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야 햄버거 하나 먹는 일이 큰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젊은 세대에겐 간편하고 색다른 맛의 햄버거가 구세주일지도 모른다. 음식이 도덕적일 순 없겠지만 음식 만드는 사람에게 도덕을 요구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엄선된 재료로 햄버거를 만든다고 안심시키며, 이국의 낯선 입맛에 정성을 다하는 맥도날드의 진정성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었던 옛날, 그 안전했던 세월이 몹시 그리운 날이다."
아시나요? - 최화경
어느 날인가 문득 햄버거가 먹고 싶었다.
밥을 먹기는 그렇고 간식을 하기엔 좀 배가 고픈 날 말이다. 음식냄새 드세게 안 나고 칼로리도 살짝 높은 메뉴를 찾다 보니 자장면보다 햄버거가 나을 듯싶었다.
아니, 외국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그 멋진 햄버거 가게가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우리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맥도날드가 새로 오픈했다. 독특한 인테리어에 휘황한 불빛과 24시간 영업에 자동차 안에서도 주문이 가능한 신기하고도 편리한 매장이었다. 거기다 배달까지 된다니, 햄버거가 배달되는 세상이 참 놀랍고 근사하기까지 했다.
햄버거는 요란하게 배달됐다. 헬멧을 쓴 두 젊은이가 두 개의 가방에 감자튀김과 햄버거를 나눠 들고 전사처럼 달려왔다. 햄버거 한 세트에 웬만한 식당의 점심 특선 값보다 비싸서 좀 당황했지만 오랜만에 먹어보는 햄버거라 잔뜩 기대하며 황급하게 봉투를 열었다. 세상에, 다정하기도 하지.
식지 않게 은박 종이에 싼 햄버거의 이름은 ‘상하이 스파이시 치킨버거.’ 눅눅하지 말라고 구멍이 숭숭 뚫린 종이봉투에 들어있는 바삭한 감자튀김, 감자튀김과 치킨버거에 어울리는 독특한 이름들의 달콤하고 매콤한 소스들, 그리고 커다란 컵의 콜라, 난 두 손으로 햄버거를 덥석 잡고 급히 한입 베어 물었다. 매콤한 맛과 닭 가슴살의 부드러움에 입안이 금방 행복해졌다. 독특한 풍미에 끌려 콜라를 빨아 대며 정신없이 몇 번을 베어 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나도 어쩔 수 없는 밥 세대인가. 똑같은 맛의 햄버거를 계속 씹고 있자니 씹는 일 자체가 지루하고 귀찮아졌다. 음식에 대한 귀함, 맛에 대한 푸근함, 그 무엇도 진지하게 느낄 수 없었다. 그냥 하염없이 씹고만 있는 기분이었다. 하염없다는 표현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마치, 소의 되새김질처럼 무심했다. 맛에 대한 환희도, 음식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색감에서 오는 아기자기함도, 어떤 다채로움도 없었다. 오직 베어 먹은 단면의 우중충한 고기색깔만 보일 뿐, 음식에 대한 감동은 없었다. 감자튀김에 소스를 찍어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있는데 그 단순함에 짜증이 몰려왔다. 씹어도, 씹어도 똑같은 맛은 여전했다. 새콤한 소스 맛이 사라지면 그뿐, 또다시 퍽퍽한 맛과 간간한 소금 맛뿐이었다.
문득 서울에 있는 딸 생각이 났다.
원룸에서 혼자 생활하는 딸은 번번이 햄버거를 먹는 듯했다. 집 떠나 있는 애들이 굶어서 죽는 게 아니라 인스턴트에 죽는다더니 그럴 만도 하다.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딸도 이렇게 하염없이 음식도 아닌 것을 밀어 넣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가뜩이나 목이 답답한 감자튀김에, 안쓰러움으로 목까지 메고 있으니 비극영화처럼 상황이 심각해져가고 있었다. 젊은 것들 입맛이려니 했는데 밥이 있었으면 이런 음식 굳이 먹었을까. 칼칼하게 끓는 찌개에 따끈한 밥이 있었으면 햄버거 따윈 안 먹었을 게 분명했다. 왜, 햄버거 하나 먹으면서 이다지도 복잡해지는지. 단순하지 못한 내가 싫어서 우적우적 남은 햄버거를 급히 먹어 치우는데 감자튀김을 담아왔던 봉투가 눈에 들어온다.
아시나요?
맥도날드가 맛있다고 평가를 받는 이유는 직접 엄선한 재료에 있습니다. 100% 순 쇠고기와 순 닭고기, 그리고 신선한 야채로 정성을 다해 만들고 있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습기 방지용 봉투엔 노란색 글씨로 살뜰하게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엄선된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다고 안심하고 드시라는 봉투를 한참이나 들고 있었다.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햄버거에 대한 좀 전의 투정이 미안해지며 뭔가 복잡하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래, 음식의 형태와 맛이 다르다고 다 나쁜 건 아니겠지 단지 새로운 맛일 뿐.
건강 생각해서 뭐하나 덥석 집어 먹을 수 없는 요즘 같은 때, 안심하고 드시라고 재료 고르는 과정을 다정하게 고하는 맥도날드의 정성도 무시할 순 없을 듯하다. 온갖 첨가물에 어디서 온 줄도 모르는 음식이 널려있는 아슬아슬한 세상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친절한 안내문 아닌가. 우리 세대야 햄버거 하나 먹는 일이 큰 도전일 수도 있겠지만 젊은 세대에겐 간편하고 색다른 맛의 햄버거가 구세주일지도 모른다. 음식이 도덕적일 순 없겠지만 음식 만드는 사람에게 도덕을 요구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엄선된 재료로 햄버거를 만든다고 안심시키며, 이국의 낯선 입맛에 정성을 다하는 맥도날드의 진정성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먹어서 맛있으면 그만이었던 옛날, 그 안전했던 세월이 몹시 그리운 날이다.
최화경 ----------------------------------------------
《좋은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회원, 한국 수필가상수상, 원종린 수필 문학상 작품상수상, 행촌문학상수상, 수필집《음악없이 춤추기》《달을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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