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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세상마주보기] 진저맨 - 김옥춘

신아미디어 2013. 8. 10. 15:50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숨이 끊어 질 때의 짧은 순간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진저맨을 보고나서부터 죽음은 무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다. 사후엔 시신을 의료기관에 기증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화장으로 흔적을 없애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나의 사후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부터 생각해 보아야겠다. 미라로 남아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을 진저맨에게 연민을 보낸다. 모래웅덩이에 묻던 후손들의 바람대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모니터에서 그를 지운다."

 

 

 

 

 

 진저맨    -   김옥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몇 해 전 가을이었다. 그를 보는 순간 무섭고 두려웠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여러 번 그를 만나러 갔다. 그가 나를 보고 싶을 리 없겠지만 나는 그를 찾아가는 것이다. 상대는 반응이 없고 일방적인 방문이기에 만나러 간다는 말보다는 보러 간다는 말이 맞겠다. 아니, 어떤 힘에 끌려서 가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가 나를 부르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바로 이집트의 미라 진저맨(ginger-생강머리)이다.
   그가 있는 곳은 런던 시내에 있는 대영박물관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모른다. 1900년 이집트의 사막에서 대영박물관으로 오고 나서 붙여진 이름이 진저맨이다. 남아있는 그의 머리카락이 생강(ginger)과 같은 색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영박물관내의 이집트관에는 미라가 많다. 그중에서 진저맨이 제일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이집트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특히 진저맨이 있는 유리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뜨거운 모래 속에서 수분이 증발해 미라가 된 진저맨을 보는 동안 인체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그는 태아가 모태에 있을 때의 자세로 있다. 얼굴은 모로 하고 엎드린 채 아주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처음에는 그의 모습을 보고 공포영화를 보았을 때처럼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박물관 견학을 온 아이들 중에는 그가 있는 유리관 옆에 편안하게 퍼더앉아서 스케치북에다 그를 그리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카에게 물어보았다. “저 아이들은 이렇게 많은 유물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진저맨을 그리고 있을까?” 조카애는 대뜸 “귀엽잖아요.” 한다. 의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많은 미라가 있는 그곳엔 부패를 방지 위해서인지 공기가 신선했지만 오히려 으스스하게 느껴지고,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혹시 송장 냄새가 아닌가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다른 미라들은 금관 또는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관이 아니면 삼베 같은 천에 단단히 묶인 채 있었지만, 진저맨은 사막을 재현해 놓은 모래 위에 발견될 당시의 모습 그대로 엎드려 있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그를 귀엽다는 조카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아이 같은 마음이 되어보자. 아이들은 죽음을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송장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가 송장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귀신이라도 붙어 있을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는 지금부터 약 5,400년 전의 미라다.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700년경이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미라는 내세에서의 영생불멸을 바라는 신앙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미라를 만들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영원히 살고자 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 이전 시대 관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시신을 직접 모래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고 한다. 진저맨도 모래에 묻혔던 미라다. 이집트의 뜨겁고 건조한 모래가 수분을 증발시키고 부패를 방지한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진저맨처럼 사막에서 원래 모습 거의 그대로 발견되는 시신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사후세계를 생각하게 됐고 시신을 미라로 처리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섬뜩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시체라는 것과 죽음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를 한동안 보고 있으면 이집트 사막의 따가운 햇볕을 느끼고 5천 년 전에 불던 바람 소리를 듣는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낙타를 타고 가든가, 성큼성큼 걷는 진저맨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 시대 사람들과 똑같이 일하고, 먹고, 사랑하고, 잠자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자 그의 자손들은 그를 모래 속에 묻고 영원불멸을 기원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은 자유로워졌을까?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서 그를 본다. 아이들은 백지 위에 스케치를 하고 나는 사진을 찍는다.

   어려서는 물론 나이 들어서도 죽음은 두렵게만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일찍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은 보지 못했다. 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가까이에서 대한 것은 시어머님이다. 수의를 다 입히고 얼굴을 가리기 전에 장의사가 마지막 인사를 드리라고 할 때, 머뭇거리다가 어머님의 얼굴에 내 뺨을 대고 “어머니 이제는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서 편히 쉬세요.”라고 속삭였다. 대답은 없었지만 아마 내 인사말을 들으셨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님의 모습이 아주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30여 년 함께 살아온 어머님이기 때문인지 두려움 같은 것은 없고 오히려 편안했다.

   모니터를 통해 진저맨과 만난다. 진저맨을 보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숨이 끊어 질 때의 짧은 순간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산 자와 죽은 자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진저맨을 보고나서부터 죽음은 무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다. 사후엔 시신을 의료기관에 기증을 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화장으로 흔적을 없애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나의 사후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부터 생각해 보아야겠다. 미라로 남아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을 진저맨에게 연민을 보낸다. 모래웅덩이에 묻던 후손들의 바람대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모니터에서 그를 지운다.

 

 

김옥춘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