없지 싶다. 어딘가 숨어있는 걸 찾아낼 수만 있다면 잡을 건데 뾰족한 방도가 없다. 침대 안에 숨어있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문제의 그 도마뱀이 나타났다. 기름기 빠진 도마뱀 한 마리가 느린 속도로 기어다닌다. 집에 숨어들어 왔을 때만 해도 생생했던 것이 무척 수척해 보인다. 확실히 영양실조에 걸린 것 같다. 꼬리 부분이 날렵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겨우 기어가는 모습이 도마뱀 같지 않다. 그간 굶은 게 분명하다. 공연히 잘못 들어와 이렇게 고생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불쌍하다. 나는 보름간 산해진미에 몸을 불려왔는데, 이 길 잃은 도마뱀은 주인 없는 집에 들어와 쫄쫄 굶고 나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도마뱀은 육식을 하는데 우리 집에 제가 먹을 만한 육식은 모두 냉장고 안에 있으니 헛짚어도 많이 헛짚었다. 집 안에서 모기, 날파리, 개미, 거미 등을 잡아먹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버텼을 것이다. 얼마나 갈증을 느꼈을까. 가슴 아프다. 도마뱀은 혀가 길고 흡인력이 강한데 우리 집에 있던 곤충들을 잡아먹었다면 나로서는 그만한 고마움이 어디 있을까.
   내가 사는 미국 서부 지역은 일 년 내내 날씨가 따뜻한 아열대 기후여서 도마뱀을 비롯, 토끼, 다람쥐들이 극성을 부리며 설쳐댄다. 바깥현관에 신발을 벗어 놓으면 그 속으로 도마뱀들이 기어들어가 논다. 무심코 신을 신을라 치면 발밑에 물체가 뭉클해 오는 느낌을 받아 벗어보면 영락없이 손바닥 길이만 한 도마뱀이 뛰쳐나온다. 저도 놀라고 나도 놀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신발 안 고린내를 좋아해서인가. 아니면 그곳이 아늑해 숨기에 좋아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암수 두 마리가 짝을 지어 다닐 때는 보기에도 좋다. 우리 집 현관에는 그중 한 마리가 괴롭힌다.
   소설 ≪오발탄≫으로 인기를 끈 이범선이 1962년 동경올림픽 때 있었던 도마뱀에 관해 쓴 수필이 있다. 그 후 도종환 시인의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라는 수필집이 나왔다. 둘 다 내용은 비슷하다. 올림픽스타디움을 확장하려고 주택을 헐자 벽 속에 꼬리가 잘린 채 못에 박힌 도마뱀을 발견하였다. 꼼짝도 못 하고 갇힌 도마뱀이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파충류는 꼬리가 잘려도 살 수가 있어서 못을 빼주어 도마뱀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그 긴 세월 동안 먹이를 날라다 주었단 말인가. 피노키오도마뱀은 수컷은 긴 코를 갖고 있고 암컷은 긴 코가 없다. 꼬리가 물려 있을 동안 또 다른 도마뱀이 먹이를 물어날랐다는 것이다. 도마뱀의 눈물 나는 사랑 이야기다. 어미인지, 애비인지 아니면 부부간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 이 숭고한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 온다. 이 조그마한 미물의 사랑이 어쩌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도마뱀이 암놈인지 수놈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집에 갇혀있는 동안 바깥의 짝은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먹이를 물어왔어도 문이 잠겨 있어 허탕을 치고 분명 주인을 원망했을 것이다. 나는 몸을 불려왔는데 우리 집에 온 도마뱀은 굶고 있었으니 내 도리가 아니다. 영양실조로 힘이 빠진 도마뱀을 잡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도리어 잡아다 밖으로 내보내 달라는 듯 순순히 응해 주었다. 두 손으로 안으니 따뜻한 온기가 묻어난다. 팔딱거리는 숨소리가 꽤 불안해 보였다. 그 놈을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도마뱀은 보름간의 잠행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굶어 꼼짝 못하고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점차 땅 냄새를 맡는 시늉을 하더니 몸을 움칠거리면서 서서히 풀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우리 집에서 보름간 먹지 못하고 굶은 몸으로 나갔으니 가슴이 아팠지만 저 살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그때의 흐뭇함과 기쁨은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 도마뱀은 지금쯤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사랑하는 지 애비나 에미를 만나 영양가 있는 육식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길 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 집에 잠행해 들어오지 말기를 바란다. 한 번으로 족하다.

 

 

김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