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여행문화(여행작가)/여행문화(여행작가) 본문

[여행작가 2014년 1-2월호, 몽골 스케치 여행-(1)] 붉은 영웅의 도시에 오다 - 글·그림 심명숙(시인)

신아미디어 2014. 6. 19. 21:22

"50만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대 자연의 낯선 땅, 공기가 새롭다. 우리 민족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 지난 과거의 시점이 그대로 정지된 듯하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가 헤쳐 놓은 검뿌연 모래먼지가 현재와 과거의 경계선이라도 되는 양, 길게 선을 긋고 있다. 한없이 야릇하다. 그러나 지긋한 마음으로 대로大路를 건넜다. 한 발자국만으로도 과거로의 행보가 실현됐다. 저 멀리에 시원하게 벗은 민둥산이 부끄럼 없이 환한 햇살 아래 누워있다."

 

 

 

 

 

  
 붉은 영웅의 도시에 오다        /  글·그림 심명숙(시인)

 

   몽골(Mongol), 자연의 나라!
   나만의 명제를 달고 떠난 여행, 대초원을 일구어낸 창조주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줄까? 기대에 부풀었다. 밤늦은 시간에 도착한 칭기즈칸 공항은 전혀 이질적인 속사정이 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수수한 공항은 늦은 시간인지라 여름에 느끼지 못했던 낯선 바람이 썰렁하게 분다. 순간 콧구멍이 조여드는 느낌으로 재채기가 연달아 터져 나온다.
   한때는 세계를 정복했던 원元의 태조太祖 칭기즈칸成吉思汗, 몽골에서는 종교와도 같은 존재다. 혹자는 잔인한 침략자로 평하지만, 그들에겐 위대한 장군으로 국보의 칭호를 받는 영원한 정신적 아버지이다. 그 황제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 드리워진 어두운 장막 너머로 하늘엔 유난히 큰 별들이 총총하다. 휘늘어진 꽃다발처럼 빛나고 있는 밤으로 자동차는 20분가량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붉은 영웅,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임을 선포하면서’라는 뜻)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는 통나무집이다. 다행히 주인은 중년의 한국인이다. 돌쟁이를 안고 있던 그의 젊은 아내(몽골인)가 황급히 일어나, 우리 일행을 방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첫날밤을 지내고 아침을 맞았다. 어수선한 탓이었을까? 쉽게 잠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비몽사몽 개운치 않은 정신상태. 그러나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은 상황을 개의치 않는다. 우선 동네를 걷고 싶은 마음에 생각할 것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50만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대 자연의 낯선 땅, 공기가 새롭다. 우리 민족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 지난 과거의 시점이 그대로 정지된 듯하다.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가 헤쳐 놓은 검뿌연 모래먼지가 현재와 과거의 경계선이라도 되는 양, 길게 선을 긋고 있다. 한없이 야릇하다. 그러나 지긋한 마음으로 대로大路를 건넜다. 한 발자국만으로도 과거로의 행보가 실현됐다. 저 멀리에 시원하게 벗은 민둥산이 부끄럼 없이 환한 햇살 아래 누워있다. 그런데 그곳에 산을 도도하게 업고 있는 누가 있다. 한눈에 보아도 알아볼 수 있는 그 사람, ‘아직도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몽골의 푸른 늑대’인 ‘칭기즈칸’이다. 온 산에 그려진 그의 초상은 울란바토르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거대하다.
   세상의 어느 곳이든 골목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골목들은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시장을 가신 엄마를 보채며 기다리던 골목이 아련하다. 어느새 그 골목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곳으로 바뀌었고, 어른이 된 세월의 그림자가 구석구석에서 추억을 회상한다. 그런 골목에 민가들이 나란히 들어선 곳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들의 삶으로 충만한 곳이다. 내가 살던, 아니, 사람이 사는 곳이니 다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낯선 사람을 감지한 개들은 여기저기 아침을 흔들며 사납게 짖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들의 생활 형편이 궁금하여 포기할 수는 없다. 안쪽으로 들어설수록 게르(몽골인들의 전통가옥)와 현대식 집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다. 참으로 따뜻한 풍경이다. 무채색 집들, 하나하나의 모티브들은 마치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 들어 지루할 틈이 없다. 아니 21세기 다국적 문화의 포스터라도 보는 듯 새롭다. 카메라를 들고 나온 것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 나무판을 엮어 세워놓은 담을 살짝 넘어다보았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작고 초라한 게르. “여보세요.” 처음 듣는 말에 의아했는지 문이 빠끔히 열린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의 치맛자락에 아이들 몇이 매달려 있다. 그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낯선 이를 경계하듯 동정을 살핀다. 짐작해 보니, 집(게르)이라는 하나의 작은 공간에서 삼대가 사는 듯하다.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 없다. ‘솔롱고스’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해야 한다. ‘무지개가 뜨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이 한마디의 단어가 내가 아는 유일한 몽골어이다. 역시 예상대로 알아들었다는 그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예로부터 동경을 해왔고, 친근한 고려高麗사람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통하든 안 통하든 한참 수다를 떤다. 아마도 나이를 묻거나 아이가 몇이냐? 라는 사소한 대화였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동질감 같은 것이 자연스레 생기게 마련이다. 짧은 시간에 딱딱한 경계를 풀어낸 순수한 사람들, 사진까지 찍혀주는 여유로움을 보여주며 어수선한 집안도 볼 수 있게 허락한다. 그때,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개들의 짓는 소리가 다시 정신마저 혼미하게 한다.
   몽골의 명물, 민속화에 많이 등장하는 개들은 청력과 시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칭기즈칸 시절부터 이미 군견으로 길들어 왔기 때문에 용맹스러우며 주인에겐 충성스럽다. 사납기로는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럽고 낯선 사람에게 절대 경계를 풀지 않는다. 특히 개들은 유목민들에게는 식구와도 같은 존재다. 기르는 짐승을 지켜내는 것은 물론 아기까지 돌본다고 한다. 이렇게 영물에 속하는 개들을 초원이나 사막에 가면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쉬지 않고 짖어대는 개가 자기네 삶의 터전침범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경고 같다. 일행들이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게르 가족과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한 후, 황망히  골목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초라하고 가난한, 마치 몹쓸 병이라도 걸린 듯 허약하고 마른 몸, 그 가족들의 실상이 계속 눈에 밟힌다. 뒤로 돌아서며 알량한 시정詩情이 가슴을 뭉개고 만다.

 

   저것이 식구다.
   한 둥지 살 비비는 냄새 탁해도 그윽해서 좋은 것, 
   땅바닥에 한 겹 천을 깔고 누운 등이 박혀도
   서로의 살이 스치는 느낌이 좋은 것,
   하늘 향해 둥글게 뚫린 천막에 별빛 따스하게 내리는 밤
   아가들 새근새근 꿈꾸는 시간을 기다리다
   뜨겁게 달궈지는 부부의 가슴으로 하루 밤이 행복하고
   식구들의 밤도 따뜻하겠지

- 졸시 ‘식구’

 

 

 

심명숙  -------------------------------------------------------
   시인. 계간《뿌리》로 등단. 시집  《섬》, 《풍경이 있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