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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0월호, 한국민속촌, 무늬로 남은 이야기] 땡감 - 배복순

신아미디어 2014. 1. 22. 08:17

"당산나무가 늦여름의 어스름 저녁 불빛에 운다. 그 아래 서서 숨죽여 우는 내가 가엾다. 흰 상여꽃이 멀어져간다. 이제야 뒤늦게 내 어머니의 평안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빌고 있다. 황색, 청색, 적색, 백색, 흑색의 깃발이 잠시 흔들린다. 나를 안아 위로한다."

 

 

 

 

 

 땡감      배복순

   여름 세미나 안내장이 우편으로 날아들었다. 장소는 한국 민속촌이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다. 한 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거리상 아주 가깝다. 두 번의 세미나에 연거푸 빠지고 보니 이번에도 먼저 갈등한다. 주말 근무가 들어 있는데 근무를 바꿔줄 사람을 구하기도 만만치 않다. 모든 게 시들하고 귀찮았다. 열정도 사그라지고 호기심도 사라졌다. 오로지 하루를 견디며 사는 게 전부였다. 글 한 줄 읽는 것도 어려웠고 더구나 한 줄 쓰는 것은 더 어렵고 귀찮았다. 부실한 몸으로 하루를 견디며 직장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면서도 너무 무심했다. 사무실 컴퓨터에선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업무 외에 차단된 모든 게 어쩌면 고마웠다. 게으름을 둘러댈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으니까.
   아직도 폭염은 머리끝부터 익혀 버릴 작정인가 보다. 뭐든지 녹여버릴 것 같은 땡볕 속에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처럼 반가워한다. 진한 포옹에 더위도 한 뼘쯤 물러선다. 안내하느라 바쁜 임원들이 환한 얼굴에 웃음으로 안부를 빼지 않고 묻는다. 오길 참 잘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2부 행사 전에 잠깐만 어스름의 민속촌 모습을 보고 싶었다. 행사장 앞의 다리를 건너 민속촌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오늘 행사가 끝나면 내일 천천히 돌아볼 곳이기에 잠깐 일어난 호기심만 풀 작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산 나무 밑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오색 깃발이 펄럭이면서 만들어내는 울림이 묘하다. 눈앞에 나부끼는 오색의 천들이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듯하다. 울렁증이 생긴다. 아득히 어지럽다. 머릿속의 전율이 가슴속까지 찌른다. 어지러움인가 그리움인가 실체를 잡을 수 없는 묘한 울렁증이 나를 휘감는다. 잔바람에 날리는 당산나무 깃발들이 춤을 춘다. 어느새 깃발은 꽃을 만들어 낸다. 하얀 꽃이 자꾸 피어오른다. 꽃은 더 많아진다. 하얀 종이꽃을 잔뜩 매단 상여가 훠이훠이 느릿느릿 지나간다. 상여꽃 속에 꺼이꺼이 소리도 못 내고 울고 있는 내가 있다.
   서러워서 눈길을 돌리니 낮은 담 너머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매운 부엌이 들여다보인다. 농가의 가옥이다. 안내판에 붙은 설명을 구구히 읽지 않아도 머리가 먼저 헤아린다. 안방의 여닫이 장롱이며 세간도 낯설지 않다. 오래전의 기억은 벌써 그 시절로 데려다 놓았다. 부엌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무쇠 솥이며, 정갈한 살림솜씨에 눈이 자꾸만 또 다른 뭔가를 쫓는다. 몽당빗자루가 수십 번 지나간 부엌 바닥엔 흘린 밥알이라도 주워 먹을 것 같다. 흰 수건을 머리에서 벗겨낸 어머니가 빈 몸의 먼지를 털어낸다. 구수한 밥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잠결인 듯싶다.
   “아가! 어서 일어나봐. 바람이 많이 불어서 감이 많이 떨어졌겠다. 정이가 가기 전에 얼른 가봐.” 열 살 소녀가 새벽 초가을 바람을 뚫고 걸어간다. 뒤통수에 따라붙는 무섬증쯤이야 달짝지근한 감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감나무에 나부끼던, 재앙을 물리친다는 오색의 천들은 어린 소녀에겐 오히려 재앙이었다. 마구 휘날리며 소녀의 오금을 잡는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작은 바구니엔 바람을 못 이겨 떨어진 땡감이 담긴다. 주워온 감은 잘 우려서 우리 형제들의 맛있는 간식이 될 것이다. 동생들과 내가 먹을 수 있는 중요한 간식거리라서 무서움 정도야 견딜 수 있었다. 멀리서 정이가 온다. 오늘은 정이보다 내가 한 발 빨랐다. 이미 내가 먼저 훑어낸 감나무 아래를 정이가 하릴없이 맴돈다. 행여나 다시 한 알이라도 있나 살핀다. 정이도 동생들 간식거리였으니까. 당당하게 돌아오는 길은 개선장군 같다. 어머니는 아셨다. 언제나 동생들보다 약하고 병치레가 잦은 내게 일부러 감을 주워 오게 하셨다. 동생들에게 나눠 주시면서 늘 나의 공을 일렀다. 동생들한테 으스댈 수 있을 것이다. 바구니 가득 담긴 감은 뿌듯한 수확물이었다.
   어머니의 남은 생명이 한 달 남짓이라고 의사들은 아주 사무적으로 얘기한다.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서 더 이상 자신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정말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한 이야기처럼 똑같은 음정으로 말한다. 분명 내 일이 아니다. 내 어머니의 일이 아니고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평생을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내게 내리는 형벌 같았다. 병약한 어린 시절엔 생사를 오가는 여러 번의 고비로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였다. 멀리 시집간 나를 보고 싶다고 말 한마디 못하셨다. 종갓집의 며느리 노릇하느라 힘들어하는 내게 내색 못하는 서러움도 많으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평생을 바구니에 주워 들고 온 땡감처럼 떫기만 했다. 제대로 우려낸 감처럼 달착지근한 모습을 보여 드리지 못한 못난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언제나 나는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 이었다. 며칠 사이에 너무 말라버린 어머니의 손을 쥐고 보니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다. 숨죽여 우는 내 등을 갈퀴 같은 손으로 토닥인다. 아픔인지 슬픔인지 분간이 없다.
   당산나무가 늦여름의 어스름 저녁 불빛에 운다. 그 아래 서서 숨죽여 우는 내가 가엾다. 흰 상여꽃이 멀어져간다. 이제야 뒤늦게 내 어머니의 평안을 당산나무 아래에서 빌고 있다. 황색, 청색, 적색, 백색, 흑색의 깃발이 잠시 흔들린다. 나를 안아 위로한다.

 

 

배복순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