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흔히들 쓰는데, 대개는 세월이 안고 있는 망각이나 희석의 순기능에 기대어 하는 말일 게다. 그런 망각이나 희석은 하늘이 사람에게 준 여러 축복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게 없다면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정신질서를 유지하지 못할 게 빤하다. 내가 몸담아 살아온 세월 속에는 그러나 지워져서는 안 되는 꿈과 믿음과 상처와 절망이 날줄과 씨줄로 짜여 있다. 지워지기 때문에 약이 되는 게 아니고 실인즉 지워져서는 안 되는 그것들이 약이 아니겠는가.
─「책머리에」중에서
정양 ----------------------------------------------
1942년 전북 김제 출생, 『대한일보』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조선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아름다운 작가상, 백석문학상, 모악문학상 등 수상, 시집:『 까마귀 떼』,『 수수깡을 씹으며』,『 빈집의 꿈』,『 살아있는 것 들의 무게』,『 눈 내리는 마을』,『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그네는 지금도』,『 철들무렵』등, 공역:『두보시의 이해』,『한국 리얼리즘 한시의 이해』.『 杜南文集芝庄洞』등, 공편:『 판소리의 바탕과 아름다움』,『 판소리단가』등 판소리평론집『판소리 더늠의 시학』. 詩話集『동심의 신화』, 산문집 『백수광부의 꿈』등, 현) 우석대 문창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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