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인상 공모와는 별개로 신인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지난 날 우리 문단은 도제식 창작교육과 문예지 추천을 통해 역량 있고 참신한 문인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다년간 존경받는 스승 밑에서 시인·작가의식과 창작방법론을 수련하여 진정한 시인·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신인추천 / 수상소감
시간을 아끼거나 눈치 보지도 않고 후회 없이
내 삶의 기저에는 칠산 바다 잔잔한 파도소리가 있습니다. 그 먼 바다로 오래 전에 한 사람이 떠났습니다. 가끔 그의 뒷모습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가슴 한 쪽이 저려옵니다. 이렇게 인연의 과보는 고스란히 스스로 다 감당해야 하는 몫이어서, 그에게 그때 나를 다 내어주지 못한 후회가 밀려오곤 합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때면 사랑이 시작된 거라고 하더군요. 이제 그를 위해 때늦은 노래 한 소절을 지어 부른다면 그게 시가 될까요, 상처가 될까요?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짧았던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어쭙잖게 아쉬워하거나 아파하는 척, 하면서 그리 살아가고 있습니다.
쌍촌동 여인숙에서 새벽녘 베네치아로 가던 물소리를 기억합니다. 방어진 가는 처용로에 눈이 내리던 소리를 기억합니다. 운암동 뭇 별 아래에서 부르던 에디트 삐아프, 라 비앙 로즈까지. 이제는 더 말을 아껴야 하겠군요. 내 미천한 밑바닥을 세상에 들키지 않거나, 알량한 노래를 그럴 듯 포장하는 우遇를 범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가슴으로 말한다는 둥, 세상 더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둥 이런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냥 한 번 살아볼 게요. 시간을 아끼거나 눈치를 보지도 않고 그냥 한 번 후회 없이 놀고 갈게요. 기쁨도 아픔도 사실은 다 한 몸이듯. 만행萬行, 만 가지 행함도 다 초연이므로. 삶도 사랑도 우리에겐 다 초연이므로.
늘 기품 있는 인자함으로 대해주신 이향아 교수님, 제자의 버릇없음을 용서해 주실 거죠. 선選해주신 인간과 문학사에 감사드립니다. ‘백두회’와 ‘연지당 사람들’에게도 안부인사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는 아내여, 늘 미안하고 사랑해. 오늘밤, 우리 매운 닭발에 소주 한 잔 해. 그대에게 하고픈 말은, 그리 그대 소주잔을, 만수위까지 한 잔 채워주는 걸로 대신 할게.
신인추천 / 추천사
유장한 시정신으로 정진하기를
문창연 씨를 신인으로 추천하게 되어 기쁘다.
문창연의 시는 우선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어렵지 않다는 말과 중량이 가볍다는 말은 의미가 다르다.
근래에 부쩍 시가 어려워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시가 어려워졌다는 것은 그만큼 발전했다거나 품격이 높아졌다는 말이 아닐 것이다.
문창연의 시는 순수서정시이다.
실험적인 ‘난해시難解詩’에서는 서정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글자 그대로 실험적인 시일뿐이다. 어떤 경우에서나 서정을 외면하고 시를 논할 수는 없다.
그의 시에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꿈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절묘한 균형은 꿈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이룬 것이다. 그의 절망이 비애나 고통을 느끼게 하지 않는 것 또한 완화와 여과를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절규하거나 대항하지 않으며, 무작정 복종하지도 않는다.
그가 시에서 즐겨 제시하고 있는 젊음, 사랑, 병역과 취업, 그리고 학점과 시위 대열과 정겨운 골목길의 풍경, 그것들이 지닌 우수어린 낭만도 문창연 서정의 특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정진하기 바란다. 앞으로도 시를 일상의 감성이나 친근한 평상으로부터 격리시켜 고답적인 자리에 안치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는 범접하기 어려운 방언도 암호도 아니며 머리를 싸매고 구조를 해체해야 하는 학문도 아니다. 오로지 문창연 시인의 내부에 흘러야 할 유장한 시정신만은 늘 고갈하지 않게 보존하기 바란다.
특히 더 축하하고 싶은 것은 현재 대한민국 문단에 수많은 문예지가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과 문학》의 일원으로 뽑힌 것을 축하한다.
추천위원회 :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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