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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3년 9월호, 신작수필 11인선] 살만해 - 정광애

신아미디어 2014. 1. 26. 08:42

"복잡해진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려 한다. 빠른 결정이 관계를 편하게 할 것 같다. 물론 가끔은 보이지 않는 갈등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혹 시집살이가 아닌 어머님 입에서 며느리살이란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고부가 꼭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음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함께 살만해.”"

 

 

 

 

 

 

 살만해      정광애

 

1
   “얼마나 착해. 요즘 세상에 시댁에 들어와 살겠다니.”
   여기저기서 칭찬 일색이다.
   김 여사는 사십 대 후반에 혼자되었다. 홀로 삼 남매를 잘 키워 지난해 봄 셋째인 막내아들까지 결혼시켰다.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저희끼리 편히 살게끔 지금 내보내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생각이고 마음이었다.
   친구들이 모두 시어머니와 같이 살겠다는 며느리를 기특해했지만, 그녀는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뭐, 날 생각해서 살겠어. 형편이 안 되니까 나한테 얹혀사는 거야.”
   아들은 엄마 혼자 사시게 할 수 없다며 기어코 같이 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김 여사 지금 내보내겠다고 늘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들의 마음을 거절할 수가 없어 같이 살기로 했단다.
   “그런데 아이들이 얹혀산다고 생각할까? 분명 모시고 산다고 하겠지, 혹 며느리살이 하는 것 아냐?”
   같이 살겠다는 며느리가 착하다고 하면서도 약간 엇나가는 말투가 거슬렸는지 평소 화끈한 성격의 김 여사는 친구들의 불신을 한마디로 제압해버렸다.
   “생활비 꼬박꼬박 내놓기로 했고, 무슨 며느리살이? 분명히 말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당장 내보낼 거야.”
   언제부턴가 시집살이란 말보단 며느리살이란 말이 더 익숙하게 들린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입장이 뒤바뀐 세상이 되었다. 자존심이 대단한 김 여사가 며느리살이란 말이 탐탁지 않은 듯 아들 내외가 얹혀산다고 매번 강조한다.         
   얼마 전에 김 여사 집에 경사가 있었다. 손자가 태어났다. 종종 손자 봐야 한다며 모임에 빠지는 때가 있다. 바쁘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핑계가 많아졌다.  
   말하기 좋은 사람들은 며느리살이가 시작되었다며 쑥덕거린다. 그러나 김 여사는  가끔은 며느리와 사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다고 하면서도 이 말만은 꼭 한다.
   “그래도 살만해.”

 

2
   30년 넘게 떨어져 살았던 시부모님이 시골 살림을 정리하고 우리 곁으로 오시게 되었다. 한사코 시골에서 살겠다며 고집을 피우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이제 자식들 옆에서 살고 싶으시단다.
   아들인 남편은 아무도 없는 고향에서 두 분만 살고 계시니까 진즉부터 올라오시라며 권유했다. 그러나 항상 거절하셨다. 그런데 무슨 마음에선지 이번에는 쉽게 결정을 내리셨다.
   아버님은 그래도 끝까지 고향에서 살겠다며 올라오시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거센 입김은 아버님 고집도 꺾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또 다른 말씀이 친구들이 자식 옆으로 가는 것을 다 반대하셨단다. 둘이 홀가분하게 편히 살다 이제야 무슨 자식 집으로 가냐며 친구들도 없고 서로 불편할 텐데, 다 늙어 며느리살이 할 거냐고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 말씀은 이러했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늙은 노인들만 사는 것도 남 보기가 그렇다.”
   남편은 아들이라 그런지 부모님 결정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장남이니까 언젠가는 부모님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결정이 되고 보니 솔직히  내 마음은 녹록지 않다. 소식 들은 친구들이 우스갯말로 한 마디씩 한다.
   “새삼스레 웬 시집살이? 고생 좀 하시겠수.”
   우스갯말로 들리지 않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며느리란 생각이 든다. 
   한 달 후에는 시골 살림을 정리하고 우리 곁으로 오신다. 친구들이 말하는 그 고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평소에 훗날 며느리를 맞으면 한집에서 살지 않겠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니까 장가간 아들과 같이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선 자식 사랑에 끝이 없는 어머니 생각과 그 그늘을 벗어나고픈 자식들의 상반된 생각이 수시로 부딪칠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라는 한 남자를 두고 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자의 시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복잡해진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려 한다. 빠른 결정이 관계를 편하게 할 것 같다. 물론 가끔은 보이지 않는 갈등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혹 시집살이가 아닌 어머님 입에서 며느리살이란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고부가 꼭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음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함께 살만해.”

 

 

정광애  ------------------------------------------

   정광애님은 수필가, 《에세이문학 》으로 등단,  수필집 《어느 햇빛 좋은 날》, 《꽃아 피지 마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