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연님의 시 6편을 소개합니다. 2013년 “도서관, 문학관 문학작가 파견”사업은 체육진흥투표권 공익사업적립금을 사용하여 문화 취약지역 공공도서관 및 문학관에 다양한 독서·교육·문화 프로그램 수행과 독서동아리 활성화를 지원하고 작품환경이 열악한 문학작가들의 창작여건 개선과 일자리 제공을 목적으로 도서관과 문학관에 문학작가를 파견하는 사업입니다."
시, 혹은 사랑 외 5편 / 김기연
너는 아기의 배냇짓, 병상에 매달린 신음
너는 삼월 담장 아래 민들레, 사철 사운대는 댓잎
너는 코스모스 중심을 흔드는 잠자리 날개, 비행기가 그린 하늘 밑금
너는 모래밭에 써놓은 ‘보고 잡다 시펄’, 신구약 육십육 권의 예수
너는 밭둑 머리 저절로 익은 개머루, 갓 튕겨낸 따끈한 식빵
너는 바짓단에 담겨온 모래알, 산정의 바위
너는 해를 낳은 동해, 그 해 삼키는 서해
너는 눈물 끝의 후련한 한숨, 웃음이 당겨낸 눈물
너는 산의 혹이 된 아버지, 살아서 그리운 어머니
너는 아련한 첫사랑, 고백할 수 없는 로맨스
너는 얼음에 비친 햇살, 그믐의 입천장에 뜬 별
너는 허기진 배에서 나는 꼬르륵, 하늘 반쪽 가르는 여름날 천둥
너는 꿈속에 찾아든 천사, 유혹하는 악마
너는 누구에게든, 오직 나에게만
여름 다음에
베란다 분꽃은 더 이상 꽃
피우지 않는다
꽃망울 맺지 않는 분꽃은
초록에 연연하지 않는 눈치다
하늘은 보란 듯이 높아졌다
햇살은 여전하지 않다
그대를 거절하고 나는 자주 골똘해졌다
해 지면 그날의 첫
어둠에 안겨
흐느끼는 정물이 있다
분꽃 꽃잎 진 자리마다
간들간들
까만 추억 한 알씩
안전하지 않다
말랑한 마음
빳빳한 팔월 화분에
지난봄 꽃피운 아잘리아 다시 꽃망울 연다
뭔 작정으로 밀어 올린 두벌 살이 인가?
발칙한 꽃잎,
고쳐서 불러보는 갸륵한 꽃잎!
가라면 가야지 돌아선 그 걸음
하루해 넘기기 전
뚜벅뚜벅
제자리로 돌아와
울고 있는 사람
가란다고가지는게사랑인냐고
잊자해서잊혀지는게사랑인냐고
말랑한 마음 두벌 꽃 핀다
추억에는 비린내가 난다
한 장 사진의 풍경
풀들이 바람에 등 구부린 채 나란히 누웠다
가만가만 바람에 귀 댄 사람
꺼지지 않는 웃음
비스듬히 내려놓은 왼손엔 연한 봄 한 다발
구불텅한 늪 길
앞서 걷던 사람 뚝,뚝 꺾어준 마음
붉은 꽃 속에 똬리를 틀었다
비안개 배웅하고 돌아온 둑길
늙지 않는 저 봄
추억에는 푸른 비린내가 난다
소리의 길
못 둑에 멈춰 서서 그에게 전화를 한다
쇠물닭을 화두 삼으며
쇠물닭은 전혀 궁금하지 않을 테지만,
끊어진 지 오랜
소리의 길 이어놓았다
쇠물닭이 직선으로 헤엄쳐가는 길
못물은 몸을 풀어 둥그렇게 쓸고 있다
소리의 저쪽과 이쪽
쇠물닭을 볼 수 없는 그와
소리를 따라 번지는 내가 있다
신방新房
거실 천정에
쌀 나방 한 쌍 붙었다
촘촘한 쌀자루 천 리인 듯 기어 나와
헤벌쭉한 날갯짓으로 날아오른
저 고공
쉿!
저 신방,
닫아줄 문이 없다
김 기 연 ---------------------------------------
의성 출생. 1993년 문인협회 시 발표. 시집 《노을은 그리움으로 핀다》, 《소리에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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