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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9월호, 다시 읽는 이달의 문제작 작품론] 무더위 속에서 만나게 된몇 편의 수필들 - 송명희

신아미디어 2013. 11. 23. 07:49

"감정이입이란 남의 입장이 되어보고, 남이 느끼는 것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적 능력이다. 즉 타인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작품 등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이입시켜 자신과 그 대상물과의 융화를 꾀하는 정신작용이 감정이입이다. 큰언니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는 글쓰기가 이루어졌다면, 그녀의 희생으로 나머지 가족들이 어려운 시대를 잘 극복해온 데 대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 그 옛날 가족을 위해서 그토록 자신을 희생했음에도 지금은 “홀로 동그마니 섬처럼 살고” 있는 큰언니의 외로운 삶에 대한 깊은 연민의 감정이 좀 더 잘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집단적 경험으로 확대시킨 공감의 글쓰기, 감정이입을 통해 보다 성숙한 자아를 표현하는 수필이 되었을 것이다."

 

 

 

 

 

 

 무더위 속에서 만나게 된몇 편의 수필들     송명희

 1. 들어가기
   우리나라의 수필론은 경수필(miscellany)와 중수필(essay)을 나누게 된다. 전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정서적인 경향을 띠는 수필로서, 개성적이고 체험적이며 예술성을 내포한 글이다. 경수필은 감성적 주관적 성격을 지니되, 일정한 주제보다 사색이 주가 되는 서정적 수필이다. 반면 후자는 지적이고 논리적이며 사회적인 경향을 띠는 수필을 칭한다. 중수필은 지성적 객관적 성격을 지니되, 직감적 통찰력이 주가 되는 비평적인 글이다.
   우리나라의 수필은 후자의 경향이나 전자와 후자의 성격을 공유한 수필보다는 대체로 개인적이고 자기 고백적이며 신변적인 전자의 수필을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개인적 경험을 집단적 경험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더 많은 공감이 야기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글쓰기, 타인의 삶을 피상적으로만 말하지 않고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적 시선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이를 지닌 수필, 주관적인 신변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철학적 성찰과 사회학적 상상력이 문학적 감성과 조화를 이룬 수필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유난히 더운 여름날이다.


2. 자유와 부자유-유병근의 <물그릇을 든 채>
   유병근의 <물그릇을 든 채>는 ≪수필과비평≫에서 오랜만에 만나보는 단아한 수필이다. 이 수필을 읽으면 법정의 <무소유>가 생각난다. 난분 하나도 집착의 원인이 된다며 남에게 주어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나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법정의 수필과는 다른 의미에서 인간의 욕망과 자유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유병근의 수필은 보여준다.
   아파트의 23층에 거주했던 화자에게는 화분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시들시들 죽여 버린 실패의 경험이 있다. 그래서 2층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몇 개 되지도 않는 화분들을 마치 법정처럼 이웃에게 모두 주어버렸다. 그 결과 “거실에는 오래된 소파 하나, 텔레비전 하나, 그리고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전화기가 한 대” 덜렁 남아 있을 뿐이다. 화자는 “다분히 실용적이며 기계적인 것만 오도카니 거실 공간을 차지한” 자신의 무미건조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는 거실 풍경에 대해서 “이건 아무래도 좀 딱딱하고 밋밋하다”라는 후회의 감정에 사로잡힌다. 아마도 화분 같은 것을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큰 결심을 하고 화분들은 모두 남에게 주어버렸으나 “기계적인 거실은 뭔지 냉정하고 단순한 맛이 인정머리라고는 없어 보인다”라는 의외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불가의 승려인 법정과 문학을 하는 문인인 유병근의 차이가 발생한다.
   난분 하나 놓이지 않은 자신의 실용적이고 기계적인 거실, 아니 냉정하고 단순한 거실 속에서 그의 심경은 다소 복잡해진다. “분을 들여놓으면 그날부터 성가신 일이 하나 더 불어날 것은 뻔하다. 분 속의 식물을 돌보느라 때를 맞추어 물을 주어야 한다. 햇볕이 어떠니 바람받이가 어떠니 하고 분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등 어쭙잖은 관심으로 가끔은 살살거려야 한다.”라고 화분을 키우는 데 따른 성가신 부자유와 화분 하나도 없는 무미건조한 자유를 저울질하고 있는 화자에게 뜻밖에도 난분이 선물로 들어왔다. 이제 어느 쪽을 선택할지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난분 혼자 두기는 허전한 느낌이 들어 그 곁에 수석 한 점을 앉혔다. 난과 수석은 제법 잘 어울리는 친구다. 난은 수석을 보면서 혼자이던 외로움을 달래는 듯하고 수석은 푸른 기운을 받아 딱딱한 돌의 성징을 부드럽게 닦는 듯했다. 그건 난과 수석의 아기자기함이라는 등 입방아를 찧으면서 난이 목마르다 싶으면 쪼르르 달려가 물을 주었다.
   난을 차지한 거실 또한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를 즐기는 듯하다. 무뚝뚝하던 거실이 갑자기 생기를 띠고 티브이 소리도 한결 나긋나긋한 맑은 목소리로 뉴스를 알려준다. 그것은 난분 효과나 다름없는 새로운 분위기라며 눈으로 가만히 난을 쓰다듬는다. (중략)
   이상한 허욕이 또 마음을 뒤집는다. 난분 곁에 소나무 분재나 뭐 또 그런 종류 한두 개쯤 들여놓아도 좋을 것 같다며 소갈머리 없는 처지는 다 까먹고 느릿느릿 분재 가게를 기웃거리는 환상에 빠진다. 그때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다잡아 되새긴다. 난분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주제에 허욕을 부리다니. 아무리 좋게 보아도 헛된 물욕주의가 목구멍을 차지한 낯간지러운 짓임에 틀림없다.

-유병근의 <물그릇을 든 채>에서

 

   그는 내심 기다렸다는 듯 난분 하나로는 허전한 느낌이 든다며 수석 한 점까지 난분 옆에 앉혔다. 난분과 수석을 보면서 일어난 화자의 행동의 변화는 “난과 수석의 아기자기함이라는 등 입방아를 찧으면서 난이 목마르다 싶으면 쪼르르 달려가 물을 주었다.”와 같은 객관적 묘사를 통해 드러나듯 성가신 부자유를 즐겁게 실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무뚝뚝하던 거실이 갑자기 생기를 띠고 티브이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뉴스를 알려주는 거실 분위기의 놀라운 변화를 실감한다. 게다가 인간의 헛된 물욕주의(?)는 이제 소나무 분재까지 한두 개쯤 들여놓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그에게 속삭인다. 이 단계에서 화자는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다잡아 되새”기는 철저한 자기검열에 들어가게 된다.
   화자가 난을 보살피는 형국은 그야말로 이미 염려했듯이 “성가신 일이 하나 더 불어”난 “영락없는 종”과 같은 모습이지만 정작 화자 자신은 “내가 종이 될수록 난분은 기운이 팔팔하여 거실을 환하고 푸르게 쓰다듬는다. 아니나 다를까 난은 편작이다. 물그릇을 든 채 나는 편작의 진맥을 기다리고 있다.”에서 보듯 난으로부터 정서적 치유를 받고 있다. 그가 난을 보살핀 것이 아니라 난이 그의 마음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고쳐주는 편작과 같은 의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솔직한 고백한다.
   법정의 <무소유>가 종교인의 관점에서 집착을 벗어던짐으로써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면, 유병근의 <물그릇을 든 채>는 문학인의 입장에서 난초라는 소박한 물욕주의(?)가 주는 기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물욕주의는 겉으로는 부자유를 초래하는 듯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여 오히려 생생한 생기를 불러일으켰음을 진솔하고 치밀한 언어를 통해서 고백하고 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자유와 부자유에 대해서 모처럼 생각하게 만든, 가을바람 같은 청신한 수필이었다.


 3. 인간 내념의 감추어진 동기들-이명진의 <오래된 풍경>
   이명진의 <오래된 풍경>은 일종의 복합구성의 구성법으로 쓴 수필이다. 복합구성은 한 수필 속에 둘 이상의 플롯이 중첩된 구성으로 인생의 단면보다는 복잡한 측면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구성이다. 대체로 이런 수필은 장편수필에 적합한 구성법이다. <오래된 풍경>은 인도의 콜카타에서 만난 릭샤꾼의 부성애를 핵심적 이야기로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버지 이야기가 보조적인 이야기로 삽입되어 있다. 하지만 제목이 ‘오래된 풍경’인 것을 보면 메인플롯(main plot)인 릭샤꾼의 이야기는 도입에 불과하고, 오히려 화자의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복합구성은 주제마저 하나로 명확하게 통일되지 않고 복합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법이다.

 

   말을 걸어도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던 아이였다. 아이의 얼굴은 서너 살의 천진스러움 대신, 불안한 눈빛과 상처받은 마음의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때가 꼬질꼬질 절어 버린 낡은 스웨터가 작은 아이의 가냘픈 몸을 감싸고 있다. 올 풀린 스웨터의 구멍 사이로 초겨울의 바람이 휘릭휘릭 아이의 가슴속에서 찬 기운을 뿜어냈다. 그 표정은 아무도 상대하지 않고 믿지 않는 ‘불신’의 씨앗으로 옹이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바람이 나 집을 나가 버렸다고 했다. 가장으로서 무능함을 숨기지 못한 채, 자신의 분신이 아이만은 보살펴야 했다.

-이명진의 <오래된 풍경>에서

 

   수필의 화자는 인도 여행길에서 그녀의 발이 되어준 젊은 릭샤꾼 남자의 부성애에 감탄을 보낸다. 그는 “떨어져 나간 단추 대신 옷핀을 꽂은 남자. 빠진 앞니 때문에 웃을 때면 칠순 노인네처럼 보이던 남자.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면 맨발인 뒤꿈치가 반들거리던 남자. 자전거에 속도가 붙으면 배트맨의 망토처럼 휘날리던 그 남자의 구멍 난 숄. 내 기억 속 남자는 네댓 살짜리 아들을 자전거 앞자리에 태우고 손님을 실어 나르던 깡마른 체구의 젊은 아버지”로서 남루한 차림새와 형편없는 외모의 남자이다. 하지만 한 명의 아버지로서 그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중간 중간 아이에게 다정하게 귀엣말을 건네는 모양새가 정겨워 보”이는, 즉 아내가 버리고 떠난 아이를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보살피는 부성애가 극진한 인물이다. 그리고 “바람이 나 가출한 아내의 잘못까지 자신의 무능함으로 치부해버린” 멋진 남자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의 지극한 부성애는 화자로 하여금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대체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셨던 것일까?

 

   아버지는 가끔 외박을 하곤 했다. 외박을 하고 들어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양손에는 과자 봉투가 들려 있곤 했다. 그런 날 밤이면 안방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고함소리가 듣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써야만 했다. 부모님의 상황을 이해 못했던 어린 마음은 무작정 어머니를 미워하고 있었다. 아무 대꾸도, 소리도 없는 아버지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어머니가 역정을 내며 분통을 터뜨리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린 마음은 과자를 사들고 온 아버지 편이 되어 잠이 들곤 했다. 어릴 적 기억은 내 잠재의식 속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세월에 흘러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의 엄마가 된 후, 어머니의 고함에 대한 의문을 깨닫게 되었다. 싸움의 원인 제공은 언제나 아버지였고, 언성을 높이고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행동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절규였다는 사실이다.

-이명진의 <오래된 풍경>에서

 
   외박을 하고 과자 봉투를  들고 들어온 아버지, 어머니의 고함소리,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던 삽화……. 어린 시절의 화자로서는 결코 그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삽화이다. 그런데 화자의 잠재의식 속에 오래도록 각인되어 남아 있었던 그 삽화의 진정한 의미를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잘못된 판단으로 어머니를 헤아려드리지 못한” 데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죄의식은 화자의 잠재의식에 오래도록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릭샤꾼의 감동적인 부성애가 망각되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의식의 차원으로 불러왔던 것이다. 가난한 릭샤꾼 부자를 위해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도록 털장갑과 털 스웨터를 선물하게 된 동기는 겉으로는 화자의 고통수단이 되어 준 데 대한 고마움과 감동적인 부성애에 대한 격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너머에서 외박으로 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던, 릭샤꾼과는 대조적인 아버지에 대한 기억. 어린 시절에는 너무 어려서 미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지 못했던 데 대한 억압된 죄책감 등이 심층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간 내면의 복잡한 심층의 동기들을 헤아려 보게 하는 흔치 않은 수필이다.


 4. 개인의 추억을 집단적 경험으로 확대하기-<큰언니와 호박>
   김양자의 <큰언니와 호박>은 텃밭에서 잡초를 뽑다가 누렁누렁 익은 호박 한 덩어리를 발견하고 그와 같은 호박을 닮은 큰언니에 대한 추억의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판 무던한 큰언니를 닮은 듯하다. 동트자마자 중리 텃밭에 왔다. 잡초를 뽑아내다가 밭 구석 덤불 속에서 누렁누렁 익은 호박 한 덩이를 찾아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잡초들 등쌀에 애호박 한 개도 못 건질 줄 알았다. 굵은 배꼽 줄을 단 채 펑퍼짐한 엉덩이를 풀더미 위에 얹어놓고 빙그레 웃고 있는 양이 푸근한 큰언니 그대로다.

-김양자의 <큰언니와 호박>에서

 

   한국전쟁으로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생계를 떠맡게 되자 어머니를 대신하여 학교도 그만두고 집안 살림을 도맡은 큰언니에 대한 추억은 3개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회상된다. 초등학교 시절 동대신동에서 영도로 전학을 가야함에도 가지 않고 영도다리를 건너 통학을 하는 어린 동생을 위해 전차를 타고 가라며 차비와 용돈을 주었음에도 추운 겨울날 아침, 고집스레 걸어가는 동생을 뒤쫓아와 업어서 학교까지 데려다 준 고마운 큰언니, 잊고 온 도시락을 교실까지 가져다주었던 큰언니, 친구랑 호박서리를 해서 집에 가져갔으나 “갖다 버려라. 그건 못 묵는 기다.”라고 꾸중을 하던 큰언니……. 추억의 갈피갈피마다 큰언니와의 오래된 삽화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린 시절 큰언니는 언니가 아니라 어머니를 대신하여 요모조모 화자를 보살펴주었고, 때로는 행동에 대한 규범까지 가르쳐준 고마운 존재였다.
   <큰언니와 호박>은 큰언니에 대한 개인적 추억과 그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이제는 혼자 외롭게 남은 큰언니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 기초해서 작성됐다. 작품은 결말에서 다시 호박 이야기를 함으로써 수미상관의 안정적인 구성법을 취하고 있다.

 

   저녁에, 푹 삶은 호박에 강낭콩과 찹쌀 새알도 넣고 맛있게 죽을 끓여 큰언니에게 갖다 줘야지. “뭘라고 이 고생을 하노. 덥은데.” 무심한 듯 말하겠지만 얼마나 반가워하랴. 큰언니를 안 듯 호박을 끌어안고, 끙끙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을 탄다.

-김양자의 <큰언니와 호박>에서

 

   하지만 <큰언니와 호박>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수필이다. 한국전쟁 직후 어려웠던 우리 민족의 집단적 경험, 민족 전체가 절대빈곤에 처해 있던 그 시절 맏이와 큰딸들이 겪어야 했던 가족을 위한 희생……. 화자는 “큰언니는 어려운 시절에 우리 집의 보물이었다.”라고 회상하고 있는데, 큰언니의 희생의 덕을 본 가족들에게는 그 희생이 ‘보물’이었을지 몰라도 그 희생을 치러야 하는 큰언니의 입장에서도 과연 그러했을까?
   이미 자신도 노년이 되었을 화자이다. 큰언니로부터 받은 사랑을 회상만 하지 말고 가족을 위해서 개인적 꿈을 접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했던 큰언니의 마음, 즉 그녀의 꿈, 아픔, 상처 등을 적극적으로 헤아려보는 감정이입의 글쓰기가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입이란 남의 입장이 되어보고, 남이 느끼는 것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적 능력이다. 즉 타인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작품 등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이입시켜 자신과 그 대상물과의 융화를 꾀하는 정신작용이 감정이입이다. 큰언니의 입장에 적극적으로 감정이입을 하는 글쓰기가 이루어졌다면, 그녀의 희생으로 나머지 가족들이 어려운 시대를 잘 극복해온 데 대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 그 옛날 가족을 위해서 그토록 자신을 희생했음에도 지금은 “홀로 동그마니 섬처럼 살고” 있는 큰언니의 외로운 삶에 대한 깊은 연민의 감정이 좀 더 잘 드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집단적 경험으로 확대시킨 공감의 글쓰기, 감정이입을 통해 보다 성숙한 자아를 표현하는 수필이 되었을 것이다.

 

 

 

송명희  -----------------------------------------------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6대 회장 역임, ‘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 회장(현), 해운대포럼 회장 역임, 달맞이언덕축제 운영위원장 역임. 부경대학교 우수교수업적상, 부경대학교 학술상, 이주홍문학상, 봉생문화상, 한국비평문학상 수상. 저서: 수필이론서 ≪디지털시대의 수필 쓰기와 읽기≫, 에세이집 ≪여자의 가슴에 부는 바람≫, ≪미주지역한인문학의 어제와 오늘≫, ≪권력과 젠더 그리고 몸≫, ≪타자의 서사학≫, ≪시 읽기는 행복하다≫, ≪소설서사와 영상서사≫, ≪여성과 남성에 대해 생각한다≫ 외 저서 및 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