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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3년 1월호, 세상마주보기] 엄마의 빈 의자 - 김금녀

신아미디어 2013. 1. 30. 22:28

"엄마의 휴일은 일 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물건을 다 팔고 난 후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모여 앉아 명절 준비를 할 때가 엄마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같았다."

 

 

 

 

 

엄마의 빈 의자   -   김금녀

 

   반쯤 열린 이층집 창가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의자 하나. 노쇠한 몸을 그 의자에 의지한 채 엄마는 밖을 내다보며 언제 올지 모를 막내딸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갔지만 어쩌다 찾아가면 발소리에 나를 알아보고 “지금 오니?” 하며 반갑게 문을 열어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기다리던 막내딸이건만 퇴근해서 오는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얼굴을 보자마자 빨리 집에 가서 쉬라고 채근하시곤 했다.
   엄마는 열아홉 꽃 같은 나이에 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다. 시골살림을 꾸려나가며 아버지를 도와 농사도 짓고 밤에는 베틀에 앉아 베도 짰단다. 평범한 시골아낙이었던 엄마는 6·25전란 때 큰 변화를 겪게 된다. 2년 터울의 자식들을 줄줄이 데리고 출산한 지 일주일도 안 되었던 몸으로 남쪽으로 떠나는 배를 타기 위해 찬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칠남매를 거느린 엄마의 고달픈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되었다. 야채상들은 단골을 뺏기지 않으려고 경쟁하듯이 일찍 가게 문을 여는데 엄마는 일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 저녁식사를 할 때면 피곤함에 졸다가 수저를 떨어뜨리곤 했었다. 하룻밤을 밤새워 일한 어느 날, 나는 저녁을 먹다 졸고 말았다. 옆으로 기울어지다가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수저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단 하룻밤이었는데 내 엄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으니…….
   시장의 좁은 골목 안을 한참 들어가면 양쪽에 상점이 늘어서 있고 가운데에는 엄마의 야채가게가 있었다. 시장 한 구석에 좌판도 없이 채소 몇 가지로 시작한 것이 조금씩 넓어져 시장의 중심에 자리를 잡으면서 점점 가짓수가 많아져서 명절 대목에는 온 가족이 함께 엄마의 장사를 거들곤 했다.
   엄마의 휴일은 일 년에 두 번 설날과 추석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물건을 다 팔고 난 후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모여 앉아 명절 준비를 할 때가 엄마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같았다.
   일 년에 한 번, 엄마의 공식외출은 학교에서 하는 어머니날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과와 시루떡을 준비하고 <어머니 은혜>를 목청껏 불렀다. 쪽찐 머리에 한복을 차려입은 엄마는 나름대로 멋을 냈지만 양장에 파마를 한 멋쟁이 엄마들 사이에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추운 겨울 터진 손마디마다 반창고를 붙였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손은 거칠기만 했다. 그런 엄마가 저학년일 때는 몰랐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부끄러워졌다.
   초라한 엄마의 좌판과 비교도 안 되는, 번듯한 가게를 가지고 있는 포목상의 딸도 밀가루집 아들도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그 애들과 마주치면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곤 했다. 엄마의 장사를 거들다가 친구라도 만나게 되면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이런 철부지의 마음을 읽었는지,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엄마는 그렇게 기다리던 학교행사의 참석을 포기하셨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내 모습이다.
   나는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엄마의 따뜻한 등을 떠올려본다. 어렸을 때 눈병이 걸린 적이 있었다. 눈곱이 끼고 충혈된 것이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다. 걱정이 된 엄마는 장사하다 말고 앞치마를 두른 채 나를 업었다.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간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아파서 싫다고 계속 울어댔고 엄마는 나를 달랬다.
   “아가야, 내 말 잘 들으면 눈깔사탕 사 줄 테니 조금만 참어라.”
   사탕이 먹고 싶던 어린 나는 눈까풀에 놓는 아픈 침을 악을 쓰며 참아냈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사탕을 사주셨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엄마의 등이 넓고도 따뜻했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눈병에 걸린 적이 없다. 유행성 눈병이 전국을 휩쓸 때도, 다래끼 한번 나질 않았다. 건강한 눈은 그때 맞은 침의 효과라고 믿게 되었다.
   엄마가 계시는 의정부가 그리 먼 곳도 아닌데 왜 그렇게 가기가 힘들었던지.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평소와 달랐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돌려보내기에 바빴던 엄마는 그날따라 나를 붙들며 하룻밤만 자고 가라고 했다.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어 다시 온다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것이 지상에서 들은 엄마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
   엄마의 희생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무탈하게 성장했고 어려웠던 지난날을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가난한 집에 형제만 많아 사랑도 제대로 못 받았다고 때 늦은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힘들었던 시대의 유산 속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엄마의 삶 그 자체가 내게 준 사랑이었다. 내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엄마의 의자는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홀로 남아 있었다.
   엄마가 앉았던 빈 의자에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다. 하룻밤만 자고 가라던 엄마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는 엄마의 체취조차 남아있지 않은 의자의 먼지를 닦아낸다. 회한이 가슴 가득 밀려온다. 아! 그리운 어머니.


 

김금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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