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랑과 문학실천
— 한정호,『 지역문화의이랑과고랑』, 도서출판경진, 20011.
지역문학의 마당을 함께 일구어 왔던 오랜 벗 무유無有선생이
첫 저서『지역문학의 이랑과 고랑』을 냈다. 지역의 속살을 확
파헤쳐 장차 100권을 기획 출판하리라 다짐하며 출발했던 지역
문학총서 13번째의 자리다. 그동안 저자가 숨결을 불어넣은 총서는
김상훈, 김대봉, 정진업, 서덕출 넷에 이른다. 지역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갈무리한 세월이 하마 10년을 넘는 셈이다. 1996년에
첫발을 내디뎠던 경남ㆍ부산지역문학회의 역사와 13호까지
발간한 기관지『지역문학연구』, 이러한 활동 속에서 치열했던
저자의 열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더딘 걸음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유행하는 연구 흐름을 좇아 지역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즈음의 날랜 걸음보다는 묵직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온 그
의 행보가 더없이 값진 까닭은‘지역’의 이름으로 학문살이를 신념화
했던 지역문학 연구자의 지역사랑과 문학실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열다섯 해를 훌쩍 넘기며 서로가 공유했던 지역문학에 대
한 열망이 이랑과 고랑 사이, 날줄로 씨줄로 엮여 오롯이 담겨 있다. 저
자가 길어올린 학문적 의미 못지않게 지역문학 연구의 고단한 일거리
와 과제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왠
지 쉽고 편한 길을 제쳐두고 힘겨운 곳으로 일부러 뱅뱅 돌아온 느낌”
이라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거기에는 지역 연구자가 감당
해야 할 지역 인식의 관점과 방법, 문학 실천, 문화 행정 등의 결코 쉽
지 않은 문제가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 마산문학관의 학예사로서 5년
넘게 일하며 쌓아올린 문학행정의 성과들도 이 저서에서 한결같이 읽
을 수 있는 바, 지역의 눈으로 마산을 읽어온 그의 감각과 매서운 눈매
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네 마당을 펼쳤다. 경남·부산 아동문학의 자리, 결핵
문학과 마산, 경남 작가의 문학살이, 지역문학의 실천과 현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넷을 꿰뚫는 자리는 물론 경남이라는 지역이다. 저자가
지역이라는 텃밭에서 수확한 문학자산 가운데 자신의 삶터이자 일터인
마산이 가장 큰 마당을 차지하고 있고, 울산, 김해, 밀양, 하동의 문학
전통이 또 다른 마당을 이루며 경남 지역문학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1부의 김대봉과 서덕출, 3부의 정진업은 이미 총서로 갈무
리되었고, 한국 근현대 결핵문학을 통시적으로 다룬 2부는『휴양과 치
유의 마산문학-결핵문학의 산실』(마산문학관, 2009)로, 2부와 4부의
마산지역동인지『청포도』,『 낭만파』,『 처녀지』에 대한 실증적 논의 또
한 이미『마산의 문학동인지 1』(마산문학관, 2007)로 갈무리되었다. 그
가 보여준 이러한 작업들은 경남 지역문학의 배타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한국문학사의 틀 속에서 지역과 지역문학의 자리를 올바르게 자리매김
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특히 결핵문학과 의사 시인 김대봉의 의료체험
에 대한 논의를 통해 한국 의료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시
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남대우, 김원룡, 서덕출 등의 아동문학인의 자
리를 찾아준 것도 단순히 경남 아동문학 담론에 머물지 않고 명망가 중
심의 근대아동문학사에 대한 분명한 문제 제기다. 이 책은 지역문학의
이론적 모색이라기보다는 국가문학사와 지역문학사, 소지역과 중지역
을 넘나들며 경남 지역의 문학적 전통과 실천에 눈길을 주고 있다는 점
에서 각별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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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으로서 마산 지역을 중심에 둔 저자의 연구는 지역적 정체
성을 구축하는 일과 직결된다. 그가 몸담고 있는 마산문학관에 들어서
면, ‘ 민주문학의 터전’ ,‘ 결핵문학의 산실’, ‘ 바다문학의 보고’라는 지
역문학의 가치가 선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는 결핵 요양과 치료의 최
적지로서 마산의 장소성과 결핵문학 연구에 바치고 있는 2부에서 구체
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핵은 마산의 근대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던
형성 동인 가운데 하나였다. 나라잃은 시대 나도향, 임화, 지하련의 마
산 요양 체험에서부터 권환, 이영도, 김상옥, 구상, 김춘수, 함석헌, 서
정주, 김지하에 이르는 풍부한 결핵문학을 마산의 독특한 문학자산으
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요양도시 마산의 장소성을 한껏 드높이고 있다.
질병과 문학의 관계를 지역의 장소성과 결부시켜 지역가치를 발굴ㆍ재
생산하고 있는 2부는 문학주제학의 시각에서 지역문학 연구의 한 방향
을 제시하고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러한 저자의 문학실천을 뒷받침하고 지역문학 연구의 뼈대를 형
성하는 것은 실증이다. 기초문헌의 발굴과 갈무리에 바탕을 둔 실증은
지역문학 연구의 주요한 방법론이다. 지역문학 연구가 실증적 자료 정
리의 차원에 머물러 해석이 빈약하다는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지역문
학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증이 중요한 까
닭이 여기에 있다. 지역의 동인지 매체뿐만 아니라 지역문학인이 발간
했거나 필진으로 참여한 잡지 매체를 발굴하여 지역의 새로운 가치들
을 생성하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는 소박한 향토주의를 넘어 근
대문학 연구의 방법론과 시각에 대한 뚜렷한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내
는 문제 제기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국가문학사의 편협
한 인식틀을 내파할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논의로 1부의 광복기 경
남·부산지역 아동문학에 대한 실증적 고찰을 들 수 있다.
두루 알다시피 서울 중심의 문단활동에 일방적으로 눈길을 주어 왔
던 연구관행에다 특정 갈래에 대한 몰이해와 편향성을 가장 직접적으
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아동문학이다. 아마도 2002년 여름방
학의 끝자락이었을 게다. 근대문학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관점을 송두
리째 갈아엎으며 문학 연구에서 매체의 중요성을 각인시킨 그 치열했
던 여름의 끝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때 경남·부산지역문학회의 주
도로 우리는 개관을 앞둔 이주홍문학관의 소장도서 목록을 약 1주일에
걸쳐 정리하였다. 『신소년』, 『별나라』, 『우리들』, 『새동무』, 『아동문
학』,『 어린이세계』,『 진달래』등 좌파 아동지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받
았던 문학사적 충격이야말로 국가문학에 균열을 가하고 지역문학 연구
의 당위성을 확인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
자가 광복기 아동지를 중심으로 경남·부산 아동문학의 마땅한 자리매
김을 시도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광복기『새동무』의 발행
인인 마산 출신의 계급주의 아동문학인 김원룡을 발굴함으로써 좌우
문단을 오가며 활동한 이원수를 상대화시킬 수 있었다. 이주홍, 엄흥
섭, 신고송, 박석정, 남대우, 김원룡에 이르는 경남·부산지역 계급주
의 아동문학의 굳건한 전통을 확인하고 다진 일은 근대아동문학의 됨
됨이를 새롭게 규명하고 지역문학 연구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적지 않다. 이는 박태일 교수의「나라 잃은 시기 아동잡지로 본
경남·부산지역 아동문학」,「 나라 잃은 시대 후기 경남·부산지역 아
동문학-이원수와 남대우를 중심으로」와 박경수 교수의「일제강점기
일간지를 통해 본 경남·부산지역 아동문학 (1)(2)」와 나란히 경남·부
산지역 아동문학을 한국아동문학사의 주류로 올려 세운 매체 연구다.
한 문학인의 삶과 문학 활동을 올바르게 복원하여 제자리를 찾아주
거나 국가문학사와의 긴장·갈등 관계 속에서 지역문학인을 발굴하거
나 재조명하는 일도 지역문학 연구의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다. 권
환, 천상병, 김대봉, 정진업을 다룬 3부의 글들은 지역문학 연구가 감
당해야 할 고단한 발품과 일차 문헌사료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고 있
다. 또한 이러한 논의는 한 개인의 문학 활동을 통해 문학인의 인적 교
류, 지역 문학사회의 형성과 전개, 지역 문학사회의 평가, 지역 간 수직
적·수평적 연대의 양상 등을 살피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저서에서 처음 규명했듯이, 천상병의 경우에는 이제껏 출생지와 전기
적 사실, 초창기 문학 활동 등이 잘못 알려져 왔다. 지역문학은 지연문
학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까닭에 지역적 연고와 지역에 바탕을 둔
문학 활동을 규명하는 일은 작가 연구뿐만 아니라 지역 문학행정의 차
원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천상병 문학제(산청군)와 천상병 예술제
(의정부시) 개최, 천상병의 고택과 문학관(태안군 안면도) 개관, 천상병
시인 공원(서울시 노원구)의 조성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시인과
지역 연고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현양사업을 탓할 수는 없지만, 문학적
생애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마산 지역에서의 삶과 문학 활동을 빼놓
고 시인 천상병을 제대로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문학사가 지역의 개별성을 거의 무시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
면, 지역작가의 발굴과 지역에서의 삶과 문학 활동을 복원하는 것은 지
역문학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살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지역문학 연
구자의 노력으로 한 문학인의 생애가 환하게 열리고, 마침내 지역을 넘
어 한국문학사에서 마땅한 자기 자리를 찾아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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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 선생에게 두서없이 물었다. 지금 한국 학계에서 양산되고 있는
이른바 지역 도미노 현상은 바람직한가? 새로운 지역문학의 이론적 논
의가 필요한가? 지역문학사 서술의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가? 특유
의 소탈함으로 씩 웃고 만다. 아무래도 더 근본적인 사유와 실천이 필
요하다는 뜻이리라.
그동안『지역문학연구』가 보여준 일련의 매체 투쟁이 주춤하고 총서
만을 간간이 발행하는 가운데, 그가 꾸준히 닦은 지역문학의 밑바탕은
연구 못지않게 오히려 문학실천 쪽이었다. 문학관 학예사로 시민의 참
여를 제도화하는 마산문학관의 문학아카데미와 특별기획전을 기획·
운영함으로써 지역문학의 전통을 올바르게 이해시키고 생활문학의 저
변을 확대해 왔다. 시민과 원활하게 소통하지 못했던 연구 영역의 한계
를 과감하게 벗어나 시민의 문학 생산과 향유를 드높여 지역사랑과 문
학실천을 이끌어내는 데 이바지했던 것이다. 지역문학은 곧 실천문학
이라는 생각이 그의 지역문학론의 뼈대다. 두루 알다시피 지역문학 연
구와 지역사회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는 문학실천에서 아주 중
요한 문제다. 그는 지역문학이 자료의 발굴과 정리, 지역의 문학 자산
에 대한 관심의 제고를 뛰어넘어 지역문화사 또는 지역문화운동사로
나아가야 하는 지점들을 한결같은 태도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무유無有’라는 인장이 선명한『지역문학의 이랑과 고랑』을 읽으면
서 지역문학의 실천과 방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한다. 그는 노자 도덕경
43장의 한 구절을 취해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 천하에 가장 여린 것이
천하에 가장 견고한 것을 마음대로 부리고 형체가 없는 것이 빈틈이 없
는 곳에도 침투한다. 이로써 나는 무위의 유익함을 안다(天下之至柔馳
騁天下之至堅無有入無間吾是以知無爲之有益).” 나는 노자의 깊은 뜻
을 쉽게 헤아릴 수도 없거니와 노자에 기댄 그의 마음자리 또한 손쉽게
읽을 수 없다. 다만 형체도 없이 천하를 넘나드는 도의 마음, 그러니까
무유를 필생의 아호로 취한 까닭을 그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으로
세상살이와 학문살이를, 지역문학 연구와 실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
겠다는 소박한 뜻으로 읽는다. 앞으로 경남 지역을 넘어 무유 선생이
가 닿아야 할 빈틈이 적지 않으리라. 나아가 견고하게 구축하여 빈틈이
없는 곳 또한 비집고 들어가 지금보다도 더 넓고 긴 문학사의 이랑과
고랑을 만들 것이라 본다.
경남 지역의 속담에“어릴 적 질매가지는 커서도 질매가지.”라는 말
이 있다. 질매란 소달구지를 끌 때 소등에 거는 멍에로 쓰는 나무를 말
한다. 아마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어릴 때 형성된 잘못된 버
릇은 고치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나는 이 뜻의 바탕과는 다르게 무유
선생이 소처럼 우직하게 더딘 걸음으로 지역문학 연구와 실천의 멍에
를 지고 묵묵히 나아가는 연구자요 내 학문살이의 아름다운 동반자라
여긴다. 이번에 첫 저서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 이미 마산문학관 자료집
넷과 지역문학총서 넷을 묵묵히 발간하지 않았던가. 이번 저서를 통해
그가 준비하고 있는 총서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권환, 김원룡, 남대우, 천상병 등의 삶과 문학 활동을 새롭게 갈무리하
여 근대문학사의 넓은 마당에 오롯이 세울 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