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 문학 본문

[인간과문학 2013년 여름호, 수필] 다듬이질 소리 - 진운강

신아미디어 2013. 12. 1. 11:31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지면 솟구치는 다듬이질 소리. 아련히 들리는 다듬이질 소리는 잊혀져가는 향수를 되살리고 우리 고유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리이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내 마음을 쉴 수 있는 고향이다.  이제는 사라져 들을 수 없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는 잃어버린 골목길의 소리이기도 하다."

 

 

 

 

 다듬이질 소리     /  진운강

 

   내가 자란 곳은 인왕산의 끝자락인 현저동이다. 지금은 무악동으로 명명되었고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 단지로 변해있지만 예전엔 가파른 언덕에 게딱지같은 작은 집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층계도 많고 골목이 좁아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였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 없지만 꿈을 꾸면 언제나 그곳에 가 있곤 하였다.
   날이 밝으면 골목 안은 시끌벅적했다. 두부 장수 종소리가 골목을 지나가면 ‘새우젓 사~려’ 젓갈을 파는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골목을 누비며 다녔다. 엿장수 가위소리에 아이들이 몰려나오고 굴뚝 쑤시는 청소부의 징소리가 징~징~ 여운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때에는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살던 시절이라 굴뚝에 앉은 그을음을 청소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갔다. ‘찹쌀~떡 메밀~묵’ 밤의 적막을 깨고 들리는 낭랑하면서도 처량한 목소리는 가슴을 짠하게 하기도 했다. 자정이 되면 통금 싸이렌이 울리고 딱, 딱, 딱딱……. 야경꾼이 딱따기를 부딪치며 순찰을 돌면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사라져 들을 수 없는 소리다.
   지난 해 제주도 여행 중 테마 박물관을 가보았다. 개인이 일상으로 쓰던 옛 것들과 60년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재현되어 가까운 과거가 옛날처럼 꾸며져 있었다. 달동네의 하숙방 풍경, 하얀 칼라의 교복과 가방,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텔레비전, 삐삐와 무전기 같은 큰 핸드폰도 있고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려 따라가 보니 고고장도 있었다. 지금의 클럽을 예전엔 고고장이라 했다. 장터에는 탈곡기, 가마니 짜는 기계 같은 농기구와 됫박, 꼴망태, 고리짝 등이 보였다. 그중에 둥글고 긴 손잡이가 달린 숯다리미와 놋화로, 인두, 물지게, 다듬잇돌이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 낡은 듯 모자란 듯한 물건들이 문명의 발달에서 점차 사라져 옛 풍경이 된지 오래 되었지만 젊은 시절의 추억들이 모두 그곳에 있어 반가웠다.
   특히 마당에는 멍석을 깔아 놓고 다듬잇돌 위에 무명천을 접어 올려놓아 다듬이질을 할 수 있도록 방망이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예전엔 집집마다 다듬잇돌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들의 고단한 시집살이에 쌓인 한을 다듬이질을 하면서 풀었던 도구이기도 했다. 가부장적인 시대에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억눌린 애환도 여기에 스며있어 푸념 한번 풀어 놓지 못한 억울함을 가슴앓이 되기 전에 분출시키는 수단이 다듬이질이 아니었을까? 지나가는 관광객마다 한 번씩 자리에 앉아 두드려본다. 대개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자리에 앉았다. 고추보다 맵다던 옛 시집살이 시절의 설움이 생각나서인지 한참을 두드리고 일어서는 그들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나도 앉았다. 순탄치 않았던 시집살이, 돌아서면 껄끄럽게 느껴지던 그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가슴에 쌓인 응어리들을 풀어내듯 팡팡 두드리니 내 마음도 시원해졌다.
   어머니의 가을 햇살은 짧았다. 볕이 좋을 때 문창호지도 새 것으로 바르고 이부자리도 꾸며 놓아야 하기에 겨우살이 준비하느라 어머니는 늘 분주하셨다. 이불 홑청을 바꿀 때는 며칠씩 다듬이질을 해야 했다. 풀 먹인 홑청은 빨래보에 싸놓고 물기가 퍼지도록 꼭꼭 밟아 골고루 촉촉해질 때 두드리면 풀기를 먹은 천은 더 견고해지고 매끄럽게 되어 윤이 났다. 양 손에 다듬잇방망이를 잡고 번갈아 두드리면 그 소리는 한 낮의 지루한 고요를 깨고 바람결에 아련히 퍼져나갔다. 난 어머니와 마주 앉아 맞다듬이질을 하곤 했다. 홑청 다듬이질은 수월하지만 아버지의 명주 두루마기는 홍두깨로 다듬이질해야 했기에 언니가 어머니와 함께 했다.
   차디찬 마루에 등을 대고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 듣기를 좋아했다. 리듬감 있고 청명하게 들렸던 그때의 평화로움이 지금도 그립다.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했고 때로는 내 가슴의 떨림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쓰시던 다듬잇돌은 뒤주와 함께 친정집 현관에 인테리어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언제 보아도 정겹고 옛일이 생각나 어머니를 뵙는 것같이 푸근했다.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면 어머니가 생각나듯 훗날 우리 아이들은 내 모습을 무엇으로 기억할까?
   이제 다듬이질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지면 솟구치는 다듬이질 소리. 아련히 들리는 다듬이질 소리는 잊혀져가는 향수를 되살리고 우리 고유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리이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내 마음을 쉴 수 있는 고향이다.
   이제는 사라져 들을 수 없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는 잃어버린 골목길의 소리이기도 하다.

 

 

진운강  -----------------------------------------------

   서울출생,  《수필과비평》 등단(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