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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6월호, 세상 마주보기] 봄나물 앞에서 - 김순자

신아미디어 2013. 8. 9. 09:01

우리 몸속 세포들이 필요로 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음 체질 양 체질, 각기 다른 체질별 밥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올바른 섭생이 되리라. 음식을 대하는 마음자세 또한 중요하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기쁨과 감사의 마음까지도 밥상 위에 푸짐하게 올려야 하지 않을까?  봄나물 한 접시 앞에 놓고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지난한 화두에 빠져 본다.

 

 

 

 

 

 

 봄나물 앞에서    -  김순자


   매주 목요일에는 이웃 아파트 한쪽 마당에 요일장이 선다. 구경거리 많고 흥정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시골 장터와는 사뭇 다르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야채와 과일 그리고 생선을 구입할 수 있어 종종 들른다. 오늘은 어떤 먹을거리들이 선을 보이고 있을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주로 야채가게로 눈길이 먼저 가는 편이다.
   올 들어 처음 보는 풋풋한 봄나물들이 오래 못 보고 지낸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다. 봄에 먹을 수 있는 나물의 종류는 정말 많은 것 같다. 취나물, 홑잎나물, 두릅, 돌미나리, 머위, 민들레, 다래 순, 오가피 순, 엄나무 순 등 그 향기도 독특하지만 비타민, 철분, 칼슘 등 영양분이 듬뿍 들어있는 나물들이 많다.
   꽁꽁 언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며 용케도 잘 견뎌낸 여린 생명들! 눈보라와 강풍에도 끄떡없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은 뿌리를 단단하게 붙들어주는 흙의 도움이 있어서일 게다. 따스한 봄 입김이 대지를 녹이기 시작하면, 움츠렸던 뿌리는 어깨를 펴고 땅속 수분을 부지런히 퍼 올려 나뭇가지마다 연초록 봄물이 든 어린잎을 피워낸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야들야들한 어린 새순에선 싱그러운 아기 살갗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느 깊은 산속에서 살다가 예까지 온 걸까? 수북하게 쌓여 있는 다래 순이 눈에 들어와 한 소쿠리 사들고 집으로 왔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잠시 찬물에 우린 다음 집간장 양념으로 간을 맞추고 조물조물 손맛으로 무쳐 낸다. 산뜻한 색감에 우선 눈이 즐겁고, 자분자분 입속에서 씹히는 봄나물의 향미가 어느 성찬 못지않다. 해마다 누리는 자연의 선물이 이리도 큰데 그동안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과 더 친해지고 싶고 식성도 채식 위주의 자연식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갈 몸이 스스로 알아서 갈 채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것일까.’가 요즘 현대인들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은 그야말로 못 먹어서 탈이 나는 시대를 살았다면 현대인들은 오히려 너무 잘 먹어서 탈이 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영양과잉으로 인한 비만과 갖가지 현대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서도 나타나고 있다 하니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에 세금을 물린다는 나라도 있는 실정이니 어쩌랴.
   ‘내 몸은 음식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섭생은 우리 몸을 이루는 최소 단위인 세포를 건강하게 만드는 과학적 식생활을 말하는 것이리라. 음식이 내 몸을 만드는 기본 재료임을 잊어서는 안 될 터이다.
   한번 만들어진 세포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다. 매 순간 우리 몸에서 초당 5천만 개의 세포가 죽어가는 동시에 또다시 5천만 개의 세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간은 한 달 반이면 전혀 새로운 세포에 의해 조직이 바뀌고, 뼈는 3~6개월이면 새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한 끼의 식사가 내 몸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도 같다.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백 가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옛 선인의 말도 있다. 뿌리채소가 몸에 좋은 이유는 땅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아 지닌 강한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평소 무말랭이를 즐겨 드셨다는 법정스님께서 식습관에 대한 글을 쓰셨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몸에 들어와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된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음식물이 지닌 업까지도 함께 먹어 그 사람의 체질과 성격을 형성한다.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을 때 고기의 맛과 더불어 그 짐승의 업까지도 함께 먹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짐승의 버릇과 체질과 질병, 그리고 그 짐승의 사육자들에 의해 비정하게 다루어질 때의 억울함과 분노와 살해될 때의 고통과 원한까지도 함께 먹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 중에 식습관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질병이나 약함이나 크고 작은 고통들까지도 내 스스로 만든 것이니 남을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식생활과 환경, 식생활과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세계 1급 전문가 존 로빈스가 쓴 책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읽고 나서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육식 위주의 편중된 식습관에서 채식으로 바꾼 사례가 있다고 한다. 저자는 직접 동물 사육 현장을 꼼꼼히 답사하면서 그들이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잔혹하게 사육되고 있는지를 낱낱이 공개하였다고 한다. 돈벌이를 위한 인간의 욕망 앞에 동물복지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창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 같은 생명체요, 인간이 더 우월할 것도 없을진대…….
   어느 책에선가 동물들의 에너지 파장에 대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일반적인 식사 후 내 몸안에 남는 식품의 에너지 파장은 각기 다르다. 노루는 80년, 개는 50년, 염소는 10년, 닭과 돼지는 5년, 소는 1년, 그리고 식물은 두어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태초 인류가 탄생한 먼 옛날에는 초식성에 알맞은 맷돌 모양의 치아 구조로 되어 있었으나 점차 진화되어 송곳니가 생겼다고 한다. 장의 길이가 긴 이유도 채식을 위한 것이라고. 원래 사람의 몸은 구조상 자연식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몸속 세포들이 필요로 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음 체질 양 체질, 각기 다른 체질별 밥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올바른 섭생이 되리라. 음식을 대하는 마음자세 또한 중요하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기쁨과 감사의 마음까지도 밥상 위에 푸짐하게 올려야 하지 않을까?
   봄나물 한 접시 앞에 놓고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지난한 화두에 빠져 본다.

 

 

김순자  -----------------------------------------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