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공연장 앞에서 자리를 잡고 농악놀이를 보기로 했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누군가는 땀을 흘리며 노력을 한다. 그래서 그들이 즐겁게 공연할 수 있도록 우리는 열심히 추임새를 넣으며 관람을 즐기고 박수를 친다. 박수를 치며 응원해주는 것이야 말로 그들을 신명나게 춤추게 한다. 젊은이들이 신명나게 악기를 두드리며 춤을 추고 공연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이 난다."
농악놀이 - 이명자
날마다 무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찌는 듯한 더위가 아니라 모두를 태워 버릴 것처럼 맹렬한 열기를 품고 있는 매일이 시작되고 이어졌다. 내 몸에서 단내가 났다. 이런 날씨에 어디를 간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수필과비평 행사에 참석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많이 망설였다. 그러면서 결국 참석했다. 시상식이 끝나고 장기자랑도 즐거웠다. 그중에 ‘꽃보다 할매’ 우리 서울 동부팀의 플루트을 연주한 이정현 선생님과 함께 <장녹수> 주제가를 부른 이근화 선생님 두 분이 장기자랑의 백미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즐거웠다. 손광성 선생님의 특강이 저녁의 피곤한 시간인데도 귀에 쏙쏙 들어와 행복했다.
둘째 날 아침식사를 끝내고 민속촌 방향으로 향했다. 아주 오래전에 민속촌이 처음 생겼을 때 독일에 사는 동생이랑 왔을 때도 여름이었다. 시설이 엉성하게 보이고 모든 것이 허술한 가운데 날씨는 왜 그리 더웠는지 그때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민속촌’ 하면 사하라 사막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막이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으나 별로 가보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 사막 같던 민속촌이 세월을 입고 나무를 무성하게 키워냈으니 이곳이 별천지가 되었다. 무성한 나무 밑으로 그늘을 따라 다니노라면 선선한 바람이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이번에 오기를 잘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공연장 앞에서 자리를 잡고 농악놀이를 보기로 했다.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해 항상 누군가는 땀을 흘리며 노력을 한다. 그래서 그들이 즐겁게 공연할 수 있도록 우리는 열심히 추임새를 넣으며 관람을 즐기고 박수를 친다. 박수를 치며 응원해주는 것이야 말로 그들을 신명나게 춤추게 한다. 젊은이들이 신명나게 악기를 두드리며 춤을 추고 공연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옛날 생각이 난다.
1950~60년대 서울이 갑자기 커지기 시작할 때 서울 변두리지역 낮은 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많은 이주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사당패를 만들어 명절 때 혹은 동네 행사가 있을 때 마을로 다니면서 놀아주었다. 내가 열 살 정도 되었을 때 우리 동네에 오는 사당패 중에 남장을 한 아주 예쁜 여자가 있었다. 그 남장 여인 때문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놀이에 동참했던 친구들 간에 시비가 오가던 것을 본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들은 다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문득 생각이 난다. 그 여자는 유난히도 눈웃음을 흘렸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여자의 갸름한 얼굴에 소리 없이 퍼지던 미소가 보이는 듯하다. 그 놀이패가 오면 온 동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집을 비워둔 채로 모두 모여 구경을 했다. 어른들은 흥이 나는 대로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함께 즐거워했고 아이들은 줄줄이 이어서 놀이판을 빙글빙글 맴돌며 까르르 웃어 대던 그 옛날이 갑자기 내 앞에서 출렁거렸다.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볼 것도 없고 즐길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농악놀이가 끝나고 이어지는 줄타기 공연도 있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감우성이 줄 타던 모습이 다시 생각나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옛날 사람의 정서를 생각하며 관람을 했다. 관객은 그늘에 앉아있지만 그 불타는 태양열 속에 홀로 줄을 타는 젊지도 않은 연기자를 보는 게 그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 와중에 예쁜 물동이가 땅에 떨어져 깨어지니 이것은 연기인가, 실수인가. 착찹한 기분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이명자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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