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조용필의 경우를 보면서, 나는 신인 수필가들의 발랄하고 참신한 변화에 무심하지 않았는지, 한편 선배로서 문학적으로 더욱 진보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뉘우치게 된다. 새로운 시대와의 소통과 혁신, 그리고 오래가는 비결을 조용필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다. 음악의 숲이나 문학의 숲은 노년의 세대나 신생나무, 선배나 신인들이 변함없이 사계를 연주할 때 아름다운 향기가 날 것이다."
큰 나무보다 숲으로 - 유혜자
조용필의 19집 앨범 ≪헬로Hello≫를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TV에서 보았다. 방송에서 볼 수 없던 그가 10년 만에 내놓은 음반이어서 올드 팬들이 반가워서 사려는 걸로 짐작했는데 웬걸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부모세대가 좋아하고 그가 왜 가왕歌王이었는지 궁금한 젊은이들이 잠깐 호기심을 갖는 것으로 여겼다. 그 음반에 수록된 <바운스Bounce>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노래를 제치고 1위를 하고 있을 때도 한때의 인기려니 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음반의 새 노래들이 음원차트를 휩쓸고 그의 콘서트 ‘2013 헬로 투어’가 그 인기를 더해가고, 그의 옛날 노래들까지 대중들에게 재발견되어 빛을 발하자, 나도 19집 앨범을 사게 되었다. 그의 음악이 연령과 세대를 넘어 모든 이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라디오PD 재직시절, 1980년대 후반에 여성 대상 주말 공개방송에서 조용필을 몇 번 초대한 일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오전에 녹음하는 것이어서 대부분의 가수들이 출연을 꺼렸다. 가수들은 야행성이어서 아침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거절하는 수가 많았는데 그는 선선히 응했다. 여러 가수들을 부르는 대신 대형가수 조용필의 단독콘서트로 이름을 붙이면 그야말로 대박이었기에 PD로선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유명 코미디언(고 이주일)의 사회로 조용필의 노래 사이사이 개그가 진행되었는데, 무대 뒤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는 그를 발견했다. 다른 가수들은 목소리에 지장 있을까봐 평소에도 담배 피우기를 꺼리는데 금세 노래 부를 사람이 담배라니. 내심 마음이 불편해서 무대로 내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침 시간에도 목소리가 잘 나오시네요.” 했더니 “연습을 많이 해서 목소리는 잘 나옵니다.” 대답하면서도 연신 담배를 피웠다. 애창곡들인데도 밤새 연습하느라 잠을 설치고 나왔다고 누군가 일러줬다. 그러나 피로한 기색이 없는 동안童顔으로 매번 절창을 해서 나와 방청객들을 감동시켜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는 대형가수로 각 방송의 연말 가요잔치에서 두세 번 가수왕이 되자, 부담스럽고 후배에게 자리를 내준다며 연말 가요프로그램 출연을 고사한 처지였다. 그런데도 출연 때마다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부담감, 초조함을 진정시키고 오직 노래에의 집중을 위한 방편으로 담배를 피웠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음반 19집이 디지털 시대에 20만 장(발매 35일 만인 5월 말 현재)이 팔리고 있는데 아날로그 팬들의 요청으로 LP공장까지 가동하여 하루에 만 장이 팔렸다고 한다. 디지털 시대에 LP도 새로운 형태로 자리매김하는 문화현상을 보이고, 콘서트에서도 65세의 고령가수가 고음 부분을 막힘없이 부르자 청중들의 환호가 높아지는 것을 보았다.
베테랑 가수의 열정, 그에 대한 쏠림현상을 보면서 1970년대에 르네상스를 일으켜 주목받던 현대수필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때만 해도 필자 같은 신인의 책도 어느 정도 팔리고 호응도 얻었다. 지금은 일반인들의 호응도도 약해졌지만 젊은이들에게서 특히 외면을 당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 사이버시대라 문학에 관심 있는 이가 거의 없을 뿐더러 관심 있는 이조차 몇 줄 읽다가 ‘노인 글’이라면서 흥미가 없다고 한다.
이번에 젊은이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노래 <바운스>는 65세의 조용필로서는 혁신적인 노래라고 볼 수 있다. “그대가 돌아서면 두 눈이 마주칠까, 심장이 bounce bounce 두근대 들릴까봐 겁나”로 시작되는 <바운스>는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경쾌한 전자음의 반주와 발랄한 멜로디로 노랫말 역시 신세대 노래 뺨치게 실험적이고 트렌디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용필 노래는 이번뿐만 아니라 언제나 창법이나 편곡, 반주 등 당대 최고의 변신으로 가왕의 명성에 어울렸다. 몇 곡만 더듬어 봐도 그렇다. TV연속극 주제가였던 <정>, 라디오드라마 주제가로 반주부터 처절하게 아려오는 <창밖의 여자>, 부르다 목 쉰 듯이 느껴지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전자드럼 반주와 부분적 가성으로 특징을 살린 <단발머리>,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긴 랩(“먹이를 찾아 헤매는”으로 시작)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
그는 트로트뿐만 아니라 발라드 등 다른 장르에서도 늘 다른 것을 시도하고, 옛날 노래를 불러도 매번 편곡을 다르게 하거나 악기를 새것을 도입하는 등 끊임없이 발전적인 변화를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조용필은 술을 밤새 마시면서도 음악에 대한 얘기를 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고, 누구도 따를 수 없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자신을 큰 나무로 가꿔왔다. 악보를 고치고 또 고치고 남들은 하루면 끝날 노래녹음을 한 달이 넘게 끄는 등 항상 음악적으로 더욱 진보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한다. 실력 있는 기타리스트로서 또는 가창에서 남다른 변신과 열정은 자신만 발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20년째 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밴드 ‘위대한 탄생’의 수준도 끌어 올리고 있다. 음악적 동지며 친구인 멤버들에게 최고 악기로 베스트 밴드를 지향하게 한다. 그와 활동한 송홍섭(베이시스트)은 ‘그는 매순간 목숨을 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있었던 ‘2013 헬로 투어’에선 ‘위대한 탄생’ 멤버들의 솔로 연주 코너도 마련하여 각자 불꽃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런 자세로 배려하고 노래하니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으로 지칭하면서도 그들의 수준도 대등하게 발전하는 것이다.
그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에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좋아한다. 아이돌 그룹과 이들의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아이돌을 만나서 응원해 주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들에 대한 애정이 짙다.
전세대에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 조용필의 경우를 보면서, 나는 신인 수필가들의 발랄하고 참신한 변화에 무심하지 않았는지, 한편 선배로서 문학적으로 더욱 진보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뉘우치게 된다. 새로운 시대와의 소통과 혁신, 그리고 오래가는 비결을 조용필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다.
음악의 숲이나 문학의 숲은 노년의 세대나 신생나무, 선배나 신인들이 변함없이 사계를 연주할 때 아름다운 향기가 날 것이다.
유혜자 ---------------------------------------------------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1972). MBC 라디오PD, 방송위원회 심의위원,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역임. 한국문학상, 한국펜문학상, 조경희수필문학상, 흑구문학상 외 다수 수상. 수필집: ≪사막의 장미≫, ≪스마트한 선택≫ 등 8권. 음악에세이: ≪음악의 에스프레시보≫ 등 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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