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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2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비의 단상 - 이기락

신아미디어 2014. 7. 1. 21:36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사랑해.” 하는 달콤한 속삭임도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몸짓이었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이제는 겨울을 맞는 나무처럼 버릴 것은 버려야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가 있을 것이다. 가을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시작되리라. 알곡은 곳간에 쌓고 쭉정이는 과감히 버려질 것이다. 마음에 쭉정이는 지금 내리는 저 빗물에 흘려보내고 남은 인생 알곡으로 한껏 채워 가리라 다짐해본다."

 

 

 

 

 

 

 비의 단상        -  이기락

 

   어둠이 내린 창밖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왠지 모를 상념에 사로잡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때 수많은 물방울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눈에 띄었다. 그것을 바라보노라니 권력과 부에 대한 갈망이 부질없음을 문득 깨닫는다. 내리는 빗물은 가장 드높은 하늘에서 쏟아지지만 결국은 모두 낮은 곳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잖은가. 빗물이 모여 아름다운 강을 만들고 큰 바다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물의 겸허함 때문이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떤가. 온갖 오욕칠정에 사로잡혀 권력과 부를 위해 높은 곳으로 줄타기를 서슴지 않는다. 어디 이뿐인가. 만민에게 평등하다는 법만 하여도 그렇다. 인간은 스스로 질서를 지킬 수 없어 법을 만들었나 보다. 어느 땐 고장난 저울처럼 사안에 따라 눈금이 다르게 움직이니 그럴 땐 형평에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언제부터인가 손해 보고는 못 살고 남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서로 믿지 못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었다. 정의가 외면당하고 양심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일부 지식인들은 눈을 감는다. 정의 온기는 우리들의 가슴속에서 이기심에 밀려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형제간에 소송이 벌어지며 절친한 친구가 등을 돌린다.

 

   추분을 지나 내리는 비는 가을을 더 재촉하는 듯하다. 가을의 따스한 햇살은 곡식들마다 고개를 숙이게 하는 힘을 지녔다. 마치 그동안 곡식을 가꿔준 농부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기도라도 드리는 자세이다. 알곡들이 알알이 여물 수 있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기 때문이다. 나무들도 여름 동안 무성했던 잎을 온통 가을빛으로 물들이며 겨울을 보낼 채비를 차리느라 분주하다. 아마도 가을비는 그것을 재촉하는지 모르겠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에 비가 내리면 농부들은 저마다 손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수확량과 가격에 따라 얼굴색이 변한다. 주름이 하나 늘기도 하고 펴지기도 한다. 올해는 피해 없이 일 년 동안 땀 흘린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이즈막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틈틈이 손바닥만 한 농토에 농사라고 지어보지만, 농사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해마다 깨닫는다. 자재비에 인건비를 빼고 나면 후하게 쳐도 이익이 박하다. 사 먹는 사람은 부담스럽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래도 사 먹는 것이 훨씬 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요즘은 농수산물의 소중함을 모른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고 착각을 한다. 농사 또한 기후변화에 민감하여서 언제 곡물 대란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쌀 한 톨에 들어간 농민들의 땀과 정성을 생각하고 생명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농사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빗물은 낮은 곳으로 하염없이 흘러가 맑은 호수를 얻는다. 농부도 올해 망치면 내년에 잘 지을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런 농부의 인고忍苦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배불리 먹고 사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
   내일까지 많은 비가 내린다 하니 걱정이다. 익히 들어온 이야기지만 오늘따라 그 이야기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어인 일일까. 옛날에 짚신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근심 어린 얼굴이 갑자기 어른거린다. 배추밭에는 비가 좀 내려야 하지만 수확을 앞둔 벼에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배추는 물을 머금고 쑥쑥 자라겠지만, 꽉 찬 낱알을 머리에 이고 있는 벼 이삭은 작은 물방울에도 힘없이 넘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하는 일들로 고민 할 때가 있다. 손자를 보면 기쁜 일이지만, 자식들이 맞벌이한다고 맡아달라고 하면 고민에 빠진다. 손자를 얻었지만 내 삶을 포기하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실도 그렇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세상은 편리해졌지만, 연세 드신 분들은 주눅만 든다. 급속하게 변하는 첨단 IT 산업시대에 고무신 신고 쫓아가기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물건들은 차고 넘치는데 서민들은 소외감만 느낀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좋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왠지 마음이 허허롭다. 이런 날은 사춘기 소년처럼 까닭모를 가슴앓이를 하곤 한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집 뒤에 공원이 있어 자주 가는 편이다. 어둠이 내린 가로등 불빛 사이로 우산을 쓰고 운동하는 사람이 몇 명 눈에 띈다. 젊은 연인이 팔각 정자에 다정히 걸터앉아 있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가려진 우산 사이로 달콤한 속삭임이 빗물에 젖어 흘러내린다. 사랑에는 남녀노소가 없다는 옛말이 맞는 것 같다. 하늘에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인데도 ‘사랑’ 이 두 글자만 떠올리면 가슴이 달아오른다. 사춘기 시절 비 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했었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한 소녀를 그리며 가슴을 적시던 일, 비를 맞으며 무작정 그녀 집으로 달려가 처마 밑에서 서성이다 돌아온 일들이 생각난다. 아련한 첫사랑은 궂은 날 신경통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보면 눈길이 절로 좇아간다. 진정한 사랑은 달콤하고 꽃향기가 나지만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삶에 쫓겨 그동안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내려 모처럼 내 마음을 깊이 응시해본다. 눈을 들어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노라니 그동안 속절없이 살았구나 싶어 마음이 우울해진다. 무엇 하나 내세울 것도 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지난날이다. 그러나 욕심 부릴 일도 아닌데 안간힘 쓰며 살아 보겠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마음 아프게 한 일들에 회한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부족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 잘난 척하며 위선자처럼 살아온 날들이 부끄럽기도 하다. 가족과 남을 위해서라는 핑계로 문제를 합리화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런 상황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갈듯하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사랑해.” 하는 달콤한 속삭임도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몸짓이었다. 얼마나 이기적인가. 이제는 겨울을 맞는 나무처럼 버릴 것은 버려야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가 있을 것이다. 가을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시작되리라. 알곡은 곳간에 쌓고 쭉정이는 과감히 버려질 것이다. 마음에 쭉정이는 지금 내리는 저 빗물에 흘려보내고 남은 인생 알곡으로 한껏 채워 가리라 다짐해본다.

 

 

이기락  --------------------------------------------
   ≪에세이 문예≫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