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여행문화(여행작가)/여행문화(여행작가) 본문

[여행작가 2014년 1-2월호, 신작기행문] 찬란히 떠오르는 황금빛 불심 - 유자효 (방송인)

신아미디어 2014. 6. 19. 21:15

"공양간 입구에는 큰 솥 두 개에 밥을 지어놓았다가 신도들이 스님들께 차례차례 밥을 떠주었다. 합장하고 공양하면 합장하고 공양물을 받는 것을 보며 문득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인간에겐 밥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스님들의 식사는 큰스님이나 수행승이나 밥 하나 국 하나 찬 하나였다. 찬연히 떠오르는 황금빛 아침에"

 

 

 

 

 

 찬란히 떠오르는 황금빛 불심       /  유자효 (방송인)

 

    1983년 10월 9일 오전, 나는 위성 송신을 위해 인도 뉴델리의 방송사에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 순방 취재를 위해 KBS와 MBC는 합동 취재단을 구성했고, 그  1진은 버마와 호주를, 그리고 2진은 인도와 브루나이를 취재하게 되어 있었다. 전 대통령이 첫 방문국인 버마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내가 속한  2진은 두 번째 방문국인 인도에서 현지 표정을 취재해 본사로 송신하기 위해 뉴델리 방송사에 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 겪는 해괴한 일이 있었다. 취재물이 송신되지 않는 것이다. 인도 방송사의 기술진과 함께 백방으로 노력해도 위성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사전에 몇 차례나 확인을 한 통신 위성 송신에 실패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애써 취재한 취재물의 송출에 실패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온 우리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전 대통령 일행의 참배지인 랑군의 아웅산 묘소에서 폭탄이 터져 많은 사람이 숨졌다는 것이다.
   그 사건은 우리가 인도 방송사에서 취재물을 위성 송신하기 위해 노력하던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난 것이었다. 어차피 보내도 소용없을 취재물이었는데 위성 채널이 열리지 않아 송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귀국해야 했다.
   그 뒤 30년 만인 2013년 11월 9일. 나는 민주화 이후 국명이 바뀐 미얀마를 방문하였다. 사건 당시 목조였던 아웅산 묘소는 철제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경계가 삼엄했다. 소원했던 한국의 국가 원수를 맞이함으로써 개방의 틈을 엿보려 했던 네윈 군사 정권은 다시 문을 걸어 잠갔고, 버마는 18년의 정체기를 겪어야 했으니 어쩌면 버마가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다. 국제적인 관심 속에 진행된 재판에서 이 사건이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드러나자 버마는 북한과 단교했고 2007년에야 재수교가 이루어졌다. 폭파범 진모는 사형이 집행됐고, 강민철은 2008년 버마 감옥에서 숨졌다.
   아웅산 사건으로 숨진 17명과 다친 분들 가운데는 내가 아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 작고한 언론인 박창석 씨는 코리아 타임스의 청와대 출입 기자였는데 사건 당시 귀를 다쳐 고생했었다. 내게는 아직도 생생한 이 사건도 시간과 함께 역사가 되고 있다.
   이 은둔의 나라가 문을 열자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향하고 있다. 그들은 우선 때 묻지 않은 이 나라 사람들에 놀란다.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을 비롯한 외국 자본들이 이 무한한 가능성의 땅에 밀물처럼 밀려들고 있다. 수도 양곤의 부동산 값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미얀마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에서 양곤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기에는 스님들의 모습이 여럿 눈에 띄어 부처의 땅으로 가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미얀마 방문 첫날, 우리 일행은 16세기에 포르투갈에 의해 무역항으로 개발된 시리암을 방문하였다. 이곳은 한때 포르투갈인이 왕이 되기까지 했었는데, 강 중앙에 엘레페야 파고다가 있다. 이 파고다는 2천 년 전에 지어진 수상 사원인데 홍수가 나도 물에 잠기지 않는다 한다. 사원 안, 한 곳의 불상 앞에 검은 돌이 놓여 있어 간절한 기도가 통하면 간혹 감응한다고 한다. 실제로 아내가 돌을 들어보니 묵직하게 들렸다. 그런데 기도를 하고 다시 돌을 들려 하니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종교의 세계에는 이런 신비로운 면이 있다. 우리 일행 12명 중에서 2명만이 그 체험을 했다. 아내는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한다. 2천 년 사찰 엘레페야 파고다의 부처님께서 감응하셨으니 가족의 건강을 보장받은 것일까? 나는 아내에게 이제 불교에 귀의하라고 권했다.
   미얀마 방문 이틀째에는 고도 바고를 방문했다. 6세기에 몬족이 건국한 바고는 13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미얀마 중부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국가였으나 18세기에 버마족의 알라웅파야 왕에 정복되었다. 바고에는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114m의 황금 대탑 쉐모도 파고다가 있다. 천 년 전, 부처님의 머리칼 두 가닥을 묻은 자리에 세운 이 탑은 1917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탑의 꼭대기 부분이 떨어졌다. 복원 이후에도 붕괴된 부분을 탑 옆에 두어 미얀마 파고다는 벽돌로 쌓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바고에는 또 994년에 몬족 왕 마가디파가 건립한 길이 55m의 쉐달랴웅 파고다가 있다. 이곳은 누워 있는 부처님을 모신 와불 사원인데, 바고 왕국이 멸망한 후 숲 속에 방치되어 잊혀져 있다가 영국 식민지 시절 철도를 건설하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불상의 발바닥 부분과 뒤편에 여러 그림이 장식되어 있고 특히 베개의 장식이 화려하다.
   사흘째 아침, 스님들의 탁발 공양을 경험하였다. 사원에는 여러 마리의 개들이 배회하거나 졸고 있었는데 공양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일제히 우짖는 것이었다. 큰스님을 선두로 발우를 든 스님들이 줄지어 나타나자 공양물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발우에 공양물을 넣어주었다. 공양간 입구에는 큰 솥 두 개에 밥을 지어놓았다가 신도들이 스님들께 차례차례 밥을 떠주었다. 합장하고 공양하면 합장하고 공양물을 받는 것을 보며 문득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인간에겐 밥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스님들의 식사는 큰스님이나 수행승이나 밥 하나 국 하나 찬 하나였다. 찬연히 떠오르는 황금빛 아침에….

 

 

유자효  -----------------------------------------
   시조시인, 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시집  《심장과 뼈》, 《주머니 속의 여자》, 《성자가 된 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