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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문예 2013년 여름호, 수필] 신선이 될 뻔한 이야기 - 정태원

신아미디어 2013. 11. 6. 08:13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지레짐작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선입견으로 사람을 평가하면서 — 바위를 앞에 두고 암자를 찾는 — 우매함을 저질렀으리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시험 삼아 질문을 던진다. “우이암이 암자일까요, 바위 이름일까요?” 다섯 사람 중 세 사람이 “암자가 아닐까요?” 한다. 설악산 흔들바위나 관악산 마당바위처럼 도봉산 우이암은 왜 우이바위가 아닐까!"

 

 

 

 

 

 신선이 될 뻔한 이야기     정태원

 

   도봉산에 오를 때는 늘 광륜사 쪽으로 갔는데, 오늘은 자연학습원 가는 길로 접어든다. 산책로처럼 정겹고 평평한 흙길을 지나자 아기자기한 오솔길이 즐거움을 안겨준다.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산을 오르고 싶을 때 좋은 코스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오르다가 만난 이정표에서 정상에 우이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이암!
   조촐하고 아늑한 작은 암자이리라.
   좀 힘이 들더라도 꼭 올라가 보자고 다짐한다.
   오르고 또 올라도 우이암은 좀체 나타나지 않는다.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반가운 대답인데,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우이암에서 하룻밤 묵읍시다.”
   이미 탈진상태인지라, 정상까지 오르면 도저히 하산할 자신이 없을 것 같아 그냥 툭 던진 말인데, “좋지!” 하며 남편이 더욱 반긴다.
   밤하늘에는 주먹만 한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할 것이다.
   고즈넉한 암자에서의 하룻밤이라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산 정상을 오르는 계단 앞에 서자 ‘우이암 200미터’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기운이 번쩍 난다. 숨을 헐떡이며 나무계단을 올라왔으나 정상에는 넓은 바위와 나무뿐 암자는 보이지 않는다.
   마침 체조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묻는다.
   “우이암이 어디에 있지요?”
   “저기 보이는 곳인데 가지는 못하고 여기서 봅니다.”
   “아니, 암자는요?”
   “글쎄요, 모르겠는데요…….”
   무엇에 홀리지 않고서야 이럴 수가 있나. 우이암을 보러왔는데 암자가 없다니…….
   ‘우이암 200미터’라는 이정표는 어떻게 된 것일까.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도 젊은이는 무심히 체조만 한다.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오다가 마침 우이암을 보기 위해 올라온다는 일행을 만났다.
   “암자가 없네요 ! 꼭 무엇에 홀린 기분입니다.”
   “어머, 우이암은 암자가 아니라 바위 이름이예요!”
   “예? 세상에, 우이암이 암자인줄 알고 하룻밤 쉬고 오려고까지 했는데…….”
   “신선이 될 뻔했구먼!”
   남편 말에 모두 박장대소를 한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바로 눈앞에 두고도 몰라봤던 우이암을 하산 길에 멀리서 디카로 찍는다.
   우이암에게 미안하다.
   정상에 우뚝 솟은 우이암은 멀리서 보아도 단아한 모습이다.
   내려오는 길에 이정표를 다시 확인한다. 바위그림 밑에 탑 그림이 그려져 있다. 우이암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암자로 생각해 버린 우리는, 바위 그림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다.
   ‘저기 보이는 곳인데 가지는 못하고 여기서 봅니다.’ 분명히 젊은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우이암을 알려주는데도. ‘아니, 암자는요?’ 하고 암자만을 찾은 이유다.
   살아오면서 나의 이런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지레짐작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선입견으로 사람을 평가하면서 — 바위를 앞에 두고 암자를 찾는 — 우매함을 저질렀으리라.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시험 삼아 질문을 던진다.
   “우이암이 암자일까요, 바위 이름일까요?”
   다섯 사람 중 세 사람이 “암자가 아닐까요?” 한다.
   설악산 흔들바위나 관악산 마당바위처럼 도봉산 우이암은 왜 우이바위가 아닐까!
   맞은편 산에서 하루 종일 나를 지켜보고 있던 만장봉이 빙그레 웃는다.

 

 

 

정 태 원  ---------------------------------------------------

   충북 청주 출생. 1990년 ‘현대문학’ 등단. 《그해 여름 복숭아 꽃물은》이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 수필집 《행복예감》 《부모의 생각이 아이의 운명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