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수제비가 있는 곳에는 나의 어머니가 있고, 멸치로 오랫동안 끓여 깊은 맛을 내는 허름한 수제비집은 나의 고향이다."
어머니와 수제비 - 박현규
나는 천천히 빈둥거리면서 걷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골목길이나 시장市場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큰소리치면서 호객행위하는 것이 흥미롭고, 에누리하면서 약간은 뻔히 들여다보이는 바람잡이의 흥정도 재미있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의도적으로 시장길을 통해서 걷기도 한다.
시끌시끌한 시장에서는 서민들의 다양한 삶과 애환이 있다. 더불어 먹는 것이 남는다는 듯, 언제나 값도 싸면서 풍성한 먹을거리가 기다린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목에는 떡볶기가 있고 오뎅 순대가 있으며 수제비 모양 같은 다양한 사연들이 있다.
그중에서 특히 허름하면서도 분주한 수제비집은 언제나 그만그만한 사람들로 붐빈다. 그 집에는 한 남자가 위생복을 입고 오고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분주히 밀가루 반죽을 한다.
수제비를 만드는 모습을 보니 그 옛날, 시골집에서 수제비를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성큼 수제비집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골집 뒤란에는 장독대가 있고 주변에는 봉숭아 맨드라미가 빨갛게 물들어간다. 매미의 그악스러운 울음까지도 무더위에 지쳐간다. 어머니는 장작불을 피우고 오랫동안 멸치국물을 우려내고 매운 연기에 땀방울을 흘려가며 밀가루 반죽을 한다. 그리고 반죽을 뜯어서 멸치국물이 펄펄 끓는 양은솥에 숭덩숭덩 집어넣는다.
막 끊여낸 뜨거운 수제비를 후후 불어가면서 먹었던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은 그야말로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명품이다. 비록 양념은 변변치 않았지만.
그러나 수제비집에서는 기대했던 그때의 맛을 느낄 수 없다. 멸치를 오랫동안 우려내는 정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너무 빨리 음식이 만들어져서 나오니 깊은 맛이 들지 않았다.
가난한 그 시절에, 더군다나 궁핍한 시골에서는 주식主食이 잡곡과 감자, 수제비와 국수 등 분식粉食이 대부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정든 고향도 떠나야 할 만큼 적응하기 힘든 집안이었다. 끼니 걱정을 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 밀가루 음식과 인연이 많았다.
우리 집은 시골에 살다가 아버지가 하는 조그마한 사업의 부진으로 조금씩 일궈가던 농토까지 팔아야 했다. 그 여파로 어쩔 수 없이 읍내로 이사를 했으며 생계를 위하여 국수공장을 했다. 집안의 장남인 나는 군대에 가기 전의 막막하면서도 불투명한 시간에 우울한 기분으로 부모님을 도와 일을 했다.
국수공장이기에 자연스럽게 수제비를 많이 먹었다. 연탄불에 멸치를 넣고 오랫동안 끓인 물에 삶아낸 수제비를 먹었다. 누군가는 지겨울 것이라 말하겠지만, 그래도 수제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최고의 음식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옛날 추억의 수제비가 그리우면 일부러 지나치게 깔끔하지 않은 시골분위기의 수제비집을 찾는다.
어머니도 그 시절을 잊지 못했나 보다. 정정하던 그분은 어느 날부터 평상시보다 예민해지면서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기 시작했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밀가루 음식을 지겹도록 먹으면서 고생했던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하는 것은 삶의 시련이 이제는 기나긴 여운과 향수를 불러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것들이 때때로 지금의 우리 형제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가족애를 느끼게 하는 애증의 애틋한 매개역할도 하는 듯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어머니는 성당 가다가 빙판길에 미끄러져서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요양병원에서 거의 누워 지내야 하는 그분의 쓸쓸한 모습에서 자식으로서의 능력의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많이도 괴로워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활동할 수 없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집에서 지내고 싶어 했지만 의사의 손을 벗어나서는 감당이 안 되는 어려움 때문에 계속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처음 입원했을 때보다 병원생활에 점차 적응해 가기도 했고, 몸이 좋아지면 수제비를 실컷 먹겠다고 삶의 의욕을 보일 때도 있었다. 많은 시간들이 지나면서 크고 작은 우여곡절도 있었다. 큰 수술과 회복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해가 서산으로 저물어가듯이 어머니는 떠났다.
재래식 수제비가 있는 곳에는 나의 어머니가 있고, 멸치로 오랫동안 끓여 깊은 맛을 내는 허름한 수제비집은 나의 고향이다.
박현규 -----------------------------------------------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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