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잊지 말자. 그것은 허허공공虛虛空空의 한 귀퉁이에 떠다니는 마뜩잖은 구름 한 조각일 뿐, 당신의 만월은 만월대로 저 창창한 하늘가 어디에 두둥실 떠서 당신과 만나는 인연의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니.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했던가. 휘영청 보름달을 만끽할 수는 없어도 어릴 적 동무 손잡고 고향 뒷동산에 올라 아련한 월파에 손등이라도 적시는 중추가절이 되시기를."
한가위 달 / 박영덕
올해 한가위 대보름달은 둥두렷 뜬 만월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상청 예보가 발표되었다. 지구 온난화 탓에 여름 내내 빗겨가기만 하던 기상대 예보이나 ‘달 보기’ 예보만큼은 제발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춘화추월春花秋月이라, 봄의 꽃과 가을의 달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해 왔다. 가을 달 치고 추석 달이 으뜸인데 연중 가장 밝고 맑은 달이어서 그달을 우러러 복을 빌고 소원성취를 바라기도 한다. 잉태를 바라는 여인네는 달의 기를 숨통 가득 마시며 달덩이 같은 자식 얻기를 소원하고, 청춘 남녀들은 전설 속의 ‘월하노인月下老人’을 만나러 달빛을 좇는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달은 지구의 위성으로써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주위를 빙빙 돌면서 태양과 지구의 관계를 오묘하게 조절해주고 있다.
태양에 대한 달의 위치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지구에서 본 달의 모양새가 초승달新月이니 보름달滿月이니, 그리고 상현上弦이니 하현下弦이니 하는 식으로 달라진다. 그리고 이 모양새에 따라 우리가 사는 지구의 밤이 ‘캄캄한 밤’인가 ‘환한 밤’인가가 결정된다. 이러한 조화를 부리다 보니 달은 인간에게 때로는 신비로운 존재로, 때로는 동경의 대상으로 안겨와 달을 빗댄 갖가지 기담과 미담이 생겨나고 숱한 문인들에게 문상의 날개를 돋게 한다. 더욱이 자연을 소중히 여기고 자연과의 어울림을 삶의 기본으로 섬겼던 우리 한국인들은 늘 달을 상서로운 영물로 여기면서 온갖 진선미의 상징성을 부여했다. 아름다운 얼굴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 얼굴을 월용月容이라 하였고, 두드러지게 점잖은 태도와 모습은 월태화용月態花容이라 하여 달처럼 밝고 꽃처럼 아름답다 하였다.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인 송편만 해도 둥근 달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송편이란 펴면 보름달이고 접으면 반달이 되는 우리네만의 고유 음식이다.
하루 이틀 후면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농경 사회에 뿌리를 둔 명절이건만 이 땅의 사람들은 산업사회에 젖어 사는 지금도 여전히 추석과 귀향을 등식으로 일치시키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쓸쓸한 일이 추석날 객지에서 홀로 달을 바라보는 일이라 한다. 해서 저마다 고향 뒷동산의 달을 그리며 지체되고 짜증 나는 귀향길을 손꼽아 기다린다. 고향의 달을 향해 가는 그 길은 그냥 길이 아니다. 그 길에서 부모는 자식들에게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달이 곧 자신의 달이며 바로 너희의 달임을 깨우쳐 준다. 그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향의 달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은 나라의 달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도하는 길이 된다. 그래서 애향과 애국은 둘이 아닌 한마음이다.
명절이 되니 사람들의 어깨가 날마다 줄어드는 하현달이 된다. 서민들의 삶이란 게 어느 시대라고 수월했으랴만 내남없이 가파른 시대의 고비를 넘고 있다. 기상대의 예보대로 한가위 보름달이 하늘 가득 뜬대도 어떤 이에겐 근심의 구름에 가려진 초승달일 터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그것은 허허공공虛虛空空의 한 귀퉁이에 떠다니는 마뜩잖은 구름 한 조각일 뿐, 당신의 만월은 만월대로 저 창창한 하늘가 어디에 두둥실 떠서 당신과 만나는 인연의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니.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했던가. 휘영청 보름달을 만끽할 수는 없어도 어릴 적 동무 손잡고 고향 뒷동산에 올라 아련한 월파에 손등이라도 적시는 중추가절이 되시기를.
박 영 덕 -----------------------------------------
1992 ‘월간문학’ 등단. 광주예총문화대상·현대그룹문학상·광주문학상·대한문학상 수상. 수필집 《달개비꽃에는 상아가 있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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