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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3년 8월호, 신작수필10인선] 눈썹에 대한 단상 - 이웅재

신아미디어 2013. 11. 18. 08:18

"세계적인 명화名畵 ‘Lisa 여사(女史: mona)’ 곧 ‘모나리자’를 자세히 보라. 그 그림에는 ‘눈썹’이 없다. 눈썹이 없어도 그 ‘미소’가 얼마나 비싼 미소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눈썹에 집착하지 말자. 눈썹과 눈썹의 사이, 곧 미간眉間만 찌푸리지 않는다면, 눈썹은 그냥 생긴 대로 놓아두어도 별 탈은 없을 것이다."

 

 

 

 

 

 

 눈썹에 대한 단상      이웅재

 

   점심을 먹고 났더니 식곤증이란 놈이 찾아온다. 놈은 참말로 신통방통하다. 어떻게 내가 점심을 먹었는지를 아는가 말이다. 놈이 찾아오면 우선 윗눈썹과 아랫눈썹이 긴장을 한다. 그 시간은 길지가 않다. 금세 두 눈썹은 마술에라도 걸린 듯 힘이 빠진다. 드디어 그들은 도킹을 한다. 그러지 않아도 늘 떨어져서는 못 살겠다고 자주 서로 랑데부를 하는 그들이요, 밤중에는 통상 8시간 정도는 아예 서로 붙어서 지내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점심을 먹은 후면 만사휴의, 일심동체가 되려고 작정을 하는 것이다.
   한번 계산을 해보자. 성인의 평균 수면시간 8시간은 24시간인 하루의 1/3이다. 그렇다면 평생 어느 정도나 자는 것일까? 요즘에는 수명이 늘어났다고 하니까 그 점을 감안하는  한편, 계산의 편의상 일생을 90세까지 산다고 치면 그 1/3인 30년 정도는 잠자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61세를 환갑으로 잡는 것은 깨어 있는 시간만으로 따져볼 때,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말은 아닐는지?
   잠자는 시간 30년을 제외하고도 두 눈썹은 상당시간을 서로 맞붙어 지내고 있다. 그것도 계산해보자. 특별한 사유가 없을 때에는 평균 5초 정도마다 한번씩 눈을 깜빡거린다고 하니까, 1분이면 60초÷5초=12회, 1시간이면 12회×60분=720회, 하루에는 720회×(24시간-잠자는 시간 8시간)=11,520번이나 깜빡인다고 하겠다. 원래 나는 문과 체질이라서 계산에는 자신이 없는 편이니 윤년 따위까지는 챙길 능력이 없다. 그래서 그냥 1년을 평균 365일로 잡으면 11,520회(하루)×365일=4,204,800회가 되고, 60년이면 4,204,800회×60년=252,288,000회가 된다. 그러니까 90세까지 산다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도 평균 2억 5천2백28만 8천 회 정도나 눈을 깜빡거린다는 셈인데, 그걸 시간으로 따지면 어떻게 될까?
   한번 눈을 깜빡거릴 때 걸리는 시간이 보통 1/40초라고 친다면, 252,288,000회×1/40초(0.025초)=6,307,200초가 될 것이요, 이것을 분으로 따지면 6,307,200초÷60초=105,120분이 되고, 시간으로는 105,120분÷60분=1,752시간, 다시 1,752시간÷24시간=73일이 된다. 그러니 30년하고도 73일이나 서로 붙어 있는 놈들이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식곤증’이라는 명함을 들이밀고 더 붙어 있겠다고 시위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속눈썹의 경우이다. 이제는 겉눈썹에 대한 것을 말해 보자. 속눈썹이야 눈동자를 지켜주기 위한 근위병 노릇을 하는 임무를 맡아한다면 나름대로 이해가 가는 바이지만, 겉눈썹은 왜 또 있는 것일까?
   우리의 얼굴에 있는 구성분자들을 일별하면, 눈이 두 개요 귀가 두 개에다가, 코가 하나요 입이 하나로서, 두 개 대 하나가 2:2 팽팽한 구조상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왜 겉눈썹 두 개가 더 있어서 3:2의 불균형을 만들어 놓고 있을까? 겉눈썹(통상 이걸 그냥 눈썹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 글에서도 앞으로는 ‘눈썹’이라고만 하겠다.) 두 개는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일까? 이것저것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더니, 눈썹의 기능은 눈으로 들어가는 햇빛을 가리며 땀이나 눈으로 떨어지는 티끌을 막아준다는 상식적인 설명이 대부분이고 더러 거기에 덧붙여서 순간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다양한 인상을 제공한다는 것이 몇 개 눈에 띄었다. 글쎄, 땀을 막아준다는 것은 일견 부분적인 수긍이 되어도 제까짓 게 햇빛을 가려주면 얼마나 가려줄 것이며, 티끌을 막아주는 일은 겉눈썹보다 속눈썹의 임무가 아니겠는가?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말 중에 ‘백미白眉’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들 중에서 ‘백미’가 되고 싶은가? 그건 아주 간단하다. 당신의 눈썹에다가 correction fluid(문자 수정액, 일명 white) 혹은 페인트를 가지고 하얗게 칠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내를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보라.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들 당신만 쳐다보고 당신은 일약 유명인이 되어버릴 것임에 틀림이 없다.
   최근 들어서는 그저 단순한 인상을 넘어서 미적인 기능을 더욱 중시하는 듯도 하다. 눈썹 문신이 유행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점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일이겠다. 그러나 걱정스럽다. 너무 외적인 미美만 추구하려 하는 일은 아닌가 해서다. 세계적인 명화名畵 ‘Lisa 여사(女史: mona)’ 곧 ‘모나리자’를 자세히 보라. 그 그림에는 ‘눈썹’이 없다. 눈썹이 없어도 그 ‘미소’가 얼마나 비싼 미소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너무 눈썹에 집착하지 말자. 눈썹과 눈썹의 사이, 곧 미간眉間만 찌푸리지 않는다면, 눈썹은 그냥 생긴 대로 놓아두어도 별 탈은 없을 것이다.

 

 

이웅재  ---------------------------------------------

   이웅재님은 수필가. 전 동원대학 교수(학술정보센터장 역임), 중앙고전문학회장, 중앙어문학회장 역임. 현재 수필문학추천작가회 회장,  수필집 《지리산의 유혹》, 《믿음직한 남편되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