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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문학 2013년 여름호, 수필] 지우고 싶은 영상映像 - 차은혜

신아미디어 2013. 11. 29. 08:06

"저 놈의 고양이 앞에서 문득 그녀의 모습이 스치고,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선한 척 아들의 앞에서 사랑을 받으려고 교태부리는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숨겨진 발톱만을 떠올린다. 겨우 그녀의 음산한 그림자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되살아날 게 뭐람. 아직도 가슴 속 깊은 곳에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음인가. 거짓에 밀려 진실이 실종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 탓인가.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지울 수 있을까."

 

 

 

 

 

 

 지우고 싶은 영상映像      /  차은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냉기가 돈다. 적막감이 확 가슴으로 달려든다. 나를 향해 번뜩이는 눈빛이 보였다. 몸을 숨기고 움직이는 나의 발걸음을 무엇인가가 쫓고 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같이 살고 있다고 했지. 폰에 사진까지 저장해서 보여 주었는데 깜박 잊고 있었다.
   아들과 동거하는 그들을 난 탐탁지 않아 했었다. 벌써 사 년은 족히 되었는데 만난 적이 없다. 달갑게 여기지 않는 나에게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켜 사단을 만들지 않으려는 아들의 배려인 거다.
   이제 처음으로 그들과 한 공간에 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허나 지금 난 매우 어색하다. 아니 좀 스산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나의 거부를 눈치라도 챘을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주시하고 있다. 거실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의 물건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부산물과 특유의 냄새. 갑자기 마음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종잡을 수가 없다.
   발길을 되돌려 나오고 싶다는 것을 억누르고 방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제 모습을 드러냈다. 영락없이 내 집에 드나드는 도둑고양이다. 녀석은 잔디밭 저만치에서 나를 경계하던 놈과 너무도 흡사하다. 난 도둑고양이를 접할 때마다 예쁘게 보아 주지 않는다. 소리를 질러 쫓아냈다.
   어릴 적 그들의 만행을 무수히 들려주던 삼촌의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방문 앞에 와 밤새 울어대며 방문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그 심술이며, 들어오고 싶어 해서 들여 놓으면 발톱을 드러내 어린 나의 손등이나 얼굴에 상처를 낸 후유증이다. 난 그 후 그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놈들과 같은 종족인 이놈들은 웬 호강이냐 싶다. 한 마리도 보아 주고 싶지 않은데, 두 마리나 된다. 낯선 방문을 감시라도 하듯 빙빙 내 주위를 돈다.   
   구석에서 날 탐색했으니 만만한 모양이다. 발걸음 옮기는 대로 따라 온다. 눈이 마주치자 몸을 세워 날 위협하는 소리를 낸다. 소름이 돋았다. 아들의 방으로 들어서자 문지방 앞에 앉아 지키고 있다. 나도 모르게 그들에 밀려 방안에 갇혀 버린 꼴이다.
   아들의 모습이 보이자 다리에 매달리고 기대며 온갖 아양을 떤다. 마치 못된 계집 남정네 앞에서 교태 떠는 모습이다.
   “얘, 쟤가 나한테 캬 하며 위협했어.”
   난 선생님께 친구의 잘못을 이르듯이 그들의 행동을 아들한테 고하고 있었다.
   “아이, 어머니는 쟤네들은 아기 때 와서 그런 소리 못 해요. 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 했는데.”  
   아들의 이야기가 더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

   그녀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당당히 이야기를 해댔다. 당연히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어야 하는데 거꾸로 나를 겁박했다.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의 시나리오에는 그녀는 미안하고 난 괜찮다며 용서를 하는 것이었는데. 어처구니없고 황당했다. 나와 단 둘이 있을 때와는 달리 누구라도 있으면 그녀의 행동은 판이했다.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누가 믿을까. 주변머리가 없는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만 오면, 상냥하고 교양 있는 매너와 친절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일을 자주 접하면서 내 영혼이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벗어나고자 했다. 좁은 공간에서 그녀와 함께 호흡한다는 자체가 버거웠다. 물질에 눈이 어두워 신의를 저버리는 졸렬함도 자신의 잘못을 떠넘기는 비굴함도 너무 버거웠다. 나날이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무릎을 꿇었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축송을 받고자 신부님을 찾았을 때다. 한참의 침묵 끝에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공주가 대궐이 싫다고 궐을 떠났지만, 궐 밖에서도 그는 역시 공주였다.” 
   나의 마음을 읽으신 것일까. 떠날 때까지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한참을 두고 신부님의 말씀은 내 귀에 달려 있었다. 그 말씀은 내가 일을 그만 두고서도 오랜 세월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저 놈의 고양이 앞에서 문득 그녀의 모습이 스치고,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선한 척 아들의 앞에서 사랑을 받으려고 교태부리는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숨겨진 발톱만을 떠올린다. 겨우 그녀의 음산한 그림자에서 벗어났는데, 다시 되살아날 게 뭐람. 아직도 가슴 속 깊은 곳에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음인가. 거짓에 밀려 진실이 실종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소망 탓인가. 이번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지울 수 있을까.

 

 

 

차은혜  ---------------------------------------

   《수필과 비평》신인상 수상,  수필과 비평 문학상 수상,  수필과 비평 작가회의 부회장,  수필집 《견습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