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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2년 10월호, 사색의 창] 내 모든 사랑이 짝사랑일지라도 - 최은진

신아미디어 2012. 11. 10. 11:41

"사랑은 주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했지만, 사랑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듯이 나도 축하하는 것만큼이나 축하받고 싶은 날들이 있다"

 

 

 

  내 모든 사랑이 짝사랑일지라도


   ‘오전 외래가 시작되기 전에 케이크를 사오고, 연구실에 남겨 놓은 한지로 생일선물을 예쁘게 포장해야지.’ 출근하면서 나름의 동선을 그려본다. 사흘이 지났지만 축하의 촛불을 끄며 발그레 상기될 성준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들뜬다.
   이렇게 나는 ‘기념일 아줌마’임을 굳이 변명하지 않는다. 축하할 일을 기억하는 것, 누군가에게 의미가 있는 날을 기억하는 일이 내게는 참 소중하고 그날을 축하의 날로 즐기는 것 또한 좋아한다.
   나는 숫자에 대한 기억력이 좋다.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소아과의사답게’ 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지만, 수학에 대한 재능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숫자를 잘 기억한다. 누군가의 소개를 이름으로 받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리고 말지만, 태어난 날짜를 말해준다면 두고두고 그 사람의 얼굴과 생일을 기억할 정도이다.
   가족들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는 몇 년 몇 월 몇 일에 했고, 첫 출근한 날짜는 언제이고, 대녀들의 축일은 언제이며,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날은 언제였고, 28년 전 대입학력고사를 치른 날은 언제였으며, 축제 때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할을 했던 날짜가 몇 월 몇 일이었는지 나는 정확히 다 기억하고 있다.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들을 하나같이 기념일로 챙기며 혼자서라도 축하를 한다.
   이런 오랜 습관은 나의 어린 천사들을 만나면서 더 심해졌다. 아이들과 내게, 또 엄마들에게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이 그저 다시 돌아오는 것만은 아님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고 노래 부를 수 있는 마지막날이 될 수도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사랑은 주는 것만으로 기쁘다고 했지만, 사랑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듯이 나도 축하하는 것만큼이나 축하받고 싶은 날들이 있다. 특히 아이의 생일에는 누구보다도 축하받고 함께 기뻐하고 싶었다. ‘장하다’고 칭찬받고 ‘고생했다’고 위로받고 싶었다. 기쁨과 환희의 행복한 순간, 상상하지도 못했던 불행한 사건, 묵묵히 참아왔을 마음의 상처와 눈물, 작지만 소중했던 함께한 추억들, 그리고 이제 세상을 향해 펼쳐 보일 아들의 꿈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억들과 감정의 파도는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나는 내심 친구들의 축하파티를 기대하고 있었다. 여고시절부터 나를 알아온 친구들이니 ‘기념일 아줌마’의 공력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만 열아홉 살 생일에는 양력과 음력이 겹쳐진다고 친구들에게 은근히 날짜를 알려주기도 했으니……. 그런데 기대가 앞서면 늘 그렇듯이 친구들 중 아무도 내게 ‘수고했다’느니 ‘축하한다’느니 하는 문자 한 통 없이 생일이 지나고 말았다.
   연락도 없는 친구들이 야속했고 기대하고 기다리는 내 자신이 미웠다.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붙여 이름을 만들고, 지극히 개인적인 날짜까지 기념일로 만들어 기억하고 기념하는,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처럼 하루하루에 매달리는 내 자신이 아무에게나 과자를 달라고 조르며 우는 어린아이같이 느껴졌다.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타인들에게까지 막무가내로 우겨대고, 내가 기념하고 싶으니 남들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게 여겨졌다.
부모 자식의 관계가 아닌 내가 성장하면서, 살아오면서 맺어 온 인간 관계 속에서 이렇게 이해받지도 위로받지도 못하는 것은 내 삶의 태도에 크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지금껏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들과 기억들이 모두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짝사랑에 빠져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고 살아온 것 같았다. 그렇게 여름은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만큼이나 내 가슴과 영혼을 태워내고 메마르게 했다.
   하지만 내게는 마음이 아픈 것과는 상관없이 온전한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결정 하나가 도착지를 다르게 할 수도 있는, 그래서 내가 마음의 전쟁터에만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한다. 나의 어린 천사들은 하루하루를 새로 맞을 때마다 병실에서 나를 기다린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에 마주치든지 나는 믿음직한 그들의 선생님이어야만 한다.
   오늘은 금요일, 오후 회진이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선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눈을 마주하고 하나하나에게 이야기해 준다. ‘지연이는 오후에 혈소판 수혈만 하면 주말 동안 집에서 지낼 수 있겠네.’ 상민이는 작업치료 선생님의 숙제를 멋지게 해오겠지?’ ‘수진아, 오늘은 선생님이 파란 운동화를 신었네?’ 지연이는 집에 갈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피워내고, 상민이는 사이버학교 수업에 쓸 필기도구를 받아 들고 몹시 만족한 얼굴을 해준다. 수진이는 선생님이 분홍 구두를 신지 않아서 약간 실망한 눈치이다. 그래도 수진
엄마는 ‘쿡’ 하는 아이의 웃음소리를 한 번 들려주려고 작은 손에다 리본 묶은 연필을 쥐어준다. 그리고 돌아나오는 등 뒤로 모두 함께 큰 소리로 인사해 준다, ‘주말 잘 보내세요!’
   늘 같았던 금요일 오후의 회진이, 보이지 않게 반짝이는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기운이 나를 감싸고 위로하며 새로운 삶의 용기를 북돋우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혀 무너지게 하지 말라고, 이렇게 우리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위로를, 그들도 느끼지 못하는 몸짓과 눈빛으로 내게 전해 주었다.
   이해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순간에 그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내 삶 속에 말없이 숨어 있던 천사들이 나타나 축 처진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어 주는 것 같았다. 어느덧 내 속에서도 스스로를 위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의 관심과 기억과 축하와 위로가 굳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이제 용기를 내어 기념일 아줌마를 싫어하던 나에게 조금은 변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유별나게 챙기기 좋아하는 기념일 아줌마를 미워하던 나에게 조금은 용서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준이는 중성구 수치가 충분하니까 생크림 케이크를 사면 되겠다. 집에서 쓰기숙제를 잘하도록 공책과 연필, 형광펜을 선물해야지. 월요일 오전외래는 붐빌지도 모르니까 생일축하 노래와 촛불 끄기는 진료실 안에서 해야지.’ 나의 마음은 어느새 생일파티 작전을 짜느라 바쁘다. 그리고 다짐한다. ‘내 모든 사랑이 짝사랑일지라도 나는 계속 사랑하고 기억하고 축하해야지. 그래, 나는 씩씩한 기념일 아줌마다, the lady of celebration!’

 


최은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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