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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7월호, 지상에서 길 찾기] 미암眉岩과 덕봉德峰의 풍류 - 황인용

신아미디어 2013. 9. 3. 07:59

"아! 세상에 부인을 문우와 지기知己로 둔 미암은 얼마쯤 축복받은 행운아였는가?"

 

 

 

 

 

 

 미암眉岩과 덕봉德峰의 풍류    황인용

 

   병술년丙戌年 유월 초하룻날 당신은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자식들은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먼저 가십니까? 함께 누우면 당신께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이들도 우리처럼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살 수가 없어요…….

 

   이는 400여 년 만에 햇볕을 본 ‘원이 엄마’의 편지다. 오늘날 사랑 타령이 홍수를 이루고 있음은 그만큼 참다운 사랑에 갈증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랑의 홍수 속 가뭄시대에 원이 엄마의 편지는 그 얼마나 놀라운 문화적 충격이었던가?
   다만 그들의 구체적 이야기는 남아 있지 않다면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는 미암과 덕봉만큼 축복받은 부부도 달리 없는 셈이다. 그들은 금실 좋은 부부이기 이전에 수많은 편지와 시를 주고받는 문우文友이기도 했음이다.
   미암이 승지承旨로 일할 때 엿새나 집에 못 들어간 일이 있었다. 술과 함께 시를 지어 부인께 보냈다.

 

   눈 위에 바람 더욱 찬데
   낭군 생각하며 냉방에 앉아 있을 그대여
   이 막걸리는 비록 쓴 술이지만
   찬 속을 데워주기는 충분할 거요

 

이 시는 물론 한시漢詩다. (이하 모두 원문은 생략한다.) 다음 시는 덕봉이 감사의 뜻으로 보낸 것이다.

 

   국화잎 비록 눈을 날려도
   궁중은 따뜻하겠지요
   추운 집에서 따스한 술 받아
   감사하게도 배를 채웠답니다

 

   한번은 임금이 하사한 술과 배를 부인과 맛보고 미암은 일기에 적었다.
   “부인과 함께 궁중의 좋은 배를 먹으니 맛이 시원해서 최고품이라 이를만 하고 술도 역시 무척 맛 좋아서 서로 칭송하여 마지 않았다.”

 

   부인이 다음 시를 지었다.
   눈 속이라 여느 술도 얻기 어려운데
   더구나 임금이 하사하신 황봉주黃鳳酒임에랴
   한 잔을 마시자 얼굴이 붉어오니
   태평세월 보냄을 낭군과 함께 치하하네

 

   이 미암 일기는 보물 260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로 담양의 연계정蓮溪亭에 보관돼 있다. 당시 사회상을 빠짐없이 기록한 덕분에 사료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한다.

 

   뜰의 꽃 흐드러져도 보고 싶지 않고
   음악 소리 자지러져도 관심 없어
   좋은 술 어여쁜 자태에는 흥미 없으니
   참으로 맛있는 건 책 속에 있네

 

   이처럼 미암은 천생 주색에는 소질이 없는 도덕군자였다. 그 점이 덕봉에게는 흠 아닌 흠이었을까?

 

   봄바람 아름다운 경치는 예부터 보던 바이고
   달 아래 거문고 뜯음도 한 가지 한가로움이지요
   술 또한 근심 잊고 마음 호탕하게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책에만 빠져 있는 거요?

 

   이렇듯 차라리 덕봉이 풍류의 멋을 알았으니 주객전도랄까?

 

   걷고 또 걸어 드디어 마천령에 이르렀도다
   동해는 끝이 없어 거울처럼 평평하구나
   만 리 먼 곳을 부인의 몸으로 어찌 왔는가?
   남편 따르는 의리는 무겁고 한 몸은 가볍기 때문이라오.

 

   미암이 경성鏡城으로 귀양갔을 때 덕봉은 만 리를 멀다 않고 찾아갈 만큼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바람 불으소서 비 올 바람 불으소서
   가랑비 그치고 굵은 비 내리소서
   한길이 바다가 되어 임 못 가게 하소서

 

   이 시조는 덕봉이 귀양길 떠나는 남편을 안타까워하면서 부른 노래다.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은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끌꼬

 

   미암의 이 시조는 ‘천 번의 생각 끝에 한 번의 실수’ 격이다. 부인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고마운 뜻을 나타내야 옳았지 않겠는가?

 

   미나리 한 포기 캐어서 씻었습니다
   다른 데 아니라 우리 임께서 받으소서
   맛이야 요긴치 않아도 다시 씹어 보소서

 

   미암의 이 시조가 그 유명한 <헌근가獻芹歌>다. 미암이 전라감사로 지낼 때 임금의 명령으로 내려온 박순朴淳에게 미나리를 전하며 읊었다고 한다.
   미암이 처음 벼슬길에 올라 한양으로 올라간 지 몇 달 만에 덕봉이 편지를 보내왔다. 홀로 지내는 괴로움 속에서도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았다는 자랑이었다. 이에 덕봉도 답장을 썼다.

 

   삼가 편지를 보니 갚기 어려운 은혜라고 스스로 자랑하셨는데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다만 듣건대 군자가 행실을 닦음과 마음을 다스림은 본래 성현의 가르침이지 어찌 여자를 위해 힘쓰는 것이겠습니까? 서너 달 홀로 지낸 일 가지고 고결하다고 하고 덕을 베풀었다며 생색을 낸다면 그대도 분명 무심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깨끗해서 밖으로 화려한 유혹을 끊어버리고 안으로 사념이 없다면 어찌 편지를 보내 공을 자랑한 뒤에야 남들이 알아주겠습니까? 곁에 나를 알아주는 벗이 있고 아래로 종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공론이 절로 일어날 터입니다. 굳이 편지 보낼 필요가 없겠지요. 이 점을 보면 당신은 아마도 베푼 인의에 대해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합니다. 정도 당신에게 잊을 수 없는 공이 있으니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당신은 몇 달 혼자 지냈음을 구구절절 자랑했지만 예순이 넘은 나이에 그렇게 함은 건강에 유익하니 제가 갚기 어려운 은혜는 아닙니다. 옛날 시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 당신을 귀양 가 있고 돌봐줄 사람 없어 통곡할 뿐이었습니다. 지극정성으로 장례를 치렀으니 부끄러운 게 없습니다. 삼년상을 마치고 만 리 길을 떠나 당신을 찾아간 일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당신께 지성을 바쳤으니 잊기 어려운 공일 터입니다. 당신이 몇 달 홀로 지낸 일과 비교하면 어떻겠습니까? 바라건대 잡념을 끊고 건강을 보전하십시오. 밤낮으로 바라는 나의 뜻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아! 세상에 부인을 문우와 지기知己로 둔 미암은 얼마쯤 축복받은 행운아였는가?

 

 

황인용  ------------------------------------------------
   월간 ≪에세이≫ 천료. ≪수필과비평≫ 수필평론 당선. 수필집: ≪흐르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